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잠수사의 아픔과 고통은 모두가 짊어져야 했다"

강성원 기자 2016. 6. 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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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잠수사 김관홍씨 죽음에 애도 행렬 이어져… “나는 잠수사이기 전에 국민”

[미디어오늘 강성원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자발적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 김관홍(43)씨의 사망 소식에 그와 함께 4·16 진상규명 활동을 함께했던 이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김씨가 지난해 12월16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나는 잠수사이기 전에 국민”이라며 남겼던 마무리 발언은 국민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팩트TV와 협약을 맺은 한겨레가 17일 공개한 청문회 영상에서 김씨는 “나는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내 직업이, 내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수색)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이라며 “국가의 국민이기 때문에 한 거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그는 불면증 등으로 정신과 치료제를 먹고 있었지만 유가족들과 만나 “고맙다”, “고생했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약을 끊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종자) 11구가 남아 있을 당시에 왜 나와야 했는지, 왜 우리가 그런 식으로 쫓겨나야 했는지, 나는 그걸 묻고 싶다”며 “사회 지도층인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왜 기억이 안 나는지, 진실은 다를 수 있지만, 욕을 먹더라도 상황은 정확히 얘기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씨의 사망 소식에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 위원장도 애도 메시지를 통해 “김 잠수사는 참사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원래의 잠수 일로 복귀하지 못하는 등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었음에도 세월호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 나와 참사 당시 수색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증언해 줬다”며 “그의 아픔과 고통은 사회 모두가 짊어져야 했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언제나 당당했던 그를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 민간잠수사 김관홍씨. 사진=민중의소리
김씨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 외에도 이번 20대 국회에 입성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씨는 총선 유세 기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박 후보가 이동할 때 운전해주고, 가방 들어주고, 길을 안내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며 “민간잠수사는 유족들과 달리 박 후보와 연이 따로 있지 않았지만 진정성이 있었다. 사심이 없고 착한 사람이라 마음이 끌렸다”고 박 의원을 도운 이유를 설명했다.

17일 서울 은평구 시립서북병원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를 찾은 박주민 의원은 김씨에 대해 “선거운동할 때 (세월호 진상 규명에 힘쓸) 누군가는 의회에 들어가야 한다며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내게)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주민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 이후 함께 의원실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지만 김씨는 ‘내가 계속 이곳에서 일하면 선거를 도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빈소는 서울서북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돼 있으며 18일 오후 4시 입관 후 19일 오전 8시30분 발인이 예정돼 있다.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18일 저녁 7시 장례식장 앞에서 ‘세월호 의인, 故 김관홍 잠수사 추모의 밤’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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