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범죄 분노사회

유동엽 2016. 5. 2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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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인터뷰> 한증섭(서울 서초경찰서 형사과장) : "여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범행을 한 겁니다. 여자들 때문에 자기가 힘들다..."

<인터뷰> 이상경(경사/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 "여성이 자신을 음해하여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고 생각하였고, 이것이 본건 범행의 촉발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인터뷰> 박윤하('추모' SNS 계정 운영자) : "가해자의 일탈이라든지 이상한 행동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이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얼굴도 모르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20대 여성.

충격적인 소식에 놀란 사람들은 이렇게 쪽지에 애도와 추모의 글귀를 남겼습니다.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에서 시작한 추모 움직임은 부산, 대구, 대전 등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둔기를 들고 빠르게 걸어오던 남성.

길에서 한 할머니와 마주치자 갑자기 둔기를 휘두릅니다.

할머니가 넘어진 뒤에도 폭행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남성은 곧바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젊은 여성을 쓰러뜨리고 둔기를 휘두릅니다.

지나던 시민들에게 제압당하고 나서야 폭행을 그쳤지만 피해자들은 크게 다쳤습니다.

<녹취> 김OO : "죽이려고 그랬어요. (무슨 이유로?) 아시잖아요."

이 남성은 강남역 사건의 피의자처럼 조현병 진단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폭행 사건 이전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이웃들에게 여러 차례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녹취> 인근 주민(음성변조) : "시도 때도 없이 소리 지르고, 여기 뛰어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행패 부리고, 저 위에 유리창 다 깨고…."

이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 범죄의 심각성이 본격 부각 된 사건은 4년전 여의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30대 남성이 길거리에서 흉기를 휘둘러 전 직장동료와 행인 등 4명을 다치게 했는데, 번화가 퇴근길 행인들을 무차별 공격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습니다.

범인은 실직 후 생활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녹취> 김OO(여의도사건 범인) : "무섭고 억울하고...저를 주변에서 힘들게 했었던 분들도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납니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불특정 대상을 공격하는 범죄들에는 이처럼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깔려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터뷰> 이웅혁(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이 혼자 생활하거나 사회적 연결고리가없거나 또는 현재 직장이 없거나 그러니까 축적되어있던 불만이 하나의 촉발요인으로 작동이 되면 그 누구라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공격행위로 일어나는 이른바 좌절공격패턴이..."

대검찰청 조사 결과,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살인과 폭행을 저지르는 범죄는 지난 2012년 이후 매년 50여 건 정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들어서는 4월까지 모두 18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231건의 비슷한 범죄를 원인별로 살펴보면 음주나 약물 남용이 93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신질환이 72건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현실 불만이 원인인 경우도 52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윤정숙(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현실불만형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 다음에 사회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을 가지고 있는 그런 유형인데 예를 들면 여의도 칼부림 같은 경우에는 현실불만형에 속한 것으로 저희들이 분석을 했고요."

강남역 살인 사건 경우도 범인은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화장실 안에서 1시간이나 기다려 살해했습니다.

그러고도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김 모 씨(피의자) : "개인적으로 원한이 없기 때문에...마음이 좀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범행 장소도 별다른 이유 없이 자신이 일했던 식당 근처를 골랐습니다.

<녹취> 목격자 : "변기가 이렇게 따로따로 돼 있거든요. 안에 먼저 들어가 있던 것 같더라고요."

경찰은 정신분열증이라고도 불리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김 씨가 여성에 대한 피해 망상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는 심리 분석 결과를 내놨습니다.

<인터뷰> 이상경(경사/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 "피의자는 2003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성별과 관계 없이 어떤 불특정한 누군가가 내 욕을 하는 것이 들린다는 환청과 피해망상 증세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다가 특히 2년 전부터는 여성들이 자신을 견제하고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으로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신질환 범죄를 넘어서는 큰 사회적 파장과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고인을 추모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메모들, 그리고 추모 모임들.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 끔찍한 범죄 현장이 됐다는 게 공통의 충격으로 와닿는다는 겁니다.

<인터뷰> 장수민(서울 동대문구) : "비슷한 나이 또래에다가 그냥 같은 진짜 너무 평범한 행동 같아요. 남자친구랑 같이 노래방을 갔다가 화장실 가고...저에겐 일상인데 그게 살해의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인터뷰> 신민식(서울시 강남구) : "어디를 가야될지 모르겠는거예요. 진짜 너무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 그런 곳에서 일어나니까. 근데 이런 거를 여성분들은 항상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문제가 심각한 거 같기도 하고..."

SNS에 추모 계정이 만들어졌을 정도입니다.

한쪽에선, 이번 사건이 사회적인 성 차별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뷰> 이지원('추모' SNS 계정 운영자) : "자신의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얼마나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이 일상적으로 장난스러운 것이고 그거에 대해서 무서워라고 반응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사회인지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인터넷 상의 적대적인 반응에 겁이 났다고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지원('추모' SNS 계정 운영자) : "사진이 찍혀서 인터넷 페이지에 돌아다니면서 못 생겨서 그렇다 뭐 이런 식으로 품평을 당하지 않을까 혹은 정말 직접적으로 누가 린치를 가하지 않을까..."

강남역 사건 피의자의 경우, 정신질환이 1차 원인이라면 분노는 2차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상경(경사/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 "서빙업무를 하던 식당에서 위생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고 5월 7일 다른 식당의 주방보조로 옮긴 사실이 확인됩니다. 피의자는 이것을 여성이 자신을 음해하여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고..."

김 씨가 피해자보다 앞서 화장실에 들어온 남성 6명에게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인터뷰> 이웅혁(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 "이번 용의자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 동기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여성이 미웠다고 하는 얘기이기 때문에 이른바 서양에서의 혐오범죄가 국내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시작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씨처럼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범죄 피의자들이 범행 순간 보이는 분노에 주목합니다.

<인터뷰> 이웅혁(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 "여성 같은 경우는 물리적 제압도 가능하고 또 흉기도 준비했고, 내가 느끼는 인간적 모멸감 요소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응징과 처단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제압하기 쉬운 약자인 여성을 표적으로 삼아야 되겠다..."

강남역 사건의 파장이 커지면서 사법당국과 자치단체들은 재발 방지 대책들을 발표했습니다.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고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는 '행정입원' 조치로 입원치료를 강제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만으로는 분노 범죄를 예방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웅혁(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 "일정한 감정에 있어서 제어를 해줄 수 있는 사회의 유대관계 고리가 철저하게 있었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범죄를 사전에 제어해주고 막을 수도 있다..."

분노 범죄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언제 어디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안감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효과적인 사회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다음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동엽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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