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목 조이는 CCTV

2016. 6. 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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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CCTV 감시’ 사망 첫 산재 인정
이지테크 노조위원장 양우권씨
노조 탈퇴 안했다며 해고 반복
복직 뒤엔 왕따·CCTV 4대 감시
“감시당하니 미치겠다” 목숨끊어
“CCTV, 노동자 인권침해” 지적

“저놈의 카메라 신경이 쓰여 죽겠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리겠다. 망치로 두드려 깨버렸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나.”(2014년 8월27일·사진)

지난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양우권(당시 50살)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이지테크 분회장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대한 불안감을 일기에 남겼다. 2006년 출범한 노조를 혼자만 탈퇴하지 않았던 양씨는 감봉, 무기한 대기발령, 두 차례 해고, 두 차례 정직을 당했다. 두 차례 해고돼 모두 복직판정을 받고 출근한 뒤 시시티브이로 감시받았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위원회)는 양씨의 가족이 근로복지공단 여수지사에 신청한 산재보험 유족급여 등의 청구와 관련해 지난달 27일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한다”고 판정했다.

회사의 시시티브이 감시 등으로 우울증이 심각해진 노동자의 죽음이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원회는 판정서를 통해 “해고와 복직이 반복되는 과정, 복직 후 이어진 사용자의 법적 대응 및 징계 처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업무와 관련한 우울증이 발생했다. 악화된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자살했다”며 회사 쪽에 유족연금과 장의비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위원회가 밝힌 대로 양씨를 죽음으로 몬 것은 회사의 집요한 감시와 ‘왕따’였다. 1998년 포스코 광양제철소 협력사로 산화철을 생산하는 이지테크에 입사한 그는 2011년과 2012년 부당해고에 맞서 싸워 모두 이겼다. 하지만 2014년 5월23일 복직한 그에게 회사는 제철소 밖 회사 사무실의 책상 앞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양씨는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한 행동을 회사 쪽이 지적하자 비로소 시시티브이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 쪽은 양씨가 복직하기 직전인 2014년 5월15일 회사 안에 시시티브이 4대를 설치했다.

양 분회장은 그곳에서 1년여를 보냈다. 동료들과 대화도 못했고, 함께 식사도 못했다. 벽을 마주 보는 책상에 8시간 내내 앉아 있었다. 앞서 양씨는 2011년 회사가 동료를 통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 뒤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유족은 “시시티브이를 통한 감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아무런 업무를 주지 않고 책상 앞에 이렇게 앉혀 놓으니깐 정말 미쳐버리겠다”(2014년 9월2일)고 일기에 적었다. 양씨의 유족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철갑 조선대 의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회사가 시시티브이 감시 등을 이용해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를 몰아가는 과정에서 우울증 등 정신심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유성기업 노동자 3명도 지난달 노조 탄압에 시달리다가 얻은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2014년 이후 충남 아산공장과 충북 영동공장에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는 판정을 받은 유성기업 노동자는 7명으로 늘었다.

유성기업 충남 아산공장 노동자 김아무개(38)씨는 2014년 11월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직장폐쇄 기간 중의 농성, 해고 등 불이익, 시시티브이 등의 감시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누적돼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가 온 것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해고돼 중재를 할 때 회사 쪽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찍힌 사진들을 내놓아 깜짝 놀랐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지 시시티브이가 있는지를 항상 확인한다. (누가 나를 감시하는지 살피는 것이) 몸에 뱄다”고 말했다.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정책교육부장은 “시시티브이는 노동자 인권침해 도구이자 노조 탄압에 악용돼 노동자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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