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은 연기자, 주말엔 놀이동산 사장님"

심현정 기자 입력 2016. 6. 1. 03:08 수정 2016. 6. 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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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랜드' 운영하는 배우 임채무] 40년 전 자주 찾던 사극 촬영지.. 동료 조롱, 빚도 많지만 무료 개방 "아이들 덕에 연기 에너지 충전해"

배우 임채무(67)에게는 부업(副業)이 하나 있다. '놀이동산 사장님'이다. 그는 1989년 경기 양주에 놀이동산 '두리랜드'를 만들어 운영해왔다. 연간 5만~6만명이 이곳을 찾는다. 촬영이 없는 주말에는 이 놀이동산에서 시설을 관리하고 손님들을 맞는다. 연기로 번 돈 대부분을 두리랜드에 쏟아부었다. 1988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부지를 사들이고,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건물을 짓는 데 약 130억원이 들었다.

놀이동산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40년 전에 했다. 지금 두리랜드 자리는 유원지였다. "거기서 사극 촬영을 많이 했죠. 무명일 때니까 한 장면 찍고 몇 시간씩 대기하는 일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눈에 밟혔어요. 어른들은 고기 구워 먹고 술에 취해 싸웠죠. 아이들은 심심해했어요. 깨진 유리병에 발을 다치는 일도 많았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해 보였어요."

동료들은 비웃었다. 돈이 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3년 동안은 사정이 어려워 문을 닫기도 했다. 한 선배 연예인은 '채무, 너는 바보다. 그 넓은 땅에 차라리 모텔 지어 손님 받으면 건물 몇 채는 살 수 있다'고 했고, 어느 코미디언은 '엉뚱한 짓 하지 말고 내가 하는 고깃집 체인 사업을 같이 하자'고 설득하기도 했다.

임채무는 "당신들이나 잘해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돈 벌 계산 같으면 시작도 안 했다"며 들은 체도 안 했다. "일 년 열두 달 중 날 좋은 5~6개월만 장사가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겨울이나 여름에는 빚을 내 직원들 월급 주고 드라마 출연료 받은 걸로 갚아요."

두리랜드에는 입장료가 없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놀이기구를 이용할 때만 돈을 낸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문 연 지 일주일 되던 날 아이 둘을 데리고 온 한 부부가 입구에 서서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거예요. 아이들은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들어가자' 떼를 쓰고, 아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돈을 꺼낼까 말까 망설였어요. 그때 입장료가 1인당 2000원이었는데 8000원이 없었던 거죠." 임채무는 그날 직원을 불러 입장료를 없앴다.

임채무는 '사랑과 진실' '한 지붕 세 가족' '초원의 빛' '하늘이시여' 등 일일연속극과 주말드라마로 기억된다. 2002 월드컵 때 한국·이탈리아전 주심이었던 모레노를 패러디한 아이스크림 광고 등에서 코믹한 연기를 보여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는 16일은 임채무가 아내와 사별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5년 암 투병 끝에 아내가 숨지자 그의 삶도 한동안 멈췄다. 44년 배우 인생에 처음으로 연기를 쉰 기간이었다. "섭외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일을 하지 않으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게 문제였죠. 뒤에서 덜커덩 소리가 나서 돌아보면 아내인가 싶고, 창문 너머로 아내가 '여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으니까. '이렇게 세상 살아서 뭐하나. 차라리 죽자'는 몹쓸 생각도 했죠."

그 와중에도 두리랜드의 회전목마는 멈추지 않고 돌았다. 아내가 떠난 뒤엔 딸과 아들도 함께 운영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에너지를 받아 노래도 다시 시작했고, 이달부턴 일일연속극 촬영도 다시 시작한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손자 또래의 아이들이 와서 뛰어노는 걸 보면 제 입가에도 웃음이 절로 피어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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