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9> 한국의 산후조리 문화는 요란한 걸까
“엄마는 축복받은 황금 골반이네요.”
담당 의사의 진단대로 나는 유도분만 4시간 만에 아이를 순풍 낳았다. 곧장 미역국을 들이켜며 “갈증이 가장 힘들었다”며 의기양양했다. 출산이 어마어마한 몸의 변화라는 걸 간과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한 겨울에 간편한 차림으로 신생아실에 가다가 그만 졸도를 했다.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고통, 숨막힘으로 “진짜 미치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의식이 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웅성거렸다. 곧 의식을 회복했지만 다음 날까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신랑은 “홀아비 되는 줄 알았다”며 쩔쩔 맸다.
인터넷상에서 남녀 대결의 쟁점이 된 ‘산후조리 논쟁’을 접했을 때 조금 의아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산후조리가 뭐가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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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 논쟁은 온라인상에서 한국 남녀가 대결하는 쟁점 중 하나가 됐다. |
서양 여자들이라고 해서 혼자 육아와 집안일을 담당하는 건 아니다. 서양에서는 남편이 출산한 아내 곁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거든다. 스웨덴에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최대 190만원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성평등보너스제도’가 있고, 노르웨이는 육아휴직의 ‘아버지할당제’를 도입해 남성에게 6주 간의 유급휴가를 준다.
또 독일·스웨덴·네덜란드·영국 등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산후관리시스템이 있다. 독일에서 아이를 낳은 소꿉친구는 출산 후 독일 정부에서 파견한 헤바메(Hebamme, 산파)로부터 신생아 돌봄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독일 의료보험 가입자라면 10번까지 무료로 헤바메의 방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친구는 “나는 모유 수유를 하다가 아이가 잠들면 그대로 뒀는데 헤바메가 아이를 깨워서 더 먹여야 깊은 잠을 잔다고 가르쳐줬다”고 했다. 친구가 헤바메로부터 배운 것들을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조리원이나 직접 고용한 산후도우미에게 배운다. ‘엄마가 쉬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내 주변의 초보맘들은 실전 교육을 위해 조리원행을 택한 경우도 많았다. 국내에도 지방자치단체에 유사한 제도가 있지만 저소득층 등 소수에 한정된다.
자연분만은 회음부를, 제왕절개는 아랫배를 찢고 꿰매기 때문에 산모들은 2∼3주간 제대로 거동하지 못한다. 자연분만의 경우 곧장 씩씩하게 걸어다닐 줄 알았는데 생식기를 꿰맨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이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남자들도 포경수술을 하거나 맹장 수술을 한 뒤에는 한동안 거동이 어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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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에서 이제 막 두 사람으로 분리된 엄마와 아기가 얼굴을 맞대고 있다.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고통을 겪은 산모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
지금이야 아이와 관련해 대부분 척척 해내는 ‘베테랑 엄마’지만 ‘예비맘’ 때는 기저귀 갈기, 분유 타기 등 기초적인 일조차 염려스러웠다. 초보자의 무식이 이제 막 태어난 연약한 생명에게 해가 될까 두려웠다. 그 때 “조리원 들어가면 다 가르쳐준다”는 주변 엄마들의 말에 안심이 됐다.
하지만 산후조리원 시세를 알고는 망설여졌다. 2주에 평균 200∼300만원이었다. 연예인들의 입소로 화제가 된 ‘D산후조리원’(2주에 최대 2000만원) 가격에는 실소가 나올 뿐이었다. 주변 여자들도 조리원 가격이 비싸다는 데는 동감했지만 산후도우미 등 다른 대안도 돈이 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수유, 목욕 등 아기 돌보기부터 방 청소, 빨래, 요리, 젖병 소독 및 설거지 등 집안일을 불편한 몸으로 혼자 해낼 자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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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여성들은 출산 직후 남편의 도움과 산후관리시스템을 제공하는 국가의 도움을 받는다. |
하지만 우리나라도 모든 회사가 남편의 출산휴가를 보장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산후관리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신생아 돌봄 교육과 산모의 휴식을 철저히 가족이나 돈에 의존하는 문화가 발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지방자치단체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무료 조리원 운영’과 같은 일회성·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산후관리시스템은 많은 장점을 지닌다. 국민의 출산 부담을 덜어줄 뿐더러 일자리 창출과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1∼2시간 가정을 방문하는 도우미 제도는 수많은 여성에게 유연 근무제 형태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찬물에 손 대면 안 된다”, “뜨끈한 곳에서 몸을 지져야 한다”, “많이 움직이면 안 된다” 등 ‘꼼짝마’식 산후관리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지냈던 선조들의 방식이라 바뀌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비판의 대상은 “지갑을 더 열라”며 유혹하는 자본과 국가 정책의 부실이지 산후조리 자체가 돼서는 안 된다. 출산의 고통을 겪은 산모에게는 당연히 휴식이 필요하다. 산후조리 논쟁이 남녀 대결이라는 소모적 싸움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바꾸는 비판적 의식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국제부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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