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0.03mm 펜으로 문화재 복원하는 화가 김영택

2016. 5. 3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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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펜화'에 한국적 화풍 더하고 '작가의 혼' 담아
펜화가 김영택씨가 작품 '황룡사 9층 목탑'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택씨가 그린 1980년대 광화문.[김영택씨 제공]

사라진 '펜화'에 한국적 화풍 더하고 '작가의 혼' 담아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0.03㎜ 선의 힘.

펜화가 김영택(71)씨는 세계에서 가장 가는 0.1㎜ 펜촉의 굵기도 만족하지 않는다.

이 펜촉을 사포로 갈아 0.05㎜, 0.03㎜ 굵기로 만든 뒤 혼신을 다해 도화지에 선을 그린다.

그렇게 50만∼80만번 그어진 선들은 국내외 건축 문화재의 한 장면으로 태어난다.

일정 거리에서 작품을 보면 건축 문화재가 사진처럼 또렷이 선으로 묘사됐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마다 굴곡이 다르다. 의도적으로 자를 쓰지 않고 선을 그린 탓에 서양 펜화처럼 인위적이지 않고 멋스럽다.

그는 "펜화가 시작된 서양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는 데 중점을 뒀다. 이 탓에 작품에 '기록'은 남았지만 '혼(魂)'이 담기지 않았다"며 "펜화를 시작할 때부터 '한국적 펜화'를 염두에 뒀다. 검은색만 사용했지만 건축물 돌마다 다른 색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며 작품들을 설명했다.

1945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창영초교, 인천중학교, 제물포고교를 거치며 성장한 뒤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숭실대에서는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그는 1993년 국제상표센터에서 전 세계 정상급 그래픽 디자이너 가운데 54명에게 주는 '디자인 앰배서더' 칭호를 받았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성공의 정점에 도달한 순간 우연히 '펜화'를 접한 뒤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중학생 때 지폐를 펜으로 그렸는데 문방구 주인이 속을 정도로 묘사에 소질이 있었다"며 "사진이 등장하면서 서양의 펜화는 점차 사라졌는데 나는 '다른 가능성'을 봤다. 그 가능성은 펜화가가 되는 계기가 됐다"며 이유를 밝혔다.

그의 작품 대상 대다수는 국내외 건축 문화재다. 역사적 고증을 거쳐 유실되거나 손실된 부분을 복원해서 그린다.

지금은 문만 남은 숭례문 일대를 그리거나 철조망 등 보호시설로 가려진 경주 불국사를 온전히 묘사하는 식이다.

이 때문이 그의 작품들은 문화재를 기록한 기존의 사진이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구도와 시간대가 녹아있다.

그렇게 그린 작품만 280여점. 판화본으로는 3천여점이 넘는다.

그가 가장 애착하는 작품은 '황룡사 9층 목탑'이다. 고려시대 때 몽고의 침입으로 잿더미가 돼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신라시대 '호국의 상징'이다.

제작에만 매일 4∼10시간씩 3개월이 소요됐다. 눈이 침침해지는 병이 찾아왔지만 '국보(國寶)'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꿋꿋이 완성했다.

그는 "건축 문화재는 단순히 옛 건물이 아니다. 옛사람들의 혼과 정신이 온전히 담긴 아름다움의 '정수(精髓)'"라며 "우리 사회가 서구화되면서 우리 옛 건물의 아름다움을 못 보거나 가벼이 여기는 풍조를 바꾸고 새롭게 문화재를 만드는 심정으로 작품을 그린다"고 작품의 이유를 전했다.

그의 꿈은 자신의 작품과 생활관을 고스란히 담은 미술관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폭 50㎝∼1m, 20m 길의 도화지에 오늘날 복원된 청계천 전체를 묘사한 작품을 그리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며 "임금 행렬이나 성곽 전체를 묘사한 옛 그림이 보물이 된 것처럼 200∼300년 뒤에는 이 그림도 보물이 될지도 모르지 않겠나"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tomato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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