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에 갇힌 서한 병마용들
[오마이뉴스이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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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한병마용관 |
ⓒ 이상기 |
함양박물관은 함양 시내 위성구(渭城區) 구도심에 있다. 그래서 좁은 가로수길을 따라가야 만날 수 있다. 입구 대문이 솟을삼문이다. 가운데 문 위쪽에 문묘(文廟)라는 커다란 편액이 걸려있고, 기둥에는 함양박물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함양 문묘는 명나라 때인 1371년 건설되었고, 건물의 일부가 1962년 함양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이곳에는 함양궁 출토유물관, 옥기정품전(玉器精品展), 서한병마용관(西漢兵馬俑館), 불교문물진열 등 6개의 전시실이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말을 매 두는 말뚝 또는 돌기둥인 전마장(?馬?)이다. 전마장은 대개 궁궐, 능묘, 절과 사당의 정문 양쪽에 세워두던 것인데, 지금은 이게 다 건물 정원으로 들어와 있다. 사가(私家)의 경우 전마장을 말뚝으로 만들지만, 사람과 말의 출입이 빈번한 큰 건물에서는 전마장이 옥, 대리석, 화강암 같은 돌로 만들어진다. 특히 말고삐를 묶는 상단부는 사람이나 동물을 조각해 예술성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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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읍하관종 |
ⓒ 이상기 |
안읍하관종(安邑下官鍾)은 술을 보관해 놓는 용기로 진나라 때 작품이다.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배가 부르고 목이 가는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쉽게 말하면 청동제 술항아리다. 이때 종은 부피의 단위로도 쓰였다고 한다. 그 외 취사용의 청동제 솥, 칼과 화살촉, 와당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슴문 와당이 대표적인데, 이것은 춘추시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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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비전과 명도전 |
ⓒ 이상기 |
진나라 수도의 박물관답게 특이한 유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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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미 모양의 옥함(玉?) |
ⓒ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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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규(玉圭) |
ⓒ 이상기 |
이들 부장품은 사람, 사자, 돼지, 매미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매미 형상의 옥을 함(?)이라 부르는데, 장례시 그것을 사자의 입에 넣었다고 한다. 그것은 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리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옥 유물도 있다. 한나라 때 부장용 옥기(玉器)인 규(圭)인데, 끝이 뾰족한 직육면체가 사방팔방에서 가운데 원형을 향하고 있다. 이것은 강산을 가운데로 끌어들여 동서남북 사방의 안정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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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수함양현성비 |
ⓒ 이상기 |
함양성은 기원전 359년 진나라 효공(孝公)이 위수(渭水) 북쪽에 함양궁을 지으며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함양이 현으로 격하되면서 함양현성이 만들어졌고 역사 속에서 퇴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43년부터 1748년까지 중수하고 1749년(건륭 14) 중수기념비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진시황 병마용과 다른 서한 병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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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병 도용: 소부(小部) |
ⓒ 이상기 |
한나라 보병의 편제는 5인이 1오(伍)가 되고, 10인이 1십(什)이 된다. 10인 즉 1십이 10 모이면 100인이 되어 1둔(屯)을 형성한다. 100인을 이끄는 지휘관을 둔장(屯長)이라 부른다. 그리고 2개 둔이 모이면 1곡(曲)이 되고, 그 지휘관을 군후(軍侯)라 한다. 바로 이곳에 보병 도용이 200명(10줄×20명)으로 1곡을 이루고, 2곡이 있으므로 400명으로 1부(部)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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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마 도용 |
ⓒ 이상기 |
그리고 부의 상위 개념이 영(營)이다. 5개 부가 모여 1개 영이 되므로, 영의 보병수는 2000명이다. 영을 이끄는 지휘관을 우리는 장군(將軍)이라 부른다. 앞에서 언급한 위청과 곽거병은 대장군이므로 최소 1만 명 이상의 보병을 거느렸을 것이다. 기록에 보면 이들은 5만~1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린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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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병 도용 |
ⓒ 이상기 |
이들 병마용 역시 머리와 얼굴, 복식, 손과 발 등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말의 모습도 다르다. 머리를 치켜들고 입을 벌린 것도 있고, 머리를 숙이고 고분고분한 자세를 취한 말도 있다. 붉은 갈색으로 채색된 말도 있고, 색이 벗어져 흑회색을 띤 말도 있다. 사람보다는 말을 잘 만들어 기마에서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 병사가 갑옷을 입은 경우가 거의 없다. 군사용이 아닌 의전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교미술은 또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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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나라 때 석가모니불 |
ⓒ 이상기 |
오히려 석조보살상과 석조 불비상의 예술성과 미학성이 뛰어나 보인다. 화려한 보관을 쓰고 온몸에 영락과 장식을 한 관음보살상은 후덕한 미소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 같다.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불비상은 많이 마모되어 원형을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5방5불(五方五佛)이 조각되어 있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5방불이 안치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밀교(密敎)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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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조 불비상 |
ⓒ 이상기 |
이곳에는 청동불도 여럿 있다. 크기도 아주 다양하다. 수나라 때부터 명나라 때까지 작품이 있다. 이들 불상은 예술성과 미학성이 대단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밀교 계열의 합체불상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남성 에너지와 자비를 상징하는 여성 에너지의 결합을 통해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남녀간의 교합으로 보인다. 그래서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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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교 계열의 합체불 |
ⓒ 이상기 |
그리고 복도와 정원 한쪽에서 비석과 석조물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유물은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지는지 거의 방치 수준이다. 비석들은 청나라 시대 것이 많이 보인다. 함양성서북계비(咸陽縣西北界碑)라는 글씨도 보인다. 그러나 석조물의 조각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사자, 용, 말, 기린 등을 추상적으로 표현해서 신비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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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조 사자 |
ⓒ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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