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홍만표 변호사 구속영장에 '뇌물혐의'는 없었다

윤진희 기자 입력 2016. 5. 30. 18:26 수정 2016. 5. 3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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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은 것만 잘못을 묻겠다는 뜻..누구에게 돈을 썼는지는?
윤진희 기자© News1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30일 오전 검찰은 '법조비리' 사건의 주인공인 홍만표 변호사에 대해 조세포탈과 변호사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왜 이리 수사가 더디냐"는 아우성과 "혐의 입증이 어렵지만 법조비리 근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한 달여의 공방 끝에 이루어진 ‘영장청구’다.

그런데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뇌물혐의'는 없었다. 그 많은 '전관예우'를 '맨입'으로 받았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검찰은 홍 변호사가 사건 처리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검찰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검찰 관계자 등에게 청탁한다는 명목으로 3억원을 받은 홍 변호사의 혐의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입건했다. 3억 수수 당시 홍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의 특정 인물을 로비대상으로 지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억원이 실제 검찰관계자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검찰은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뇌물' 혐의가 아닌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영장을 청구했다. '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수사 기법의 우수성을 자랑하던 검찰의 해명인지라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검찰은 이제 홍 변호사의 범죄사실을 추가하지 않는 이상 우수한 수사능력을 자랑할 필요 없이 홍 변호사가 돈을 받은 것 까지만 잘못을 묻고 누구에게 돈을 썼는지는 밝히지 않아도 된다. 로비 대상이 됐던 내부 식구를 들춰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검사 출신 홍 변호사와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이름이 '브로커'라는 단어와 함께 거론되기 시작하자 검찰과 법원은 골머리를 앓아왔다. 이미 옷 벗고 나간 전관들이 친 '사고'가 불씨가 돼 '현직'들의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날까 두려웠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일각의 주장이다. '뇌물' 혐의가 적용되면 반드시 '뇌물 받은 자'가 등장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다시 등장한다. 검찰의 홍 변호사에 대한 영장청구 내용에 비춰 이러한 의견에 힘이 실린다.

언론이 입 모아 '전관예우'라 불러주는 '법조비리'의 본질은 '공직자 뇌물 스캔들‘이다. 말이 좋아 전관에 대한 '예우'일 뿐 실체는 '비리'에 불과하다. 검찰과 법원에 법조비리 근절 의지가 있다면 수사의 초점은 이미 '옷 벗고 나간' '전관'이 아닌 현직 검·판사들에게 맞춰져야 옳다.

'부정한 청탁을 한 사람도 잘못이지만 부정한 청탁을 받아들인 사람 역시 잘못'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법조비리 근절'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옷 벗고 나가 변호사 개업을 한 선배나 동기들이 자신들보다 돈을 더 잘 번다는 이유로 밥과 술을 얻어먹고,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어쩔 수 없이 편의를 봐주었다면 '예우'인지 '뇌물수수'인지는 굳이 정연한 법의 논리를 거론해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청탁을 받을 당시에는 식사나 향응 또는 금품을 수수하지 않고 사건처리 후에 만나 밥과 술을 얻어먹은들 '사전'과 '사후'의 차이일 뿐 본질은 '뇌물'범죄다.

뭉칫돈을 가져다 준 사실과 현금을 주고받은 게 드러나지 않는다해서 '대가성'이 없다고 볼수 없다. 뇌물 범죄를 수사하는 검찰도 금품수수만을 기준으로 '대가성'을 따져 기소하지 않아왔고, 뇌물 범죄에 대한 형을 선고하는 법원도 금품을 기준만으로 '뇌물범죄'에 대한 유죄를 선고해오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검찰과 법원이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에만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홍 변호사 혐의 입증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탈세'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만을 범죄사실로 인정했다. 수사를 업으로 삼는 검찰에게 혐의 입증이 쉬운 범죄는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법원은 발 빠르게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갖가지 자구책을 내놓았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생기면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 없이 관련자의 사표를 수리하고 '남의 식구'로 만들기 일쑤였지만 이번에는 이른바 '연예인 와인접대'를 받은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법원의 문제대응 방식과는 다르게 '해결의지'가 엿보인다.

검찰과 법원 모두 나름의 '법조비리' 근절 방안을 모색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국민의 찌푸려진 눈살을 펴기에는 부족하다. 홍 변호사와 최 변호사의 사건이 검찰과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드는 게 걱정된다면 이번 '전관예우' 사건 관련 ·검판사들의 잘잘못부터 면밀히 조사해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부정청탁에 응하는 것은 '범죄'이며, 그 대가는 '불이익'과 '불명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면 난리법석을 떨지 않아도 법조비리는 자연스레 근절될 수 있다.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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