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김수연, 치열한 숭고함에 눈물이..'바흐 무반주 전곡'

이재훈 2016. 5. 2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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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수연, 바이올리니스트(사진=아트앤아티스트)
【서울=뉴시스】김수연, 바이올리니스트(사진=아트앤아티스트)
【서울=뉴시스】김수연, 바이올리니스트(사진=아트앤아티스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9)이 바이올린 음악의 경전을 '지금 여기, 살아 있는 현대의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녀가 29일 오후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들려준 바흐(1685~1750)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 등 총 6곡은 펄떡거리는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1720년 작곡된 이 곡들의 심장박동에 전기 충격을 가하듯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

6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테크닉의 고난도에 따른 상당한 집중력과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화음이 복잡한 건 물론 현을 두 개 이상 동시에 눌러야 하며 활을 켜는 법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지원 사격을 해줄 피아노 반주도 없다. 이틀 안팎에 걸쳐 연주할 수밖에 없다.

김수연은 그런데 3시간30분간 이 모든 곡을 소화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연주시간만 2시간10분에 달했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1, 2부 각 2곡씩 연주한 뒤 10분간 쉬었다. 1, 2부 사이에는 중간휴식 60분이 주어졌다.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 이 같은 휴식이 주어진 건 2013년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인 4시간30분짜리 바그너 악극 '파르지팔' 정도다.

소속사 아트앤아티스트는 "김수연이 중간 휴식 동안 잠들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쉬기만 했다"며 그녀의 체력 소비가 상당했음을 전했다.

김수연은 이미 해당 레퍼토리로 증명받았다. 2011년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 전곡' 음반은 당시 25세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녹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함이 배어 나왔다. 2014년 이탈리아 스트레자 페스티벌에서 이미 '일일 전곡 연주'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국의 청중 앞 무대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곡 연주는 쉽지 않은 일이다. 김수연은 이날 고독한 마라토너처럼 보였다.

1부 첫 곡으로 들려준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단조 BWV 1001에 장기인 '유려한 힘'이 묻어나왔다. 단단하면서 명징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B단조 BWV 1002,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단조 BWV 1003 등 1부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다.

2부의 두 번째 곡인 '무반주 바올린 소나타 3번 C장조 BWV 1005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사운드는 여전히 중심축을 단단히 붙잡고 흘러갔으나 그녀의 체력 소비가 상당한 듯했다. 악장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으며 허공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후 10분간 휴식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힌 김수연은 마지막 곡인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에서 음악 인생에 획을 그을 만한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마지막 악장인 5악장 '샤콘느(Chaconne)'의 절제된 슬픔에 먹먹함이 밀려들어 왔다.

비장하지만 그 속살을 감추고 있는 겉옷 끝을 끝내 놓지 않는 균형 감각이 일품이었다. 흘러넘치는 감정과 이 농도를 조절하는 기교의 완벽한 혼연일체였다. 이 순간만큼은 우주에 바흐만으로 가득차 있는 듯했다. 김수연은 바흐를 여행하는 청중을 위한 안내자가 돼 이 우주 안에서 완벽한 유영을 선보였다. 일부 청중은 자신을 감싸안는 소리의 공간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나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는 "금속성이 배인 명징함이 특징인 하이페츠의 바이올린 소리에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힌 듯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차갑고 강렬하면서도 따듯한 소리다. 이 두 가지를 아우르기가 쉽지 않은데 김수연이 그걸 해냈다"고 평했다. "특히 다양하게 활을 쓰는 법이 소리의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바이올린 소리 안에 비올라, 첼로 소리가 들어 있더라"고 극찬했다.

김수연의 치열한 숭고함에 객석을 채운 청중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여러 번 커튼콜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수연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바흐가 간직한 위로의 얼굴이었다.

한편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는 11월19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날 김수연과 같은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출중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소리와 거장의 노련한 바이올리니스트 소리를 둘 다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해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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