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살고자 마주했던 현실에 무너진 故 김관홍 잠수사

CBS 스마트뉴스팀 김세준 기자 입력 2016. 6. 19. 12:31 수정 2016. 6. 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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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국회에서 “앞으로 어떤 재난에도 우리를 부르지 말라”고 성토했던 고 김관홍 씨. 세월호 구조 작업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였던 김 씨는 당시 해경과 검찰이 동료 잠수사의 사망 책임을 잠수사들에게 전가한 것에 분노해 국정감사 발언대에 올랐었다. 

그때 김 씨의 발언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도 가슴 먹먹할 정도로 아프게 들려왔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김 씨의 영상을 제작하면서도 “국민을 재난에 부르지 말라”던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 정도였다. 

그렇게 김 씨의 기사가 보도됐고, SNS에서 김 씨의 영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세월호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고충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게 기자와 김 씨의 첫 인연이었다. 

김 씨를 다시 만난 건 지난해 11월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였다. 당시 나는 윤지영 변호사와 함께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만나며 인터뷰 취재를 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윤 변호사가 내게 '세월호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를 아냐’고 물었다. 국정감사 현장에서 본 적이 있으나, 인사를 나눠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우연이었는지 인연이었는지, 윤 변호사는 당시 세월호 민간 잠수사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변호를 맡고 있었다. 윤 변호사를 통해 처음 정식으로 김 씨와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주고받게 됐다. 김 씨와 인터뷰를 짧게 나눈 뒤, 헤어지면서 다음에 또 인터뷰를 하자고 기약했다. 

그 약속은 그로부터 한 달 쯤 뒤인 지난해 12월 20일,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세월호 전과 후의 삶’이란 주제의 인터뷰였다. 김 씨는 “망가졌다”고 말했다. “내 인생, 그리고 가족들한테도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차라리 몰랐으면, 안 갔으면…”

2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끝내고, 김 씨는 술 한 잔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이 인터뷰 못 나가겠죠? 제 발언이 너무 세죠? 그리고 자꾸 죽고 싶다는 말만 해서 미안합니다.” 술 한 잔 하자는 김 씨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김 씨와 함께 간 곳은 김 씨의 후배가 하는 마포구 상암동의 작은 양꼬치 가게였다. 김 씨는 양꼬치를 직접 구워주며, 인터뷰 때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평범했던 삶인데, 다 망가진 것 같다”고 했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고, 분노 조절 장애 때문에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다”면서 눈물까지 보였다. 

술자리가 이어지던 중, 김 씨의 친구 2명이 합석을 했다. 그런데 김 씨 친구들은 김 씨를 향해 “너 오늘도 인터뷰 했냐”며 다그쳤다. “인터뷰 하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자꾸 망가지면 가족은 누가 챙길거냐”면서 타일렀다. 덩달아 기자인 나도 함께 혼이 났다. “자꾸 인터뷰하면 관홍이가 더 힘들어진다”는 이유였다. 

그날 술자리에서 나는 주량을 한참 넘길 만큼 술을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 씨와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렇게 김 씨를 ‘관홍이 형’이라고 부르게 됐고,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도 하고 카카오톡도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됐다. 특히 관홍이 형은 카카오톡 게임 초대 메시지를 자주 보내서, 초대 메시지 좀 그만 보내라고 하기도 했었다. 관홍이형은 특히 SNS에 #세월호 #잠수관련 같이 해시태그를 단 자료를 많이 올리곤 했는데, 내가 ‘좋아요’를 누르면 항상 카카오톡으로 “언제 한 번 봐야지, 술 한 잔 해야지”라고 연락했다.

그 이후 반 년 정도 지나면서, 각자 일과 생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 사이에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는 소식, 20대 총선 때 박주민 변호사 사무실에서 운전 자원봉사를 한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왕래가 뜸해진 와중에 대뜸 연락하기는 쑥스러웠으나, 그렇게라도 안부를 챙겼다. 가끔 오는 카카오톡 게임 초대 메시지를 보면서 ‘잘 지내시겠지’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17일, 갑작스러운 비보를 들었다. 마음이 아렸다. 속상했고 미안했다.

작년 12월 20일. 합정동 모 카페 생전 인터뷰 모습
지난해 12월 인터뷰 자료를 다시 꺼내봤다.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관홍이 형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인터뷰 중에는 형이 “내가 살기 위해 말하는 거다. 말하지 않으면 죽겠으니까…” 라고 말했던 부분이 있었다. 정말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관홍이 형은 그때 어떻게든 살고자 입을 열었던 건데,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았다. 지켜주지 못한 아쉬움만 한없이 남는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까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한 그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8일 저녁 서울서북시립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故 김관홍 잠수사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종민기자)

[CBS 스마트뉴스팀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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