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퀴어문화축제] 부모도, 동성커플도, 이성커플도.. "서로를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하는 세상이 되길"

김서영·이유진·최미랑 기자 입력 2016. 6. 11. 16:48 수정 2016. 6. 1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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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1일 제 17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광장엔 무지개빛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동성애자, 이성애자, 이성 커플, 동성 커플, 트렌스젠더, 한국인, 외국인 등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1일 아들과 함께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허신행씨. 이유진 기자

■아이와 함께 나온 부모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함께 살아갈 사람이 많단다”

이날 현장엔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허신행씨(35)는 다섯살 난 아들을 작은 자전거에 태워 함께 광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허씨는 “지난해부터 아이를 데리고 오고 있다. 일종의 조기교육 차원”이라며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고, 함께 살아갈 사람이 많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 입장에서도 퀴어 축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했다. “타인이 존재한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나와 다른 사람이 드러나는 ‘가시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다”는 뜻이다.

허씨는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은, 더이상 혼자 살거나 이겨야 살거나 경쟁해야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나와 네가 연결돼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걸 구호로는 많이 외치지만 실제로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걸 이해하는 세상이 됐으면, 그리고 내 아이가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일 아이와 함께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은 강지민씨(35)와 이화용씨(38) 부부. 이유진 기자

강지민씨(35)와 이화용씨(38) 부부 역시 네살배기 딸을 데리고 왔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오고 싶었지만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오기 힘들어 오지 못했다”며 “이번에 직접 와보니 신나고 좋다. 행사가 너무 모범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아이 때문에 왔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는 이미 자라서, 같이 살아가는 걸 아는데 딸은 이제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나.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됐으면 해서 왔다. 앞으로도 매년 참가할 예정이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전모씨(49)는 “소수자에게 평등하지 않은 한국의 사회와 제도, 시각이 옳지 않다 싶어”서 이번에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다. 이성애자라고 밝힌 전씨는 “직접 보기 전에는 편견이 있었다. 성소수자도 정상적인 사람인데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와보니 축제답게 유쾌하고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건 다원화된 시대에 맞지 않다”며 “다른 사람의 의견과 성향을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음엔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오고 싶다”고 밝혔다.

11일 여성주의 정보생산자 조합 ‘페미디아’ 측이 “이렇게 퀴어하면 기분이 조크든요”라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이유진 기자

■“일 년에 한 번이지만 모일 수 있어 좋아”

레즈비언 커플 ㄱ씨(23), ㄴ씨(27)는 퀴어 문화축제에선 “사람들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2월부터 교제를 시작했지만, 평소에 함께 다닐 땐 커플인 티를 못 낸다. 이들은 “여기서는 전부 다 퀴어니까 편하다”며 “이렇게 많이 한데 모이니 우리가 꽤 숫자도 많고 활동적인 사람들도 많다는 걸 나 스스로도 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레즈비언 커플은 특히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함께 다녀도 다들 보통 ‘그냥 친한 친구’라 생각하고 만다. 그래서 별로 ‘내 주변에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것 같다. 혐오 피해는 오히려 덜 당하지만, 스킨십이라도 할 경우 의식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들은 “퀴어퍼레이드에선 사람들에게 (커플이란 사실을) 알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에이즈감염인연합회 부스는 이번에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 부스 측은 “최대한 많은 분들과 만나려고 부스를 차리게 됐다. 이런 기회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누도 꽤 많이 팔렸다”고 했다. 부스 앞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주제로 퀴즈도 진행됐다.

성소수자부모모임 지인 활동가는 “프리허그 시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힘든 시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와서 안겨 울기도 했다. 조카가 성소수자라며 부스를 찾아온 50대 여성도 있었다”고 전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부스에서는 성소수자 부모를 위한 가이드북 등이 판매됐다.

11일 오후 대한문 근처 건물에서 내려다본 서울광장 주변 모습. 앞쪽이 대한문 앞 혐오 세력 집회, 뒤쪽이 퀴어문화축제가 진행 중인 서울광장. 최미랑 기자

■“축제 현장보다 바깥이 더 시끄러운 아이러니”

김모씨(20)와 이모씨(20)는 이날 축제 현장을 찾은 이성애자 커플이다. 이씨는 “둘 다 퀴어 축제에 와 본 건 처음”이라며 “언론에서 선정적인 사진만 보여줘서 논란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오히려 건전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러니 한 것 같다. (혐오 세력이 집회를 하고 있는) 밖은 저렇게 소란스러운데 오히려 안은 얌전하다. 개성을 강하게 표출하자는 취지로 열리는 축제인데 밖에서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상황이 웃기다”고 말했다. 그는 “일 년에 딱 한번, 하루만 자유로운 상황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매번 오고 싶었지만 바빠서 올해 처음 참가했다는 게이 커플 데인(27)과 제이미(27)는 오늘 행사 중 “바깥에서 반대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인상깊다”고 말했다. 데인은 “저들이 길에 나올 이유가 우리보다 절실한 것 같지 않다”며 “한국은 미국 등 외국에 비해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훨씬 작고 성 정체성을 알리기가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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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이유진·최미랑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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