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여교사 '신상털기' 논란.."피해교사 두번 죽이는 셈"

이미호 기자 입력 2016. 6. 9. 16:37 수정 2016. 6. 1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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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교사신상, 우리가 꼭 알아야만 했던 정보일까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현장+]교사신상, 우리가 꼭 알아야만 했던 정보일까 ]

섬마을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한 기사들이 연일 각종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도배하고 있는 가운데 대다수 언론들이 피해 교사의 신분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거리낌없이 보도해 이른바 '신상털기' 논란이 일고 있다.

네티즌에 언론까지 가세하면서 마치 온 국민이 피해 교사가 누군지 '역추적'하는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거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다수 여교사들은 피해교사의 신상이 과도하게 노출되고 있다며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용기를 내어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신상털기를 당하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인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씨(여·32)는 "같은 여자로서 내가 피해 교사라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면서 "솔직히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신상 정보를 근거로 마음만 먹고 뒤지면 누군지 금방 알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언론윤리에 어긋나는 과도한 정보들이 기사에 언급됐다는 점이다. 사건 초기 대다수 언론들은 피해 교사의 거주 지역, 나이, 담당분야 등 신상 정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온 국민의 공분을 샀고, 이와 동시에 피해 교사의 신상 정보도 더욱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실제로 지난 3일, 이 사건이 언론에 처음 알려졌을때만 해도 언론들은 '전남의 한 섬마을' '전남 모 섬마을'로 보도하는 등 구체적인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또 부임 시점과 관련해서도 '최근 부임한'으로 나왔고, 여교사의 나이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후 지난 5일부터는 전남 신안군이라는 '군'단위 지역까지 언급됐고, 6일에는 흑산도라는 구체적 지명이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다.

7일에는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흑산도 성폭행범' 식으로 제목을 뽑았고, 그 이후엔 정치권 인사들이 현장방문에 나서면서 초등학교 이름까지 기사에 실렸다.

게다가 피해 교사 뿐만 아니라 과거 도서벽지 지역에서 근무했거나 현재 근무중인 교사들의 신상털기까지 이어지는 등 피해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피해교사가 '기간제 교사'라는 카더라식 정보가 나오면서, 해당 학교에서 한때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던 A씨의 신상이 털리기도 했다.

심지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기간제 교사라는 A교사의 얼굴 사진이 돌았다. "몸매가 어쩌고저쩌고" 등의 댓글이 난무했다. 일부 인터넷 언론들은 사실 확인 없이, 기간제 교사라는 내용을 기사에 실었다.

A교사는 교총 등 교원단체에 전화해 눈물로 호소했다는 전언이다. 일가 친척 뿐만 아니라 지인들까지 연락해 "괜찮냐"고 물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A교사는 피해 교사의 신상이 노출될까봐 "기간제가 아니라 정교사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에 급기야 교육부와 전남교육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기간제 교사가 아니다"라는 해명까지 냈다.

전문가들은 언론윤리상 성범죄 피해자와 관련한 정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유명한 사람이나 공직자의 경우에도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신상 노출이 자제되는데, 피해 교사가 일반 시민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는 비판이다.

물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성범죄 발생 지역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이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폐쇄적인 지역 특성을 고려해 신상 노출에 유의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당연히 언론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피해 교사의 구체적인 정보들이) 과연 언론의 자유와 관계가 있는 사안인지 모르겠다"면서 "언론은 '공기'와도 같다. 네티즌들이 다는 댓글 수준으로 기사를 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24조(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 누설 금지) 1항 및 2항에 따르면 피해교사의 구체적인 신상을 밝힌 수사주체와 언론은 처벌이 가능하다.

성폭력범죄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한 사람은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직업, 학교, 용모, 그밖에 피해자를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인적사항과 사진 또는 사생활에 관한 비밀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또 이러한 특정 사안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신문 등 인쇄물에 싣거나 방송 또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개해서는 안 된다.

이미호 기자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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