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성폭행 3人, 파출소 앞 14번 지나갔는데..

신안/조홍복 기자 2016. 6. 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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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현장 가보니 '아쉬운 치안'] 파출소, 식당과 70m 떨어져.. 관사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오후 10시 이후엔 1명만 근무 - 주민들 "범인, 강력 처벌하라" "섬 전체 범죄자로 매도 말라"며 일부 네티즌엔 서운한 감정도

섬마을 20대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전남 신안군의 한 섬. 지난 11일 오전 이 섬 선착장에 내려 5분쯤 걸어가자 여교사가 저녁을 먹었던 식당이 나왔다. 식당은 간판을 내리고 폐업한 상태였다. 이 식당 주인이자 학부모인 박모(49)씨는 지난달 21일 저녁에 혼자 식사하러 온 피해 여교사에게 인삼주 10여 잔을 권해 취하게 하고, 주민 김모(38)·이모(34)씨를 합석시켰다.

이 세 명은 여교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돼 지난 10일 검찰에 송치됐다. 이들은 여교사가 술에 취하자 범행을 결심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섬의 유일한 112파출소는 이 식당에서 직선으로 70m가량 떨어져 있었다. 이 식당에서 2.2㎞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관사로 가려면 이 파출소 옆 도로를 반드시 지나야 한다. 박씨는 범행 당일 오후 11시쯤 만취한 여교사를 관사로 데려다준다며 자신의 차량에 태웠다. 술을 마신 상태로 음주 운전을 해서 파출소를 지나간 것이다.

박씨 차가 출발한 뒤 30초가량 지나 이씨도 음주 상태에서 자신의 차를 몰고 관사로 향했다. 검찰 송치 때 "술을 많이 마셔 기억이 안 난다. (현장에서 검출된) DNA는 죄송하다"고 했던 김씨는 20분 뒤 이들을 뒤따랐다. 김씨는 이번 사건 수사 과정에서 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2007년 1월 대전 서구 갈마동 20세 여성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로 확인됐다.

이들의 범행 시간대는 21일 오후 11시~22일 오전 1시 30분이다. 2시간 30분 동안 박씨와 이씨는 두 번, 김씨는 세 번 차를 몰고 식당과 파출소, 산비탈 길을 거쳐 관사를 오갔다. 이들이 7차례 왕복하며 범행을 모의하고 여교사를 성폭행할 때 파출소 근무자는 단 1명이었다. 목포경찰서 관할의 이 섬 파출소의 총원은 소장을 포함해 5명뿐이다. 파출소장을 빼고 4명이 2인 1조로 하루씩 돌아가며 교대 근무를 하는데, 그나마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는 한 명이 자고 한 명만 근무를 한다.

심야에 작은 사건·사고라도 발생해 근무자 1명이 출동하면 사실상 파출소가 비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자가 "야간 음주 운전 단속은 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 파출소 측은 "가끔 음주 단속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섬 주민들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어 저녁에 술을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하지만 경찰 단속은 거의 겪어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음주 운전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피의자 3명은 초등학교 관사 앞에 10여분 동안 차량 3대를 동시에 주차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는 토요일 밤이었다. 이들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관사에서 100m 앞에 있는 면사무소와 200m 떨어진 초등학교는 문을 닫았고, 주민들이 사는 인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주말이면 대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실제 11일 오후 30분 동안 관사 앞을 지나는 차는 45인승 관광버스와 승합차, 용달차 등 3대에 불과했다.

이 섬은 행정지구와 상업지구로 나뉘어 마을이 형성돼 있다. 상업 중심 마을은 식당이 즐비해 주말 밤에도 관광객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관사가 속한 행정 중심 마을은 해가 진 후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범인들이 이런 마을의 특성을 악용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섬 주민들의 표정에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과 범인들에 대한 분노가 묻어났다. 상인회장을 맡은 최모(58)씨는 "주민들은 피의자들에게 강한 분노를 느낀다. 영장 발부 때 가족들이 탄원서를 들고 다니던데 정신 못 차린 거다. 동정의 여지는 전혀 없다"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주민 김모(48)씨는 "우리 섬의 긴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 것"이라며 "피의자들 얘기는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하지만 섬 주민 전체를 범죄자로 매도하는 일부 네티즌에게 서운한 감정도 드러냈다. 식당을 하는 50대 주민은 "방송사가 카메라를 휘젓고 다니면서 우리 섬을 마치 범죄의 소굴인 양 매도해 주민들이 화가 많이 났다"며 "'홍어×'이나 '범죄 섬에는 가지 마라' 같은 본질과 무관한 말들이 쏟아져 주민들이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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