브렉시트 텃밭서도 기류 변화..2개 여론조사 잔류로 돌아서

신현규 2016. 6. 1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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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탈퇴보다 1~3%P 앞서..여론 굳히기 캠페인 재가동'브렉시트 텃밭' 이스트본 지역선 과격 플래카드 사라져강경 탈퇴파 일부 "정신병자 행동 표심 못바꿀것" 주장

◆ 氣 꺾인 EU 탈퇴론 / 영국 현지 르포 3信 ◆

지난 18일 영국 남부 대도시 브라이턴에서 이스트본으로 넘어가는 A27번 국도. 은퇴자 밀집지역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정서가 영국에서 가장 강한 지역 중 한 곳인 이스트본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지난 16일 조 콕스 영국 하원의원이 피살되기 전만 해도 이 지역 도로변은 "(EU) 탈퇴에 표를 던져라"(Vote Leave) 등 EU 잔류파를 겨냥한 과격한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와 표지판이 도로를 점령했다. 그러나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 같은 반EU 정서를 부추기는 과격한 문구가 모두 치워진 상태였다. 콕스 하원의원 피살 후 브렉시트 캠페인이 전면 중단된 데다 과도한 찬반 논란이 영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자성 속에 브렉시트와 관련된 플래카드와 표지판을 자발적으로 다 정리해버렸다는 설명이었다.

이스트본에서 만난 앤드루 패터슨 씨(44)는 "콕스 의원 트위터에서 기억에 남는 글귀는 '이민에 대한 걱정은 정당하지만, 그것 때문에 EU를 떠나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하지 않다'였던 것 같다"며 "그녀가 지향했던 가치가 선거일 이전에 더욱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U 탈퇴 지지율이 60%를 넘어서 브렉시트 진영의 최대 텃밭으로 꼽히는 영국 중부 피터버러. 이곳 주택가에서조차 콕스 의원을 추모하기 위해 나무에 헌화를 하거나 글귀를 남겨놓은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콕스 의원 사망 후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면서 이민자에 대한 반감에 호소하던 EU 탈퇴 진영의 주장이 점차 힘을 잃는 모습이다.

특히 범인인 토머스 메어가 나치 규율을 담은 책을 구매하거나 친(親)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성향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등 극우 테러리즘과 연결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치즘에 대한 역사적 반감까지 겹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피터버러 시내에서 만난 니콜라 파이퍼 씨(72·연금생활자)는 "이번 사건을 보고 이민자들보다 우리 주변에 이웃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 메어(살인범) 같은 백인 영국인이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적어도 내가 아는 동유럽 이민자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마구 총으로 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브라이턴에서 만난 대런 로슨 씨(28·대학원생)도 "콕스 의원 사망 후 민족주의적인 선전행위가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런던 타워브리지에서 템스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살해당한 콕스 의원이 살았던 선착장(Hermitage Community Mooring)이 나타나는데 19일(현지시간) 찾은 이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세인트폴 대성당과 가깝고 인근 교회들이 많아 일요일을 맞은 런더너들은 이곳을 들렀다가 예배를 가는 모습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콕스 의원이 노동당 의원으로 EU 잔류를 지지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보수당, 노동당 등 여야 구분도 없고 브렉시트 찬반으로 갈라진 국론 분열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정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이며 찬반 여부를 떠나 존경받을 만한 정치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찾았다"는 게 추모객들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16일 이후 연일 이런 추모 분위기가 TV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다시피 하면서 사람들의 표심에도 '잔잔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런던 도심 곳곳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선 "우리가 조의 유지를 받겠다"라는 플래카드가 나붙기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콕스 의원의 살아생전 모습과 서민·이민자들을 위해 의정활동 때 발언했던 말이 시시각각 전파되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17일 "18일까지 정치인들과 각 찬반 캠프가 공식적인 선전 활동을 멈췄지만 온라인 민심과 유권자들 사이에 소리 없는 미묘한 감정의 파도가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콕스 의원을 살해한 메어의 '인면수심'은 '탈퇴'파조차 몸서리를 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8일 살인죄로 영국 사법부에 기소된 후 법정에 출석한 메어는 법정에서 이름을 묻는 재판관에게 "나의 이름은 '배신자에게는 죽음을, 영국에는 자유를'이다"고 답했다. 자신의 살해 동기가 콕스가 브렉시트에 반대했기 때문에 죽였다고 대놓고 밝힌 셈이다.

콕스 의원 피살 후 잠정 중단했던 브렉시트 찬반 투표 운동은 19일 재개됐다. EU 잔류파는 23일 국민투표를 앞두고 잔류 쪽으로 여론이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 잔류세력을 총결집해 대대적인 잔류 캠페인에 들어갈 방침이다.

민심이 변화하면서 여론조사에서도 브렉시트 지지파보다 반대파가 더 많아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영국 선데이메일이 여론조사업체 서베이션을 통해 지난 17~18일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45%로 EU 탈퇴 지지(42%)보다 3%포인트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콕스 의원 사망 전날인 지난 15일 발표된 서베이션 여론조사 때는 브렉시트 찬성이 3%포인트 우위를 보였는데 역전된 결과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 16~17일 실시해 18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EU 잔류 44%, 탈퇴 43%로 잔류가 근소한 차이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EU 탈퇴가 7%포인트 앞섰던 지난 13일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뒤바뀐 결과다.

영국 주간지 선데이미러는 여론조사기관 콤레스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콕스 의원의 사망 이후 "유권자들의 표심이 EU 잔류 쪽으로 기울었다며 총격 사건이 국민투표 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콕스 의원 사망 후 여론은 브렉시트 반대 쪽으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지만 여전히 탈퇴의 '불씨'가 살아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스트본에서 만난 프랭크 월드그레이브 씨(88)는 "남북한이 통일돼 연방정부가 수립됐다고 생각해 보라"며 "연방정부가 매년 남한 주민들에게 하루에 5000만파운드(약 800억원)씩 북한에 보내라고 강제한다면 연방정부를 지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지역별로 브렉시트 지지 지역을 분석하는 모델을 고안한 켈빈 존스 브리스톨대 교수(지리학)는 "콕스 의원 사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주로 노년층과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의 브렉시트 지지가 높았음을 감안하면 그녀의 사망이 여론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근거가 부족한 것 같다"고 답했다. 브렉시트 골수 지지층 표심까지 바꾸지는 못할 것이란 얘기다. 이스트본에서 만난 이언 퍼트넘 씨(68)는 "일부 정신병자가 한 일을 놓고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모든 이가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 또한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런던·이스트본·피터버러 =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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