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하청노동자를 위한 안전문은 없었다

2016. 5. 3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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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년 수리노동자 꿈 앗아간 
‘안전문 참변’ 애도 물결
구의역 대합실에 추모공간

6명에 49개역 수리 맡겨놓고
‘2인1조’ 현실 안맞는 매뉴얼
최저가 입찰·하청·재하청…
죽음 뒤엔 우리사회의 모순이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지난 28일 오후 고장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다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진 수리업체 직원 김아무개(19)군의 작은아버지가 30일 오후 사고 현장에 추모하는 글을 남기며 흐느끼고 있다. 이날 하루 종일 구의역에 자발적인 추모 포스트잇 행렬이 이어지자 서울메트로 쪽은 대합실 내 별도의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나의 문은. 날마다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고치면서도 나는 나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열어보지 못했다. 스패너로 아무리 풀어도 가난은 조여 오고 펜치로도 끊어낼 수 없는 배고픔을 끌어안은 채 문에서 문으로 내달렸다.(후략)”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고장 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다가 19살 청년 김아무개군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30일, 소설가 서해성씨는 ‘스크린도어 사이에서-19살 지하철 안전문 노동자의 죽음에’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써 인터넷 언론 <고발뉴스>에 올렸다. 이날 오전부터 사고가 일어난 ‘구의역 9-4 승강장’ 안전문 앞에는 김군을 추모하는 국화와 추모 메시지들이 쌓여갔다. 온라인에서도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이라는 페이스북 추모 페이지 등이 만들어지는 등 하루 종일 그를 추모하고 이번 사고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일반인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나오고 첫 직장에서 갓 수습사원을 벗어난 사회초년생, 밀려드는 일감 탓에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곧 공기업 자회사의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던 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우리 사회 기저에 깔린 각종 모순에 공명하며, ‘이런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는 걸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안전문 수리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2013년 성수역 사고 이래 4년째 계속됐다. ‘2인1조 작업 원칙’을 세우는 등 서울메트로는 그때마다 안전 매뉴얼들을 내놨다. 자회사 전환 대책도 지난해 8월 강남역 사고 이후 나온 대책의 ‘재탕’이다. 하지만 홀로 작업하던 김군의 죽음은 그것이 현장의 상황과는 괴리된 ‘탁상’ 매뉴얼이었음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2인1조 매뉴얼은 최저가 입찰로 일감을 따내 인건비 절감에 매달리는 하청업체에선 유명무실화될 수밖에 없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이날 “49개 지하철 역사 스크린도어 전체를 용역 직원 6명이 담당하는데 2인1조 작업 원칙을 강조하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셈법이냐”는 비판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이런 상황인데도 서울메트로가 김군이 매뉴얼을 어겼다고 ‘해명’한 데 대해 한 누리꾼(humb****)은 “둘이 가랬는데 (김군이) 고집부려서 혼자 간 것도 아닐 테고, 19살짜리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며 “죽었다고 덮어씌우지 마라”고 지적했다.

매뉴얼상 협업체계도 허술하다. 열차 기관사(승무원)가 장애 발생을 신고할 경우, 종합관제소와 전자운영실에 통보가 돼 보수업체에 연락이 가지만 정작 장애가 발생한 역에는 장애 사실이 통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구의역 사고의 경우처럼 기관사가 장애 사실을 신고할 경우, 역무원은 장애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안타까운 죽음 가장 밑바닥엔 ‘효율’이란 미명 아래 이뤄지는 최저가 입찰, 하청, 재하청 등 ‘외주화’ 시스템이 놓여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취업준비생 하인혜(26)씨는 “많은 기업들이 비용절감이라는 명분으로 가장 낮은 비용을 제시한 하청업체에 수주를 준다. 업체들은 원청에 제시한 비용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내팽개친다”며 “죽음에는 등급이 없다고 하지만 많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불평등한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선근 서울메트로 노동조합 안전위원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안전이 도외시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원청에 받은 한정된 비용으로 모든 업무처리를 해내려다 보니, 잠재된 위험이 연속적인 사망사고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이윤보다 사람을 우선하지 않는 이상 이런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욱 박수진 방준호 기자 uk@hani.co.kr 영상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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