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감시 사각지대서 독점사업..사장도 직원도 '모럴 해저드'
◆ '비리백화점' KT&G ◆
① 비극의 시작은 지배구조
공공기관도 민영기업도 아냐…책임 허술
담배에 대한 국가 독점권을 민간에 돌려준다는 취지로 2002년 민영화했지만 사실상 최대 주주는 정부다. 작년 말 현재 국민연금공단이 9.36%, IBK기업은행이 7.55%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3대 주주인 미국의 퍼스트 이글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는 5.49% 수준이다.
이는 2005년에 최대주주가 프랭클린 뮤추얼 어드바이저(7.52%), 뱅크오브뉴욕(BONY 7.38%), 아이칸파트너스마스터펀드(6.12%) 등 외국계가 지배한 것에서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2006년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정면대결을 펼치면서 경영권이 위협받자, 이후 공공기관과 국책은행 지분이 늘어나면서 사실상 민영화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2002년 민영화 당시 정부는 재벌이나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염려에 사원주주와 법인 자사주, 국민주, 외국자본이라는 지배구조의 분산 전략을 채택했고 한동안 민영화 성공사례로 KT&G를 홍보했다.
국가와 국회가 개입하는 공공기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배 주주가 확실한 100% 민영화된 기업도 아닌 어설픈 민영화로 인해 KT&G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② 국가기관 관리·감독 부재
국회·감사원 등 사실상 견제수단 없는 실정
국회, 감사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관리·감독체계가 사라진 것 역시 KT&G가 '비리 백화점'이 되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 많다. 공기업으로 운영되던 시절에는 국가기관들이 경영상태를 직접 들여다보면서 관리감독을 해왔지만, 민영화 후 사실상 견제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이 주목한 것은 해외 수입상과의 외상대금거래 내역이었다. 민영진 전 사장의 취임 이후 KT&G가 받지 못한 미수금은 크게 늘었다. 민 전 사장의 임기 4년째인 2014년 외상대금의 규모는 2188억원으로 취임 전인 2009년과 비교하면 2배가 증가했다. 특히 특정 해외수입상의 미수금 비율은 다른 수입상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는 매출액 대비 외상채권 발생비율이 무려 74%에 육박하면서 다른 수입상 평균인 1.7%에 비해 과도하게 높았다.
KT&G는 2010년 이 업체와 약정을 맺고 미수금을 단계적으로 감축해 2014년 미수액을 0원으로 만들기로 하고 이를 위반 시 주문취소와 담보취득 등 조치에 나서기로 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아무 조치 없이 방치했던 일도 있었다. 이 같은 외상거래로 KT&G는 2009~2010년 무역보험공사로부터 단기수출보험 면책 경고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외상 수출거래에 나서면서 2012년 6월 보험이 해지되기도 했다. 오히려 KT&G는 이 업체에 2010년 모두 1100만달러(약 127억원) 규모의 할인약정을 체결해 추가적인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③ 제왕적 권한 휘두른 사장
등기임원 7명 중 6명이 비상근 사외 이사
KT&G 또한 이 같은 문제점을 의식해 최근 내부 인사를 추가로 이사회 멤버로 선임했지만, 내부 인사의 이사 선임 또한 사장의 권한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를 견제하는 역할인 사외이사는 규정상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관례상 단수 추천을 하게 되면서 후보추천위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게 됐고, 후보추천위는 이사회 구성원들로 이뤄지기 때문에 역시 사장 입김이 강하다.
그마저도 사외이사들은 정보 불균형으로 실질적인 권한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근직이기 때문에 임원 보고에 의존한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고, 사실상 제대로 된 역할 수행이 어려워지면서 견제·균형이라는 사외이사제도의 운영원칙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이사회 내에 설치된 감사위원회 또한 제대로 된 감사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 실제 민영진 전 사장의 연임절차가 진행되던 2013년 1월 비위행위에 대한 투서가 제기되면서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 감사기능이 행사되지 않은 채 종결되면서 연임절차가 그대로 진행됐다.
이러다 보니 사장 선임절차의 투명성·공정성 문제도 제기됐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사장 후보자를 물색해 심사 후 주주총회에 추천하는 것이 규정상의 절차다. 하지만 2013년에는 실질적인 공모 절차 없이 사장의 '재신임' 여부를 논의하는 절차로 변질되면서 사장을 사실상 재추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KT&G는 "현 이사회는 독립된 구조로 철저한 감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④ 독점적 지위가 부른 참극
시장 점유율 절반 훌쩍…영업이익률 32%
이처럼 KT&G가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담배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KT&G의 담배 시장 점유율은 58.4%로 전년 62.3%에서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룹 전체 매출액이 4조1698억원, 영업이익이 1조3659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무려 32.76%에 달한다.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5.4% 안팎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이익률을 올린 것이다. 이 때문에 담뱃갑·팁페이퍼·필터 등을 만드는 협력업체에 KT&G는 '갑'의 지위를 누렸다. 검찰 조사 결과 KT&G는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 가격 협상은커녕 제조원가를 전액 보전해주고 일정 비율의 이윤을 보장해줬다. 특히 일부 협력업체는 하도급 납품업체에서 리베이트를 받아 다시 KT&G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KT&G는 "외국계 담배회사들과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 회사가 독점적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⑤ 회사 안팎 '검은 거래' 만연
관행적인 리베이트·로비…비자금 상납도
검은 거래는 회사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일부 임직원은 회사의 힘을 악용해 수억 원의 돈을 받아 챙기고, 상사에게 청탁성 돈을 건네기도 했다. 차명으로 하도급 업체를 만들어 회사의 돈을 빼돌리고 일감을 몰아준 비리도 드러났다. 이 모 전 부사장(60)과 구 모 신탄진공장 생산실장(48)은 담뱃갑 제조업체로부터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총 6억45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지난달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조직 내부에서는 '줄 서기'도 만연했다. 2009년 10월께 당시 생산부문장이던 민 전 사장은 부하 직원에게서 인사청탁 명목으로 4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듬해 2월 민 전 사장은 신임 사장으로 선임됐고, 이 직원은 전무·부사장으로 연이어 승진했다.
이른바 '자기거래'도 확인됐다. 이 전 부사장은 직접 차명으로 납품업체 V사를 세운 뒤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V사는 담뱃갑 제조업체 A사에 잉크, 필름 등을 납품하고, A사는 KT&G의 협력업체 자격을 유지하면서 이 전 부사장과 A사는 삼각관계를 유지했다. 또 금연정책으로 담뱃갑 디자인 업무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관련 직원들이 차명 하도급 업체를 만든 뒤 디자인 시험인쇄 발주 등을 맡기는 방식으로 자기거래를 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상덕 기자 / 최승진 기자 /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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