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구멍 난 매연검사..경유차 배출가스 조작 '활개'

전병남 기자 입력 2016. 5. 31. 15:05 수정 2016. 5. 3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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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매연을 쏟아내며 질주하는 차량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고속도로나 국도에선 더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미세먼지가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고 국민적 관심사가 된 이후 경유차의 배기가스는 더욱 눈쌀을 찌푸리게 합니다.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배출가스는 크게 탄소산화물(COx),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로 분류되는데, 주로 경유차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이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모든 차량은 정기적으로 매연 검사를 받도록 돼 있고, 특히 경유차의 경우 배출가스 규제기준은 더욱 엄격한데 어떻게 지독한 유해물질을 내뿜으며 운행할 수 있을까요. 검사 과정에서 배출가스가 기준을 넘길 경우, 수리를 하지 않고는 도로에 나서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검사 시스템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는 데 있습니다.

● 구멍 뚫린 경유차 매연검사…민간 검사소 유착 의혹도

SBS 취재진은 2002년식 경유 승합차를 구해 배출가스를 측정했습니다. 해당 차량의 매연 검사 통과 기준은 25%입니다. 여기서 25%란, 해당 차량의 전체 매연 배출 가능량을 100%이라고 했을때 배출 저감장치 등을 통해 매연 발생량의 25%만을 배출한다는 의미입니다.

측정 결과 매연 수치는 78%로 나타났습니다. 이 차량은 현재 정기검사 대상이지만, 매연검사는 면제를 받았던 상태였습니다. 지난 번에 매연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엔 검사에서 빼준다는 겁니다. 기준치의 3배가 넘는 매연을 뿜고 있는데도 말이죠.

원칙대로라면 이 경유차는 바로 매연을 줄이기 위한 수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니면 저감장치라도 달아야 합니다. 수리 견적을 뽑아보니 약 50만 원이었습니다. 나온 지 14년 된 차라는 점만 생각했을 때, 선뜻 내기는 망설여지는 금액인 게 사실입니다.

차량 검사 대행 브로커는 이 틈을 파고듭니다. “10만 원만 내면 합격증을 쥐어주겠다"는 미끼를 던지며 접근합니다. 직접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운전자에게 다가오기도 하고, 검사소 인근 카센터에 명함을 뿌려두기도 합니다. 인터넷도 중요한 영업장입니다. 거래가 성립되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낡은 경유차를 만지기 시작합니다.

경유차는 연료를 공급하는 방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플런저(Plunger, 일명 부란자)식과 커먼레일 (Common Rail)식입니다. 플런저는 엔진에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부품인데, 플런저 대신 고압 연료공급펌프가 쓰인 게 커먼레일 방식입니다. 오래된 경유차는 대부분 플런저 방식이고 최근에 나오는 경유차량은 커먼레일 방식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차량은 플런저 방식이었는데, 매연 조작이 쉬운 구조입니다. 엔진룸을 열고 연료 분사 펌프를 조절해주면 그걸로 끝입니다. 10여 분이면 조작이 끝납니다. 이렇게 되면 엔진에 들어가는 연료량이 줄어듭니다. 자연히 배출되는 매연량도 적어지겠죠.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연료가 적게 들어가다보니 자동차의 힘이 떨어지고, 심지어 에어컨 바람도 시원찮게 나오게 됩니다. 끌고 다닐 수 없는 수준, 결국 검사만 받고 다시 원래대로 연료 공급량을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매연도 이전처럼 많이 나옵니다.

상대적으로 어렵지만, 커먼레일 방식 역시 매연 검사 조작이 가능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화물 차량의 경우 'EGR(배출가스 재순환 장치)'을 빼고, 승용차는 '에어 플로 센서'를 탈착시켜 합격을 받아 낸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측정장비 호스와 장비 이음새 부분에 휴지를 채우기도 합니다. 휴지는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죠. 모두 불법, 아니면 탈법입니다. 머플러에 물을 넣어서 매연을 씻어 내거나, 공터에서 액셀레이터를 마구 밟아 매연을 빼내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습니다.

허점은 또 있습니다. 자동차 검사 브로커는 민간 자동차 검사소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합격증을 발급해주는 게 자동차 검사소이기 때문입니다.

브로커들은 돈을 받고 조작한 차량을 자신들과 친분이 깊은 민간 검사소로 끌고 갑니다. 교통안전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검사소는 가급적 멀리합니다. 상대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반면 민간 검사소는 합격증을 받기까지의 다양한 형태의 편의를 브로커에게 제공합니다. 온갖 꼼수를 눈감아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이런 수법을 통해 검사를 통과한 경유 차들이 지금 우리 주변을 달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 차들이 토해내는 매연은 고스란히 우리,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먹고 있었습니다.

● 미세먼지 검사 실효성 '의문'

그래도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든 경유차가 매연을 내뿜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단정 짓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살펴보죠. 경유차 배출가스 인증 기준이란 게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11년 전 유럽 수준의 경유차 배출가스 인증 기준 '유로-3'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킬로미터 당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0.5그램 이내로 규정했습니다. 기준은 계속 강화됐습니다. 2014년엔 '유로-6'이 도입됐는데 인증 기준은 0.08그램으로 더 촘촘해졌습니다.

결국 매연이 문제가 되는 것은 2005년 이전에 출시된 노후 경유차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자동차 관련 단체가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현재 2005년 이전에 생산된 410만대 정도의 경유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서울에 등록된 노후 경유차만 48만대 수준입니다. 이 중 중형 화물차가 뿜어내는 질소산화물이 킬로미터 당 4천 그램을 넘고, 대형 화물차는 9천그램을 토해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부터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질소산화물 검사 항목을 추가하는 등 매연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매연검사 제도 자체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병남 기자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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