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죄-조선·해운 6대 도시 '하청의 비명']"산업 구조조정 불가피하다 해도 노동자를 절벽에 세워선 안 돼"

김지환 기자 2016. 5. 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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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③ 하청 노동자 대책위 이승호 집행위원장

이승호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31일 경남 통영의 한 중소 조선소에서 내부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 중단하라. 다단계 하도급 물량팀 고용을 폐지하라. 임금체불·업체 폐업, 원청 조선소가 책임져라.’ 세 가지 구호를 내걸고 지난달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대책위)가 출범했다. 2012년 가을부터 노동운동 단체들 중심으로 각 지역별 상황을 공유하는 네트워크가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조선소 하청 노동자 중심으로 대량해고가 벌어지는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하자 이에 대응하는 짜임새 있는 기구가 마련된 것이다.

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호 금속노조 경남지부 미조직비정규부장(47)은 최근 한 달 새 거제·통영·고성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전화기엔 “업체 폐업으로 임금이 체불됐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이 안된다” 등 하청 노동자들의 사연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2008년부터 2년간 통영의 성동조선, 사천의 SPP조선, 고성의 천해지조선(현 고성중공업) 등에서 ‘하청의 하청’인 물량팀 노동자로 일했던 만큼 하청 노동자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집행위원장은 3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산업적 차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해도 왜 그 방식이 하청 노동자를 사회안전망도 없이 절벽으로 내모는 것이어야 하느냐”며 “더 이상 한국 사회가 사람만 자르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 조선업 노동시장에 대한 노동계나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지려면 실태부터 파악돼야 하는데 기본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계든 고용노동부든 일목요연하게 조선업 고용구조에 대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은 원청 조선소들인데 물량팀의 존재에 대해 쉬쉬하려고 할 뿐 구체적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 높은 일당 받으려고 자발적으로 물량팀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는데, 왜 이들을 피해자인 것처럼 포장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물론 4대보험 안 드는 대신 높은 일당을 받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진 않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대다수는 불가피하게 물량팀을 선택했다. 1차 하청업체에 있는다 해도 오래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물량팀에서 고생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물량팀은 없어져야 할 고용형태다.”

- 원청 조선소는 왜 1차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을 묵인하나.

“물량팀은 극단적인 ‘노동 유연화’ 모델로 원청 조선소가 경기 변동에 따른 충격을 외부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일감 있을 때 쓰다 구조조정을 할 때 정리해고와 같은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으니 손 안 대고 코 푸는 것이다.”

- 대량해고가 벌어지고 임금 삭감이 진행되는데 하청노조가 조직된 곳은 현대중공업뿐이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물량을 따라 울산, 거제, 통영, 고성 등지로 옮겨다니기 때문에 노조로 조직하는 게 쉽지 않은 조건이다. 막장인데 ‘빡쎄게’ 고생하고 빠진다는 정서가 강하다. 호황기 때는 더러우면 때려치우고 다른 데 갈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황기라 나가도 갈 데가 없는 만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노조를 만들고 싸워야 제 권리를 지킬 수 있다.”

- 대책위가 생각하는 하청 노동자 살리기 방안은 어떤 것인가.

“조선산업이 성숙단계에 진입한 만큼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물량팀 등 하청 노동자에 대한 생계지원, 직업훈련 등이 더 촘촘하게 이뤄져야 한다. 또 물량팀 중 숙련기술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향후 경기 회복기를 대비해 이들이 조선업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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