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명줄 쥐고 흔드는 '유대계 선박왕 家門'

이성훈 기자 입력 2016. 6. 1. 03:12 수정 2016. 6. 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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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 구조조정] - '용선료 협상' 가장 힘든 상대.. 조디악社의 오퍼 회장 "한국 船社들 파산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고압적 자세 컨테이너선 39척 보유.. 드러난 개인 재산만 12조원 호황·불황 사이클 면밀히 분석.. 장기 계약으로 수익 극대화

"한국 선사(船社)들이 파산하더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원칙은 원칙이다."

올 1월 유대계 선주(船主) 한 명이 서울을 찾았다. 비서도 대동하지 않은 소박한 방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해운업계 거물들은 줄줄이 그를 찾았다. 당시 심각한 위기로 접어들던 국내 해운업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용선료(선박을 빌리는 비용) 인하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해운업계의 큰손인 영국 선주사 '조디악(Zodiac)'의 실소유주 에얄 오퍼(Ofer·66) 회장이었다. 조디악은 국내에는 단 한 척도 없는 1만4000TEU급(1TEU=길이 6m 컨테이너 1개)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을 포함해 총 39척의 컨테이너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도 각각 6척, 1척의 컨테이너선을 빌려주고 있었다. 오퍼 회장뿐 아니다. 그의 친동생인 이단 오퍼(61)가 소유한 '이스턴 퍼시픽'도 현대상선에 5척, 한진해운에 1척의 컨테이너선을 대여해 줬다. 두 해운사는 과거 업황이 좋던 시절 지금 시세보다 4배 정도 비싸게 용선료를 장기 계약하는 바람에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다. 국내 채권단도 출자 전환을 통한 해운사 회생의 전제 조건으로 용선료 인하를 내건 만큼, 이 '오퍼 형제'가 국내 해운업의 목줄을 쥐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오퍼 회장의 대답은 냉정했다. "우리도 선박을 구입할 때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린다. 용선료를 받지 못하면, 우리도 이자를 낼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그와 면담한 해운업계 관계자 A씨는 "해운 시장의 '비정한 승부사'라는 평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오퍼 형제는 유명한 유대계 '선박왕 가문(家門)' 출신이다. 2011년 타계한 아버지 새미 오퍼는 1950년 소형 선박 1척으로 해운업에 뛰어든 후, 1976년 '조디악'을 설립하며 세계적인 선주사로 키웠다. 장남인 오퍼 회장은 영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방학만 되면 동생과 함께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며 선박업을 몸으로 익혔다. 오퍼 회장이 조디악을 아버지와 함께 경영하는 사이, 동생 이단 오퍼도 1987년 싱가포르에서 '이스턴 퍼시픽'을 세워 독립했다.

그리스·스위스·덴마크 등 유럽이 장악한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유대계인 '오퍼 가문'의 승부사 기질은 두드러졌다. 영국 해운 전문지 로이드 리스트는 "오퍼 가문은 해운업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주기)을 면밀히 분석한 후 안정적인 장기 계약 등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했다"며 "반면 다른 선주사들은 해운업 경기 부침에 따라 단기 실적에만 급급했다"고 평가했다.

오퍼 가문의 승부사 기질은 한국 해운사들과의 협상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18일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을 위해 5개 해외 선주사를 서울로 초청했을 때, 조디악은 유일하게 불참했고, '이스턴 퍼시픽'도 화상회의로만 참여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조디악은 '필요하면 당신들이 영국으로 오라'며 오히려 현대상선 협상팀을 압박했다"며 "다른 선주사들도 '조디악의 협상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최신 대형 선박을 다수 보유한 조디악은 설령 용선료 인하 협상이 불발돼 선박을 회수하게 되더라도, 다른 해운사에 다시 빌려주기가 쉽다. 이 때문에 용선료 인하에 가장 강력히 반대했다.

로이드 리스트는 "조디악의 협상력은 두둑한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현재 에얄 오퍼의 개인 재산은 97억달러(약 12조원)로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세계 부자 순위' 135위에 올라있다. 그의 동생인 이단 오퍼의 개인 재산도 40억달러(약 5조원)에 이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내 해운사들이 이번처럼 용선료 문제를 겪지 않으려면, 한국에도 조디악 같은 선주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창호 인천대 교수는 "선주사 역할을 할 '선박은행'이나 '선박펀드' 같은 것을 만든 후, 국내 조선업체에 선박을 주문하고, 국내 해운사에 배를 빌려주면 된다"며 "안정적인 해운업을 위해서는 국내 선주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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