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여교사 노리고.. 그들은 학부모도 주민도 아니었다

입력 2016. 6. 5. 18:59 수정 2016. 6. 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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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전 모의 가능성

전남지역 한 섬 초등학교 여교사를 성폭행한 학부모 등 마을주민들이 사전에 범행을 모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여교사들의 안전이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한 섬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도서벽지 지역 교사배치 원칙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섬마을 발칵 뒤집은 여교사 성폭행 사건

전남 목포경찰서는 섬 초등학교 관사에서 여교사를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학부모 A(49)씨 등 마을주민 3명을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 마을 주민이 여교사에게 술을 강권하고 범행장소로 관사를 선택한 점으로 미뤄 사전 모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지난 3월 이 학교에 부임한 여교사는 지난달 22일 이 학교 신규 교사들과 함께 섬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여교사는 평소 육지로 떠났던 주말과 달리 토요일인 지난달 21일 관사에 머물렀다. 다른 신규 교사들은 섬과 가까운 목포로 갔다가 다음날 섬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학교 관사에는 여교사 혼자만 머물게 된 것이다.

여교사는 섬 여행 전날인 지난달 21일 학부모 A씨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평소 A씨의 식당을 자주 이용한 여교사는 이날 A씨의 권유로 마을 주민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게 됐다. 학부모와 교사로 만난 마을 주민들은 여교사에게 가정에서 담근 인삼주를 권했다. 경찰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교사가 강권에 못 이겨 술을 마시고 만취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교사를 처음에는 식당에서 재웠으나 밤이 깊어지자 A씨가 자신의 차로 관사까지 바래다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여교사를 데리고 가장 먼저 관사에 도착한 A씨는 금수로 돌변해 성폭행을 저질렀다. 술자리를 함께했던 B씨는 A씨의 차를 뒤따라가 관사에서 A씨가 나오는 것을 보고 관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때마침 A씨의 전화를 받고 뒤따라온 마을 주민 C씨가 관사로 들어오는 바람에 혼자 밖으로 나왔다.

C씨는 술자리에 없었던 마을 주민으로 A씨가 “관사에 좀 가보라”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사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C씨도 여교사가 술 취한 채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성폭행에 가담했다. C씨는 경찰조사에서 성폭행을 강력 부인했다. 집으로 돌아가던 B씨는 C씨가 관사에서 빠져나온 후 다시 관사에 들어가 세 번째 성폭행범이 됐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범행에 가담한 마을 주민들은 주말이면 관사가 비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이는 사전에 충분히 모의했을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C씨가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여교사가 초동조치를 잘해 범행을 입증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여교사가 범행을 알고 난 직후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증거자료를 충분히 확보했다”며 “여교사에게서 채취한 증거물에서 B씨와 C씨의 DNA가 확인되자 범행을 부인하던 C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잘 안 난다고 진술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성폭행 사건이 알려지기 전에 여교사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가 윤간을 당했다’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남자친구는 “큰 일을 당하고도 담담하게 버티는 여자친구가 고맙다. 그 때문에라도 이번 사건이 올바른 방향으로 마무리지어졌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피해 여교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을 보여 병가를 내고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도·오지 여교사 근무실태 파악 시급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20대 여교사가 기피지역 학교에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서벽지학교의 교사배치 원칙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서벽지 교사 구성은 각 학교에 필요한 교사를 적정하게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가산점제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제각각인 형편이다.

교사 대부분은 도서벽지 근무를 기피한다. 생활여건이 불편할뿐 아니라 좁은 지역사회 특성상 수업 후에도 주민들과 수시로 식사와 상담을 하면서 업무가 연장되기 일쑤다. 또 이번 사건처럼 취약한 보안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도서벽지 지역 학교를 관할하는 시·도교육감들은 교육감이 부여하는 선택가산점을 통해 승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도서벽지 근무를 거치도록 유도해 왔다.

하지만 최근엔 경기도교육청 등 일부 지역에서 도서벽지 근무 가산점을 축소하자 도서벽지 발령이 상대적 약자이자 경험도 짧은 신규교사나 기간제 교사로 쏠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포천의 한 학교는 올해 초 새로 발령난 초등교사 104명 중 91.3%에 달하는 95명이 신규교사로 배치되기도 했다.

배동인 교육부 교원정책과장은 “신규교사를 되도록 도서벽지에 배치하지 않고 있지만 여교사의 경우 워낙 수적으로 많다 보니 신규교사라 하더라도 도서벽지에 발령을 내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여교사 배치 시 경력 등을 감안해 발령하는 등 대안 마련을 각 교육청에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7일 전국시도교육청 관계자를 소집해 각 지역 도서벽지 학교와 교사, 관사 현황 제출을 지시하는 등 실태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김예진 기자, 목포=한현묵·한승하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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