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라도 종일반 서류 내달라" 강요하는 어린이집

남보라 2016. 6. 6.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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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내달부터 아이들 눈칫밥 먹을까 발동동

정부 보육료 지원 종일반의 80%

일부 원장들 경영난 이유로

“위장 취업이라도…” 노골적 요구

무급 가족 종사자ㆍ워크넷 이용 등

온라인 카페에 편법 노하우 봇물

허위서류 걸리면 모두 처벌 대상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에 사는 주부 A(37)씨는 몇 주전 둘째 아들(1)이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서류’를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7월부터 어린이집 맞춤형(반일제) 제도가 시행되면 외벌이 가정인 A씨의 자녀는 맞춤형 대상 아동이라 보육료가 줄어드니, 종일제 이용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만들어 달라는 얘기였다. 맞춤형은 종일제(12시간) 이용시간의 절반인 6시간만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어, 정부에서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보육료도 종일제의 80% 수준이다.

종일제를 이용하려면 취업, 구직, 학업 등 부모 둘 다 자녀를 돌볼 수 없는 사정을 서류로 증명해야 하지만 A씨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없어 서류를 준비하지 못했다. 사정을 얘기하자 원장은 “일단 최대한 준비해보고, 안 되면 다시 논의해 보자” 며 종일제가 안되면 아이가 어린이집을 나가야 한다는 투로 얘기했다. A씨는 “아이를 나가라고 할까봐 너무 불안해 구직 중이라고 허위로 자기기술서를 쓸 생각”이라며 “모든 어린이집이 보육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종일제 아동만 선호할 게 뻔해 전업주부들은 갈수록 어린이집 이용이 힘들어질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달 맞춤형 보육 시행을 앞두고 종일제 증명서류 제출을 둘러싼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어린이집이 반일제 보육 대상 부모에게 동 주민센터에 허위 서류를 내 종일제 보육을 신청하라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보육료는 0세의 경우 종일제는 월 82만5,000원, 맞춤형은 66만원으로 종일제가 16만5,000원이나 많다. 이에 어린이집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전업주부들에게 “위장취업 할 곳 없느냐”는 식으로 허위 종일제 서류를 요구하는 것이다.

온라인 육아카페에도 허위 서류 제출을 종용하는 어린이집들에 관한 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전업주부는 “어린이집 원장이 ‘엄마는 일 안 할거냐, 방법을 연구해서 서류를 써주면 좋겠다’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며 “애가 밉보일까 두려워 결국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다”는 글을 올렸다. 심지어 남편이나 가족이 사업자 등록증이 있으면 실제 일하지 않아도 ‘무급 가족 종사자’로 종일제를 요청하는 자기기술서를 쓰면 된다거나, 실제로 구직 중이 아니라도 정부의 고용정보시스템인 워크넷에서 구직등록확인증을 받으면 3개월 간 구직으로 인정돼 종일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등 허위로 종일제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까지 공유되고 있다.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은 종일제 대상이 된다고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늘리지 않을 예정인데도 혹여 자녀가 보육료가 적다는 이유로 눈칫밥을 먹을까 하는 걱정에 서류를 구하느라 전전긍긍이다. 한 전업주부는 육아카페에 “원장이 어린이집 운영이 힘들다며 위장취업 할 곳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그럴 만한 곳이 없다”며 “아이가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며 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있는데 눈치 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고, 정말 답답해 며칠째 잠도 안 온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어린이집을 몇 시간 이용하든 아동 1명당 똑같은 보육료를 지원해 온 지금까지는 늦게까지 자녀를 맡기는 맞벌이 가정이 어린이집 눈치를 봐왔지만, 이제는 자녀의 보육료가 낮은 전업주부들이 어린이집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종일제 보육료도 원가보다 낮은데 맞춤형은 그 보다 더 깎는 것이니 어린이집 경영악화가 심화돼 일부에서 서류 위조 등의 유혹을 느끼는 것 같다”며 “이 같은 부작용을 없애려면 근본적으로 정부가 보육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의 종용으로 종일반 허위서류를 낼 경우 원장과 부모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종일반 자격이 안 되는데 허위 서류로 종일반을 이용하면 보조금 부정수급에 해당한다”며 “어린이집 원장이 허위 서류를 요구할 경우 절대 응하지 말고 복지부나 지자체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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