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김현수 첫 홈런, 그리고 쇼월터의 까칠함

조회수 2016. 5. 31. 10: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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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불안해지던 시점이다. 벌써 두 번이나 삼진을 당했다. 쇼월터 감독이 큰 맘(?) 먹고 5게임 내리 선발로 내보냈는데. 내일부터는 다시 벤치로 돌아가나?

4-4 동점이던 7회였다. 상대 투수 제프 맨십은 위협적이다. 몸쪽에 붙인 초구가 섬뜩했다. 꼭 몸에 맞을 것처럼 오다가 스트라이크 존으로 꺾이는 투심이다. 타자는 움찔, 배트를 내지도 못한다. 2구째도 비슷한 공. 카운트가 0-2로 몰렸다. 버리는 공 2개가 지나가고 2-2. 승부구가 들어올 차례다.

걱정했던 결정구는 바로 그 공이다. 92마일 짜리가 예리하게 몸쪽으로 파고든다. 이번에는 타자가 피하지 않는다. 마치 계산이라도 하고 있었던듯 정확하게 반응한다. 완벽한 타이밍에 걸린 타구는 오른쪽 담장을 넘었다. 2사후에 터진 결승 솔로 홈런이다.

5번 존, 몸쪽에 꽉 붙은 어려운 공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으로 홈런을 만들었다.     mlb.tv 화면

타자는 왠지 서툴다. 홈런이 처음인가? 베이스를 전력으로 질주한다. 그리고 홈 인. 그런데 덕아웃 분위기가 쎄~하다. 환영은 고사하고,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silent treatment’. 번역하면 ‘침묵의 환대’ 쯤일 것이다. 메이저리그가 전통적으로 첫 홈런을 친 신인에게 하는 몰카 세리머니다.


침묵의 환대, 엉뚱한 악수

어제(30일) 실검 1위는 물론, 하루종일 각종 포털과 커뮤니티, 그리고 SNS를 통해서 수 백만 번은 리플레이 됐을 장면이다. ‘눈물 난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거 처음 본다’ ‘왕따인줄 알고 순간 기겁’ 등등. 그동안 그의 무지막지한 마음 고생에 공감하는 댓글들이 넘쳐났다.

와중에 우리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것은 쇼월터 감독의 반응이다. 처음 홈런 치고 들어왔을 때는 그렇다치자. 몰카가 끝나고 동료들이 격하게 환영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까칠한 모습이다.

김현수의 첫 홈런은 동료들의 몰카 환영으로 재미 100배였다.     mlb.tv 화면 

조이 리카드가 가장 먼저 달려와 축하 인사를 건네고, 마크 트럼보는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몽땅 머리에 부었다. 케일럽 조셉은 동양식 폴더 인사로 맞절을 나누며 정겨움을 안겨줬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다가온 쇼월터는 정작 세리머니의 주인공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뒤에 있던 선발 투수 크리스 틸먼에게만 악수를 청하더니(교체하겠다, 수고했다는 뜻인듯) 쌩하고 돌아서 버렸다. 바로 옆에서 혹시나 하고 곁눈을 주던 루키에게는 약간 머쓱한 상황. 애꿎은 머리 속 해바라기 씨만 못살게군다.

이를 두고 열혈 댓글러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저 양반이….’ 부터 시작해서 ‘인종주의’니 ‘대인배, 소인배’ ‘생까기의 달인’…. 그리고 차마 옮기기 힘든 다양한 숫자와 동물로 된 직유/은유법들이 난무했다. 대대로 한국인 선수들을 애먹게 한 분풀이가 봇물 터지는 느낌이다.

기껏 다가온 쇼월터는 틸먼에게만 악수를 청하고 돌아갔다. mlb.tv 화면

그 경기의 또 다른 컷

어제 ‘MBC Sports+’가 받아서 중계한 화면은 볼티모어 지역 방송인 ‘MASN’의 화상이었다. 반면 홈 팀 클리블랜드 쪽 지역 방송(FOX Sports Cleveland)에서는 조금 다른 경기 후 풍경이 잡혔다.

게임이 모두 끝났다. 이긴 원정 팀이 그라운드에서 간단한 세리머니를 펼친다. 벤치에 있던 감독, 코치가 일렬로 들어오는 선수들과 축하 인사를 나누는 승리 의식이었다.

이 의식에도 불문율 같은 특징이 있다. 행렬의 가장 끝에는 그날 승리의 1등 공신을 세워주는 것이다. 어제 같은 경우는 당연히 결승 홈런을 친 타자가 마지막 자리였다. 동료들이 밀어밀어 그를 제일 끝에 세웠다.

감독은 줄줄이 선수들을 맞는다. 일일이 손을 잡고 때로는 어깨를 툭툭 친다. “잘했다” “수고했다” 같은 메시지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그의 차례가 되자, 쇼월터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왼손으로 목을 감싸며 장난치듯 스킨십을 펼쳤다. 당한 선수는 목을 약간 움츠린다. 하지만 웃음 가득한 뒷모습이다. 살짝 모자를 벗으며 동양식 예의도 잊지 않는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까칠함을 얘기하기란 어렵다. 지극히 정상적인 칭찬과 감사, 그리고 친근함이 배어 있는 퍼포먼스였다.

경기 후 승리 세리머니 때는 김현수와 친한 척을 아끼지 않았다.    mlb.tv 화면

쇼월터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에도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자랑을 아낌없이 늘어놓았다. “그 친구 홈런을 처음 친 것처럼 베이스를 돌더라. 그래도 워낙 중요한 홈런이라 그런지 폼나지 않더냐. 구단 직원들이 기념 공을 찾아와 보관하고 있다. 관중한테 꽤 큰 보상을 한 것 같더라. 나중에 라인업 카드(경기 타순표)와 함께 기념으로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

쇼월터에게 좋은 인간성 기대할 필요 없다

물론 쇼월터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좋을 리 없다. 이제껏 한국 선수들과 별로 좋은 인연으로 만난 적이 없지 않았나.

아무리 그쪽에서는 실력있고, 인정받는 지도자라고 해도 그렇다. 그동안 너무나 냉정하고, 쌀쌀맞아 보였다. 괜히 심술부리고, 트집 잡고, 까탈스럽게 군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주는 것 없이 밉다는 데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곰곰이 새겨 보자. 따지고 보면 뭐 그럴 일도 아니다. 감독 역시 계약서에는 ‘을’이다. 성적으로 평가받는 자리다. 야구 잘하는 선수 게임 못 뛰게 할 감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기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나. “나는 4할 치는 타자를 뺄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라고.

무엇보다 우리의 미움이 과연 김현수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그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쇼월터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항상 선수들 얘기, 그리고 내 얘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좋은 감독이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100% 본심은 아닐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현명할 지 모른다. 괜히 감독 탓, 남 탓 하는 것으로 무슨 생산적인 감정 소모가 생기겠는가.

굳이 쇼월터에게 좋은 인간성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냥 야구를 잘하면 된다. 그럼 그는 우리 선수에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친절하고, 칭찬 많이 하는 그런 감독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백 번 속 편하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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