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말라" 세월호 잠수사 숨져

신혜정 2016. 6. 18.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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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민간잠수사 김관홍씨

수색작업 참가 시신 25구 수습

몸도 마음도 상처 투성이

잠수사 포기, 대리운전 생계

거주하던 비닐하우스 발견

“그간 고마웠다” 주치의에 문자

세월호 참사 2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노란 풍선을 하늘로 날리고 있다. 서재훈기자

“바보 같은 놈, 그렇게 힘들면 말을 하지 죽긴 왜 죽어.”

17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시립서북병원 장례식장. ‘세월호 의인’ 김관홍(43) 잠수사의 어머니 박귀순(68)씨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아들을 그리며 오열했다. 김씨의 아내도 시어머니 옆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쳤다. 초등학교 4학년인 김씨의 큰딸은 그런 엄마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딸과 유치원생 막내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빈소 주위를 돌아다녔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상복을 입은 아이들의 목에는 세월호리본 모양의 노란색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25분쯤 가족과 함께 살던 경기 고양시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리운전을 한 뒤 이날 오전 2시15분쯤 귀가한 김씨는 테이블에 앉아 1시간 반 가량 혼자 술을 마시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발견 당시 김씨의 가방에는 세 자녀에게 줄 초콜릿 3개가 들어 있었다.

민간잠수사인 김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선체 수색작업에 참가해 시신 25구를 수습했다. 심해 작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던 김씨는 수색 권유를 받고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생업을 포기한 채 바다로 달려가기도 쉽지 않았다. 가족 역시 너무 위험하다며 가장을 말렸다. 고민하던 김씨는 “아빠가 가면 모두 구할 수 있다”는 딸들의 응원에 지체 없이 진도 앞바다로 향했다.

김씨는 온몸을 던져 세월호 안에 갇힌 희생자들을 구했다. 그 해 4월 30일에는 물살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지만 응급치료 뒤 사흘 만에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7월 10일 팽목항을 떠날 때 그에게는 허리ㆍ목디스크, 꼬리뼈 부상 등 상처투성이 몸만 남았다. 그를 비롯한 잠수사들의 부상치료 지원은 지난해 3월 중단됐다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요청으로 9개월 만에 재개됐다. 하지만 치료시기를 놓친 탓에 김씨는 다시는 바다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었다.

육신의 아픔보다 김씨를 더 괴롭힌 것은 정신적 아픔이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열린 국민안전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엉킨 시신을 한 구 한 구 달래가면서 지상으로 올려 보냈다”고 증언했다. 빈소를 찾은 동료 잠수사들은 김씨가 공우영(61) 잠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 받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가장 선임이었던 공 잠수사는 2014년 5월6일 함께 수색작업에 참여한 이광욱(당시 53세) 잠수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됐다. 김씨는 “자발적으로 구조에 나선 민간잠수사들에게 해경이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크게 분노했다.

그는 구조작업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정부를 향해서도 줄곧 날을 세웠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말고 정부가 먼저 알아서 하라”고 일침했고, 지난해 12월 개최된 세월호 1차 청문회에서는 해경과 해군 등의 초동 대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기도 했다. 사망 일주일 전인 지난 8일 4ㆍ16 가족협의회가 국회에서 연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입법청원 기자회견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사망 소식을 들은 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도 김씨가 세월호 행사에 참석해 유가족들을 만났는데 그의 죽음이 믿기질 않는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유가족에게 가장 고마웠던 분”이라며 애도했다.

경찰이 김씨를 발견할 당시 시신 옆에는 성분이 확인되지 않은 약통이 놓여 있었는데, 폐쇄회로(CC)TV 분석에서 그가 술을 마시다 약을 복용한 후 쓰러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숨지기 직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잠수사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돕던 정혜신 정신과전문의에게 “그 동안 고마웠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복용한 약이 지병인 고혈압 치료를 위한 약인지 분석 중이며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가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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