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파괴하고 있다?

신한슬 기자 입력 2016. 6. 1. 12:19 수정 2016. 6. 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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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5일 박근혜 대통령 초청으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다. 청와대는 인도네시아와 최대 67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하는 인프라 사업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산림분야 협력이다. 5월16일 청와대에서 양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신원섭 산림청장과 레트노 프리안사리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이 이탄지 복원 및 산불방지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탄지란 나뭇가지와 잎 등 식물 잔해가 완전히 분해되지 못하고 퇴적된 토지를 말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계 대기업인 코린도그룹이 열대우림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는 의혹이 해외 시민단체로부터 제기됐다. 그간 대규모 조림사업과 산림훼손방지 탄소배출권(REDD) 사업 참여로 해외 친환경 자원 개발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았던 코린도그룹의 ‘두 얼굴’을 고발한 것이다. 코린도그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Ardiles Rante/Greenpeace : 2013년 3월26일, 인도네시아 파푸아 섬에 위치한 농장 안에서 베어진 나무에 불이 붙어 연기가 나고 있다. 이곳은 코린도그룹의 계열사 PT BCA가 운영하는 산림 개발 지역이다.

미국 시민단체 ‘왁스먼 스트래티지(Wax-man Strategy)’는 코린도그룹이 2010년 이후 팜 야자 농장 5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열대우림 3만500㏊를 훼손했으며, 이 과정에서 땅을 정리하기 위해 고의적인 화재를 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시사IN>에 제공했다.

이 보고서는 왁스먼 스트래티지가 글로벌 환경 연구 비영리 자문회사인 에이드인바이런먼트(Aidenvironment)에 코린도그룹의 개발지에 대해 조사를 의뢰한 결과물이다. 에이드인바이런먼트는 미국 항공우주국의 위성사진과 인도네시아 산림청 발간 산림 지도를 바탕으로 2010년 말부터 2016년 3월까지 해당 개발지의 변화를 분석했다. 분석의 결론은, 2010년부터 한 번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일차림 1만800㏊와 이차림 1만9700㏊가 팜 야자 농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합치면 서울 면적의 절반 정도에 달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에이드인바이런먼트의 앨버트 텐 케이트 팜유 지속가능성 조사관은 <시사IN>과 전화 인터뷰에서 '이것은 정부 기록에 근거한 보수적인 추계로, 실제 훼손된 열대우림은 더 넓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현지 주민과 갈등도 불거져'

열대우림이 팜 야자 농장으로 바뀌면 심각한 환경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최근엔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열대우림의 탄소 저장 능력이 중시되고 있다. 유엔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20%가 산림 파괴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습한 열대우림은 1㏊당 평균 248t의 탄소를 저장한다. 반면, 팜 야자 농장의 탄소 저장 능력은 열대우림의 35% 수준이다.

생물 다양성 훼손 문제도 심각하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과 수마트라 섬의 오랑우탄, 수마트라 호랑이 등은 팜 야자 농장 확장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코린도그룹의 팜 야자 농장 대부분이 위치한 인도네시아 파푸아 섬에 서식하는 나무캥거루 역시 멸종 위기에 처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열대우림의 경제가치가 1㏊당 약 128달러로 팜 야자 농장(91달러)보다 40% 이상 높다고 보도했다. 농작물로 인한 수익을 포함해서 계산한 수치다.

그중에서도 화재를 이용한 팜 야자 농장 확대는 산불 위험과 추가적인 공기 오염,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최악의 방식이다. 열대우림 보존 캠페인 전문가들에 따르면 열대우림을 팜 야자 농장으로 바꾸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직사각형 모양의 도로를 낸다. 벌목에 필요한 중장비가 오갈 수 있는 통로다. 다음으로 1차 벌목을 통해 목재 가치가 있는 나무를 획득한다. 마지막인 토지 정리 단계에서는 목재 가치가 없는 나무며 밑둥, 뿌리를 제거한다. 이로써 팜 야자를 심을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다.

ⓒNASA 제공 : 미국 항공우주국의 위성사진에 포착된 또 다른 지역의 화재 모습.

문제는 토지 정리 단계다. 원칙적으로는 중장비를 동원해서 작업해야 한다. 그러나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불을 지르는 경우도 흔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불을 이용한 토지 정리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한다. 환경을 크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이 나라엔 불을 이용한 토지 정리 때문에 ‘연기 위기(haze crisis)’로 불릴 정도로 심각한 공기 오염이 발생했다.

에이드인바이런먼트 보고서는 2013~ 2015년에 코린도그룹의 산림 이용 허가지 안에서 화재가 최소 894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위성사진 등에 따르면, 직사각형의 구획(도로)이 그어진 뒤, 주변의 짙은 녹색 구역(숲)이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관찰된다. 토지 정리 작업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 같은 지점에서 화재가 빈발하는 모습이 포착된다는 것이다. 파푸아 섬의 코린도그룹 계열사 PT PAL(Papua Agro Lest) 농장에서는 도로를 따라 화재 패턴이 포착됐다. 또 다른 계열사인 PT TSE(Tunas Sawa Erma) 농장에서는 2015년 3월부터 12월 사이에 토지 정리 작업이 개시된 뒤 몇 달이 지나면 화재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역시 코린도 계열사인 PT BCA(Berkat Cipta Abadi) 농장에서도, 팜 야자 재배지가 화재 발생 영역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관찰되었다.

일부 농장에서는 지역 주민들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코린도그룹 계열사 PT GMM (Gelora Mandiri Membangun)이 운영하는 북말루쿠 지역의 팜 야자 농장이 대표적이다. 5월1일부터 6일까지 이곳을 답사한 열대우림행동네트워크(RAN)의 톰 피킨 씨는 <시사IN>과 통화하면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지역 공동체의 관습적 소유권이 인정되는 땅이 코린도에 의해 허락 없이 팜 야자 농장으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피킨 씨의 설명에 따르면, 현지 주민들은 열대우림 내에 과일나무나 고무나무를 재배하는 전통적 농법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코린도그룹이 열대우림을 팜 야자 농장으로 바꾸면서 현지 주민들의 농장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현지 법에 따르면, 코린도그룹은 반드시 지역 공동체와 협의해 토지 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5월17일, 인근 지역 15개 마을 주민들은 인도네시아 산림청에 코린도그룹의 토지 이용을 거부하는 공동 서한을 보냈다. 피킨 씨는 '복수의 주민들이 코린도그룹의 체계적인 방화를 통한 팜 야자 농장 확대를 확인해줬다. 땅의 권리를 둘러싼 주민들과의 소송전도 치열하다'라고 말했다.

코린도 측 '방화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

코린도그룹은 목재·제지·팜유·중공업 등 다양한 부문에 3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이다. 2010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국영 영림공사(국유림을 관리하는 공기업)와 ‘한국·인도네시아 양국 간의 산림훼손방지 탄소배출권(REDD) 시범사업 이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코린도그룹 관계자는 '코린도는 이탄지 보존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모델 사업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 사업이 상당히 높게 평가받아 이번에 한국 산림청과 인도네시아의 확장된 MOU 체결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코린도그룹이 ‘해외 친환경 자원 개발’의 첨병으로 주요 매체에 보도되어온 배경이다.

코린도그룹 관계자는 '지역 주민과 상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인위적인 방화를 통한 농장 조성을 하지 않았다'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제시된 위성사진에 관해 이 관계자는 '불이 난 지역은 이미 구획 정리가 되어 옅은 녹색을 띠고 있다. 토지 정리가 끝나고 팜 야자가 심어진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상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사로서는 매우 소중한 자산인 팜 야자가 심어져 있는 곳에 스스로 방화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미 팜 야자가 재배되고 있는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연합뉴스 : 지난 5월16일 양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신원섭 산림청장(맨 오른쪽)과 레트노 프리안사리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맨 왼쪽)이 이탄지 복원 및 산불방지 협력 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에이드인바이런먼트의 케이트 조사관은 코린도 측이 팜 야자를 심기 전 단계인 토지 정리 과정에서 화재가 목격되었다고 주장한다. 근거도 제시했다. 2013년 3월25일, 코린도 계열사인 PT BCA 농장에서 불이 났다. 다음날 글로벌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 사진가는 해당 농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에 따르면 화재는 팜 야자를 심기 전 단계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케이트는 '그린피스의 사진을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든 근거가 토지 정리 작업에 화재가 체계적으로 이용됐음을 가리킨다'라고 말했다.

코린도그룹 관계자는 '당사는 지정된 지역에서 적법하게 농장을 조성하고 있으므로 무분별한 개발과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팜 야자 농장 개발을 위한 산림 훼손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린도그룹 홈페이지에 공개된 승은호 회장의 인사말에는 '원시림을 베는 대신 나무를 기르고 자연보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특히 조림사업과 팜유 비즈니스 경쟁력은 세계 최고를 자부한다'라고 적혀 있다.

신한슬 기자 /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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