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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멋따라> 물 만난 올레길 '제주 무레'를 아시나요?

송고시간2016-06-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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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수 따라 제주 역사탐방…6개 코스 골라 걷는다옛 제주 문화·삶 접하는 길…아름다운 자연은 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6월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됐다.

시원하게 샘솟는 용천수를 따라 걸으며 과거와 현재의 제주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여행 코스가 있다면 함께 하겠는가.

제주시 삼양과 건입, 도두, 내도 등 곳곳에 흩어져 있는 90여 개의 용천수를 이어 만든 총연장 66.5㎞의 산물(生水) 여행 코스 '무레'('물<水>+에'를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물가'란 의미)가 그것이다. '산물'은 말 그대로 '살아 샘솟는 물'(용천·湧泉)이란 뜻의 제주어다.

섬이라는 자연적 특성상 물이 매우 귀했던 제주는 해안 저지대에 주로 형성된 용천수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마을이 자리 잡았고, 물허벅·물구덕·물맞이 등 독특한 물 이용 문화가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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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첫 관문 화북포구에서 사라봉까지

"한여름만 되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수영복 차림으로 이곳 용천수에 앉아 더위를 식힙니다. 물이 차고 깨끗해서 옛날에는 먹는 물로 사용했어요."

마을 문화 해설사인 양진일(79) 할아버지가 제주시 화북동 화북포구에 있는 용천수인 속칭 '대명물'(큰질물 또는 큰짓물)에 대해 설명하며 포구 쪽 바다를 가리켰다.

밀물일 때는 돌담 틈 사이로 바닷물이 대명물 안으로까지 들어오지만, 썰물 때는 담수인 용천수만 남기 때문에 몸을 담그며 더위를 날리는 데는 제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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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수가 솟아 나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바닥에서 미세한 물거품이 연신 올라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화북 마을은 옛날 제주 목사가 부임할 때 첫발을 내딛던 제주의 관문이었다.

제주 목사는 아마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이곳 용천수를 마시며 긴 여정으로 말미암은 갈증을 달랬을 것이다.

화북포구 일대에는 대명물 외에도 가래물·중부락물·비석물 등 다양한 용천수가 남아있지만, 과거 돌담으로 둘러싸였던 자리를 대부분 시멘트로 평평하게 미장해버려 옛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있다. 그런데도 용천수 바위틈 사이로 바닷게가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자연환경을 자랑했다.

선인들은 귀한 용천수를 공동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물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마을마다 규약을 정해 엄격하게 지켰다.

샘 주위를 돌담으로 두르고 물이 나오는 용출구 가장 가까운 곳은 취수전용장으로, 조금 떨어진 곳은 생활용수, 하류는 목욕장 등으로 위계에 의해 사용을 달리했다. 규약을 어겼을 때는 마을마다 정해진 벌칙에 따라 벌을 받거나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퇴촌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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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 마을 일대에는 정월을 맞아 해신제(海神祭·바다에서의 안전한 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가 열리는 해신사(海神祠)와 조선시대 방어유적인 화북진성, 화북동 비석거리 등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제주 선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해안가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해발 184m의 조그마한 오름 사라봉과 만난다.

사라봉은 저 멀리 바닷속으로 지는 해가 아름다워 제주를 대표하는 '영주십경'(瀛州十景)의 하나인 사봉낙조(紗峰落照)를 즐기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라봉 북쪽 기슭에 있는 산지등대 인근의 절 사라사에는 '망애물'(만안이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다.

절에서 정성을 들일 때 사용했던 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물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다고 하는데,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샘이 마르고 불공을 드리면 다시 솟아난다는 말이 전해진다. '망애'의 뜻은 명확하지 않지만 '바다로 나간 사람을 애절하게 기다린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지역주민은 이해하고 있다.

사라봉 정상에서 사라사로 내려가다 보면 바다와 접한 제주시 절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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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원도심을 걷다

사라봉을 내려와 제주항을 지나면 또 다른 용천수인 '지장깍물'(지장샘이)과 '금산물'이 있는 제주 물사랑홍보관으로 이어진다.

물사랑홍보관은 1953년 제주도 상수도 역사가 시작된 금산수원지를 최근 리모델링 한 곳으로, 물의 생성과정과 제주의 독특한 물 문화를 보여준다.

지장깍물과 금산물은 얼음같이 차고 맛이 좋아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목욕하러 모여들었다고 한다.

금산물 하류에는 1급수에서 사는 회귀성 어종인 은어가 철마다 돌아와 알을 낳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수질을 자랑한다.

과거 '금산'(禁山)이라 불렸던 이곳은 제주성내와 옛 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많은 문화 명소가 있던 유서 깊은 현장이다.

제주성 북성 문턱에 우뚝 솟은 이 언덕에는 제주 특유의 난대림이 우거져 있어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오랫동안 입산을 통제한 데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영주십경 중 하나인 산포조어(山浦釣魚·불 밝힌 고기잡이배로 가득 찬 산지천 일대 장관)는 이곳 금산에서 바라본 산지천의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금산 일대는 포제단, 복신 미륵, 공신정 등이 있었으며 그 기슭에는 영은정, 북수각, 천일정, 죽서루, 무지개다리, 김만덕의 객주터 등이 있었다.

김만덕 객주는 조선시대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제주도민을 먹여 살린 여성 거상 김만덕(金萬德·1739∼1812년)의 나눔 실천을 기리기 위해 최근 복원됐다.

복원된 객주에는 전시공간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주막이 있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제주 전통 음식에다 막걸리 한 사발 하는 여유를 부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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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에서 100m 남짓한 거리에는 산지천(山地川)이 있다.

한라산 중턱에서 발원, 아라동과 이도동·일도동을 거쳐 하구(河口)인 건입동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흐르는 하천이다.

탐라역사의 발상지로서 중요한 기능을 한 이 하천은 조선시대에는 마실 물인 산지천을 성 안으로 들이기 위해 성곽의 둘레와 규모를 확장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제주시민의 친수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산지천은 1842년 제주목사였던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誌) 등 여러 고문헌에 산저천(山低川)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금산 아래를 흐르는 내천'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산지천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주의 원도심에 들어서게 된다.

동문시장과 제주목관아, 관덕정, 제주성지, 향사단, 오현단 등 제주성 안팎 주변 도심지에 보고 즐길만한 역사·문화·관광자원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다끄내물, 어영물, 몰래물 등으로 이어진 용담동 해안도로는 제주시 해안 절경 중 백미로 꼽힌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탁 트인 해안도로를 걸으며 자연 그대로의 제주뿐만 아니라 제주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올레길'이 아름다운 제주의 비경을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힐링을 추구하는 길이라면 산물 코스 '무레길'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살아온 제주인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제주를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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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물 여행 코스 '무레'

제주 용천수는 빗물이 한라산이나 곶자왈 등지에서 스며들어 땅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지층이 깨지거나 열린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샘물이다.

탐방객은 오소록(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을 뜻하는 제주어)한 곳에서 일년 내내 15∼18도를 유지하는 산도록(시원하고 차가운)하고 조로록(물이 맑게 흐르거나 떨어지는) 흐르는 물맛을 느낄 수 있다.

용천수는 현무암으로 형성된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지질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제주 전역에 911개의 산물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발 5m 이하 해안선 부근지역에 있는 것은 모두 520곳으로 전체의 57%에 이른다.

제주발전연구원은 2009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현장답사를 거쳐 도보로 3∼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는 6개 걷기코스를 만들었다.

1코스는 화북동 별도봉부터 삼양동 원당봉까지 총연장 10km다. 별도봉 정수장을 출발해 화북천∼서창물∼중부락물∼화북진성∼비석물∼고래물∼대명물로 이어진 화북 구간, 아랫물∼빌레물∼각시물∼용천목욕탕∼삼양 제1·2수원지∼엉덕물∼우미소물 용천목욕탕∼원당봉∼삼양선사유적지로 연결한 삼양 구간으로 나뉜다. 선인들이 규약 등을 통해 용천수를 지혜롭게 사용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2코스는 건입동∼도두동 일대 총연장 10㎞다. 사라봉∼물나는 굴∼금산물∼산지천∼용연∼서한두기물∼용두암∼다끄내물∼어영물∼말물로 이어진다. 중간에 탑바리, 칠성통, 동문시장 등 3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제주 최대 상설시장을 끼고 있어 다양한 쇼핑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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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봉∼내도동의 3코스는 총연장 9㎞다. 지식빌레물∼지름물∼오래물∼이호수원지∼원장물∼물맛는디∼알작지∼월대∼외도천∼물나는여다. 산물이 매우 잘 보존된 대표적인 코스로 독특한 제주의 돌문화를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4코스는 영평동∼아라동 삼의오름으로 총연장 17㎞다. 알샘이∼신소물∼가시나물∼동샘이물∼삼의악물∼산천단물∼보난물 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조선시대에 설치했던 국영 목마장의 경계였던 돌담으로 쌓은 잣성과 일제 강점기에 만든 진지동굴 등이 있다.

5코스는 회천동 새미물에서 시작해 화천사∼조로새미∼명하물∼절물휴양림∼장생이숲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14㎞다. 오름과 숲길, 제주4·3평화공원 등이 있다.

6코스는 애월읍 항파두리성∼구시물∼극락샘∼장수물∼유수암천∼종신당∼안오름못∼항파두리 항몽유적지로 총연장 6.5㎞다. 역사유적과 자연유산 등이 있다.

코스마다 독특한 탐방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산물을 중심으로 코스를 설정했기 때문에 어떤 코스는 거리가 일정하지 않은 단점이 있다. 필요에 따라 자전거 또는 자동차를 이용해도 좋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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