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인술]부정맥과의 숨바꼭질 끝내려면

박희남 |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2016. 6. 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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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언론에 종사하는 ㄱ씨가 부정맥 클리닉을 찾아왔다. 최근 과로하면 맥박이 철렁하며 건너뛰는 증상 때문이었다. 문진 결과 빈도는 수일에 한 번씩 나타났고 경미한 흉통도 있어, 24시간 활동 심전도와 심장기능 검사를 진행하였다.

다행히 구조적 심장병은 없었고 심전도에서는 조기수축이라는 양성 부정맥만 발견되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약물복용도 필요 없는 부정맥이었다. 휴식과 금주로 좋아진다는 확신을 주었다. ㄱ씨에게 “증상이 있을 때 빨리 와서 심장검진을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언론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부정맥이란 질환이 이젠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지식 없이, 막연한 염려에 사로잡히거나 증상이 없다고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이맘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무지와 불확실성의 열매는 두려움이다. 부정맥이 바로 대표적인 ‘불확실성의 질환’이다. 다른 심장병과 달리 일반 심장 검사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잠시 나타났다가 숨어버리는 도깨비 같은 병이기 때문이다. 부정맥이 고개를 쳐들었을 때 심전도로 잡아내야만 확진이 가능하고, 약을 먹어도 시술을 받아도 재발이 드물지 않는 병이다. 더욱 골치 아픈 것은 무증상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발병하여 돌연사나 뇌졸중 같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노련한 부정맥 전문의는 환자의 증상이 중요한 단서이긴 하지만, 이에 의존해서 의학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부정맥은 심전도로 증명하고 심전도로 치료 효과를 판단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잘 잡히지도 않는 도깨비 같은 부정맥으로부터 돌연사나 뇌졸중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막을 것인가. 정답은 심장검진을 통한 조기 진단이다.

ㄱ씨에게서 발견된 조기수축 같은 양성 부정맥도 협심증이나 심부전증과 같은 심장병에 동반되어 나타나면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부정맥 환자의 증상이 심해도 구조적 심장병이 없다면 돌연사나 악성 부정맥의 위험은 희박해진다. 이 때문에 부정맥 의심 증상이 있을 때 심장 검진을 통해 구조적 심장병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대개 가슴이 뛰는 것이 부정맥 증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어지러움, 피로감, 맥이 건너뛰는 느낌, 기침, 흉통, 호흡곤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뇌졸중의 주요 원인인 심방세동(심방 잔떨림) 같은 부정맥은 환자 약 40%가 그 증상을 못 느낀다.

반면, 흉통·호흡곤란·실신과 같은 증상이 있었다면 구조적 심장병 유무에 대한 심장 검진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이와 동반된 부정맥이 있었다면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돌연사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부정맥 의심 증상이 있다면 심장 검진을 철저히 받는 것이 추천된다.

‘술·담배를 끊고 평소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는 당연하고 상투적인 멘트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부정맥이 있는 분들에게 심장 자율신경의 활성은 매우 중요한 악화 인자이다. 따라서 ‘과’자가 들어가는 일을 무조건 피하자. 과로, 과식, 과욕 등을.

<박희남 |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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