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단순노동에 격무.. 고졸명장 꿈, 입사 넉달만에 접어"

2016. 6.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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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때 반짝뒤 시들.. 서러운 특성화高 졸업생들
[동아일보]
용접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게다가 정규직이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취업을 졸업 전에 이루다니…. 일반고 대신 특성화고를 선택한 보람이 물밀듯 밀려왔다. 부푼 꿈도 잠시. 회사는 입사 2개월 만에 용접 작업 대신 현장 관리를 맡으라고 했다. 말이 현장 관리지 아르바이트생과 큰 차이가 없는 업무였다. 3주 내내 야근을 시키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나자 회사는 사직서를 내라고 했다. 부당하다는 항의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모 씨(19)는 입사 4개월 만에 실업자가 됐다. 그는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자마자 이런 대접을 받으니 서럽고 막막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특성화고 출신 “고졸이라 서러워”

지난달 28일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특성화고(옛 실업고) 출신 직원들의 열악한 근로 여건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전철에 치여 숨진 김모 씨(19)도 특성화고 출신. 김 씨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 대신 특성화고를 선택해 남들보다 일찍 취업했지만 낮은 임금과 격무에 시달리다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특성화고가 재조명된 것은 2008년부터. 이명박(MB) 정부 당시 ‘고졸도 당당히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며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속속 고졸 채용을 늘렸다. 직업 명장을 양성하겠다는 마이스터고가 생긴 것도 그 무렵이다. 8년이 지난 현재 실제로는 적지 않은 이들이 질 낮은 일자리로 유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 취재팀이 만난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2월 서울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한 권모 씨(20·여)는 현재 한 식당에서 2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취업이 잘된다고 해 회계, 쇼핑몰 사이트 구축 등을 배웠는데 실제 이 분야로 입사한 친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권 씨는 중소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컴퓨터 활용 관련 자격증을 딸 생각이다.

○ 고졸 취업률은 늘었지만…

교육부에 따르면 2010년 25.9% 수준이던 고졸자의 취업률은 지난해 34.3%까지 증가했다. 마이스터고 출신의 경우 100%에 달하는 취업률을 기록할 정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3월 현재 전체 비정규직 중 고졸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4.1%로 대졸 이상(32.6%)보다 많다. 고졸자의 취업률이 높아진 것 역시 취업 여건이 좋아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대졸 취업자 통계와 달리 고졸자의 경우 단순 일용직 노동까지 취업으로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졸이 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추세다.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고졸 정규직 공채 규모는 2013년 2067명에서 지난해 1786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5대 주요 은행의 고졸 행원 채용 규모도 30여 명 감소했다. 대졸자 채용 규모가 700여 명 증가한 것과는 대비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도 대졸자가 질 낮은 일자리로 유입되는 데 따른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독일처럼 ‘마이스터’를 키워라

3년 전 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한 대기업의 자회사에 취직한 이모 씨(22·여)는 2년 만에 회사를 관두고 대입 학원이 몰려 있는 노량진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입사 땐 전문성도 살리고 야간대학도 다닐 수 있다고 들었지만 실제 하는 일은 매일 전화를 받는 지극히 단순한 업무였다”며 “더 늦기 전에 꿈을 펼치려면 대학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성화고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대학에 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만 심어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학교와 기업이 함께 학생을 육성하는 독일식 도제교육을 조기에 정착시켜 특성화고 출신들을 역량 있는 일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정부는 특성화고의 전문성을 강화해 고졸 숙련 전문가를 만들어내고 이들이 대졸자들에게 차별받지 않는 노동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대학으로만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혁 hack@donga.com·이지훈·박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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