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집단 성폭행 사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광주CBS 박준일 기자 2016. 6. 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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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권 없는 언론보도로 피해자와 섬주민 '2차 피해'
학부형 등 세 명이 교사를 성폭행했던 관사 외관. 현재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진=광주CBS 김형로 기자)
전남 지역 한 섬마을에서 일어난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가운데 언론의 마녀사냥 식 보도가 잇따르면서 피해자와 해당 지역민들이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한밤 중 일어난 여교사의 집단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사건 다음날 한 커뮤니티에 '도와주세요'로 시작된 글을 올리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언론의 역추적으로 보도가 잇따르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최초 신고를 접하고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했지만 사건 초기부터 언론 브리핑을 하거나 보도자료를 배포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을 감안해 피해자의 2차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 매뉴얼대로 언론노출을 하지 않은 채 수사를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대응은 달랐다. 관련 보도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정작 피해자와 해당 지역민들에 대한 배려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메이저 언론사라고 자처하는 일부 언론에서마저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특정 지역의 시·군 단위가 아닌 마을 단위 지명까지 대서특필하면서 해당 군은 '천사의 섬'에서 순식간에 '악마의 섬'으로 추락했다.

주요 신문 방송과 인터넷 포털에는 섬마을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면서 군 지역 명기는 물론 면 단위와 마을 단위의 지명까지 공개하는 이른바 언론폭력이 난무했다.

특히 8일 한 중앙일간지는 사회면을 통해 관련 보도를 내보내면서 이 섬의 지명을 보도했고 인터넷 판에도 같은 기사가 올라가면서 한 포털 사이트에서만 댓글이 1만 1000여 개가 넘게 달렸다.

이처럼 사건이 일어난 지역 명 표기로 해당 군의 게시판은 비난글로 도배되면서 군의 이미지 실추와 군민들도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

특히 가장 우려되는 것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선정적이고 마녀사냥 식 보도를 이어가면서 피해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신상 공개이다.

이미 특정 섬 지역명이 공개되면서 해당 초등학교와 교사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의 정보 접근이 가능해 피해자는 집단 성폭행 사건에 이어 회복할 수 없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성폭행 사실 자체뿐 아니라 수사 및 재판 과정과 언론의 보도로 인한 2차 피해로 더욱 심각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원과 사생활이 공개되고 선정적이고 흥미 위주로 접근된 보도는 피해자가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성폭력 2차 피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원 노출'이다. 피해자의 얼굴, 이름, 거주지 등을 직접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법적 의무다.

언론윤리 규정상도 피해자의 직업과 나이, 범죄 발생 장소 등 간접 정보들의 조합을 통해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04년 11월 경남지역 고교생 45명의 여중생 자매 집단 성폭행 사건도 2차 피해를 당한 같은 예다.

당시 사건은 경찰의 피해자 인권보호 소홀과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막말 파문으로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경찰서장과 경찰관들이 줄줄이 대기발령을 받거나 좌천성 인사조치 된바 있다.

특히 국가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진상조사에 나서면서 재발 방지 매뉴얼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당시 피해자 A양은 집단 성폭행과 2차 피해인 언론의 신상 공개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는 등 후유증을 앓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으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전남지역 한 섬 마을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해당 지역민들의 2차 피해를 보면서 언론의 사회적 책무와 언론 윤리규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광주CBS 박준일 기자] 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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