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투리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서부원 입력 2016. 6. 1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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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71] 서울 말투 배우려는 제자.. 뿌리깊은 지역 차별의 역사

[오마이뉴스 글:서부원, 편집:김예지]

작년에 졸업한 제자가 입대를 며칠 앞두고 찾아왔다. 축구광이었던 데다 공부도 곧잘 해서 친구들은 물론, 여러 선생님에게 인기를 독차지했던 아이다. 수능 점수가 평소 모의고사 때보다 낮게 나와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더니만, 어쨌든 그는 오매불망 꿈꾸던 서울로 대학을 갔다.

여느 아이 같으면 망친 수능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반수' 고민도 했을 테지만, 대학 생활에 만족한다면서 지난 학기 장학금까지 받았다며 우쭐댔다. 신입생답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던 모양이다. 전국에서 모인 학과 친구들과 이따금 술도 마시고 함께 스터디도 하면서 나름 즐겁게 지내고 있다며 근황을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소풍 때도 교복을 입고 올 정도로 소문 난 '범생이'였는데, 한껏 멋을 낸 옷차림에 하마터면 순간 못 알아볼 뻔했다. 노랗게 염색을 한 머리에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 치렁치렁한 팔찌까지 연예인을 흉내낸 듯한 옷차림이 무척 어색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낯선 눈빛에 자기도 머쓱했던지, 이따금 교복을 입고 싶을 때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런데, 그보다 정작 그를 낯설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어색한 서울 말투였다. 대화 중에 익숙한 사투리가 나올라치면 다시 주워 담고 부러 서울말로 고쳐 말하곤 했다. 이를테면, '매우'라는 뜻의 사투리인 '겁나게'를 은근슬쩍 '되게'로 교정하는 거다. 말의 억양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 듣기에 불편했는데, 말투가 어색하니 그의 동작 또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녀석, 1년 반 동안 서울 물을 먹더니 이젠 서울 사람 다 됐네."
"노력한다고는 하는데, 20년 동안 입에 밴 사투리가 쉬이 고쳐지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나은 편이에요. 주변에 소개팅 나간 자리에서 불쑥 사투리가 튀어나와 퇴짜 맞았다는 여자애들을 많이 봤거든요."

서울말 익히기? 토익보다 더 어렵다

 영화 <곡성>에서 전라도 사투리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효진 역의 김환희.
ⓒ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
서울 말투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많이 놀랐다.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그는 서울 말투를 '배워야' 한다고 표현했다. 특히 전라도 출신이면 누구라도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준비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 아는 '전라도 출신 감별법'이 있다며 들려주었다. '6학년'을 '유캉년'이 아닌, '유강년'으로 발음하면 십중팔구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 그냥 사투리의 하나로 웃고 넘어갈 만한 일에 굳이 '감별법'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로, 대학생들조차 전라도 출신에 대한 주위의 편견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혹 무심결에 그런 사소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고향이 어디냐고 묻게 된단다. 굳이 감추지는 않지만, 광주라고 짧게 답할라치면 십중팔구 "전라도 광주?"라며 되묻곤 하는데, 그게 괜히 싫단다. 마치 주눅이 든 것처럼 움츠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노력' 덕분인지 요즘엔 자신을 서울 사람인 줄로 아는 사람도 있다며 짐짓 태연한 척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울로 진학한 여학생들의 '고충'은 훨씬 더하다고 한다. 흔히 여고생들은 입시가 끝나면 내남없이 성형수술에 나선다지만, 말투를 교정하는 데에 투자하는 노력도 만만치 않단다. 말이 좋아 '교정'이지, 입말에서 여태껏 써온 사투리를 지우고 서울말을 새로 익히는 '외국어 공부'다. 토익이나 토플 공부보다 백배는 더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했다.

아무리 '여신'급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의 입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올라치면, 너도나도 속된 말로 '깬다'며 키득거린단다. 나아가 세상에는 세 가지의 성(性)이 있는데, 남성과 여성, 전라도 여성이 그것이라며 놀려대기까지 한단다. 그래선지 짬이 날 때마다 전신 거울 앞에서 서울말과 동작을 연습하는 여자애도 있다는데, 언뜻 가엾다는 생각마저 들었단다.

"다 같은 사투리인데, 왜 느려터진 충청도 사투리와 억양이 아예 외국어 같은 경상도 사투리에는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으면서 왜 굳이 전라도 사투리만 백안시하는지 모르겠어요. 주위에선 경상도 사투리는 특유의 억양이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못 고친다고들 하던데, 솔직히 그들이 굳이 서울 말투로 교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어처구니없게도 여자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귀엽다'고 말하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 '촌스럽다'고 놀려대는 이야기를 이따금 들어요. 더욱 황당한 건, 그 말도 안 되는 편견에 심지어 전라도에서 올라온 아이들조차 고개를 끄덕거리더라고요. 말투조차도 전라도가 왕따 당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선지 어떤 때는 고향이 전라도라는 게 괜히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해요."

갓 대학에 들어간 젊은이들조차 움츠러들게 하는 이 '자격지심'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나 역시 전라도 순천이 고향이고, 지금까지 서울과 경기, 광주 등지에서 각각 10년 넘게 살아왔지만, 전라도 출신에 대한 '이유 있는' 험담은 들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낭설에 가까운 이야기거나, 끼리끼리 떠들어대는 '카더라'식 뒷담화가 전부였다.

몰상식한 것이라도 인구에 회자되면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인지, 언제부턴가 일부에선 전라도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 같다. 관심만 끌 수 있다면 패륜적인 짓도 서슴지 않는 '일베'의 전라도 혐오 글에 맞장구치는가 하면, 애먼 역사까지 끌어들여 같잖게 '반역향' 운운하는 것이 그 예다. 이는 기실 맹목적인 증오에 가깝다.

누이가 전해온 이야기... 전라도를 향한 맹목적 차별

몇 년 전 경기도에 사는 누이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아파트와 직장에 "전라도 사람들과는 상종하는 것조차 싫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처음엔 편견으로 가득 찬 그 사람들을 이상하게 봤지만, 요즘엔 그들의 말에 맞장구치는 이웃들이 시나브로 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누이가 사는 곳은 유난히 전라도가 고향인 사람들이 많다는데도, 남들 앞에 되레 눈치를 보고 입조심하며 살게 됐단다.

"맨날 듣는 말이라 익숙해져서인지, 이젠 진짜 전라도에는 남의 뒤통수를 치는 사람들만 모여 사나 싶은 생각도 들어. 전라도 사람들끼리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싶다는 이야기까지 오간다니까. 전라도 사람들을 흉보는 이들의 이야기가 하도 그럴싸해 멍하니 듣다보면, 전라도가 고향이라는 걸 진짜 숨기고 싶어지기도 해."

누이가 언급한 '그럴싸한' 이야기는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어디서든 향우회(鄕友會)를 만든다는 것, 전라도에서는 투표만 했다 하면 야당에 몰표를 던진다는 것, 지역 연고 프로야구팀 응원을 해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유별나다는 것 따위다. 그러한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색안경을 끼고 보니 하나같이 못마땅한 것 투성이다.

수십 년 간 차별을 받아온 지역이다 보니 동향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며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비유하자면 힘없는 노동자들이 뭉쳐야 하는 것처럼, 약자인 전라도 사람들의 '생존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소 폐쇄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권력을 가진 이들끼리 형님, 동생 하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인 셈이다.

선거 때마다 야당에 몰표를 던져온 투표 행태도 측은하게 여길 사안이지 욕할 건 못 된다. 1980년 5월 광주의 한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면, 그들의 투표는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닌, 한을 위무하는 의식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곧, 몰표는 5. 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이들에게 보내는 전라도 사람들의 한 맺힌 '경고장'인 셈이다.

당시 광주가 흘린 피를 덮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전두환 정권이 주도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프로야구 지역 연고 팀의 승리를 그토록 갈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타이거즈'의 승리를 통해 죽임을 당하고 차별을 받아온 설움을 잠시나마 달랬던 것이다. 비록 '판타지'였을지언정 그렇게라도 신산했던 자신들의 삶을 투사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곳이 바로 전라도였다.

 '타이거즈'의 승리를 통해 죽임을 당하고 차별을 받아온 설움을 잠시나마 달랬다. 비록 '판타지'였을지언정 그렇게라도 신산했던 자신들의 삶을 투사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곳이 바로 전라도였다. 사진은 82년 올스타전.
ⓒ 기아 타이거즈
누이는 이런 '해명'이 막무가내인 그들 앞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전라도 하면 곧장 떠오르는 게 '조폭'이고, 5. 18을 두고는 북한군이 내려와 저지른 소요사태쯤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뭘 더 바라겠느냐며 반문했다. 심지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역은 죄다 전라도 사람들 아니냐며, 그걸 전라도 혐오의 근거랍시고 내놓는 이들마저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제자와 헤어지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서로 인사말을 나눴다. 이따금 광주에 내려올 때마다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는 농반진반의 그의 말이 못내 씁쓸했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부러 따끔하게 한 마디를 건넸다.

"전라도에서 태어났다는 게 무슨 '천형'도 아니고, 힘겹게  서울 말투를 '배우기'보다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데 노력하는 게 맞지 않을까? 편견에 맞서길 꺼려하고 그로 인한 갈등을 회피하는 순간, 몰상식이 상식이 되어 확산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주눅이 들어 움츠리기보다 보란 듯 편견을 조장하는 이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모습,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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