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화 만능주의의 볼모가 된 지하철 안전

김소연 입력 2016. 5. 29. 20:19 수정 2016. 5. 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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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서 정비원 열차 부딪혀 사망

성수ㆍ강남역 이어 세 번째 판박이

서울메트로, 안전 책임까지 외주

관리감독 없는 안전수칙 제정 등

땜질식 대책으로 거듭되는 人災

효율성의 허울을 쓴 외주화 만능주의가 또 다시 인재(人災)를 불렀다.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 외주 정비업체 직원이 수리 도중 열차에 부딪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3년 1월 성수역, 지난해 8월 강남역에 이어 3번째 ‘판박이’ 사고다.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외주업체에 안전 책임을 떠넘기면서 사고가 반복돼 총체적인 안전 점검은 물론 사업 외주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구의역에서 안전문을 수리하던 정비 외주업체 은성PSD 직원 김모(19)씨가 28일 오후 5시 57분 선로 쪽에서 홀로 작업을 하다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열차를 피하지 못해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졌다. 앞서 오후 4시 58분 구의역에 진입하던 열차 기관사가 안전문 오작동을 알렸고, 서울메트로 관제사령과 전자운영실을 거쳐 은성PSD에 통보돼 김씨가 수리에 나섰다 변을 당했다.

이번 사고 후 비난의 화살은 서울메트로에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다른 외주업체 직원 조모(28)씨가 유사한 사고로 사망한 뒤 같은 해 11월 승강장 안전문 안전수칙을 제정했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시 제정된 안전수칙은 안전문 점검 시 2인1조 근무 원칙을 재확인했고, 또 작업 시 역무실과 전자운영실로 통보하고 작업표지판을 부착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열차를 감시하는 사람 없이 홀로 작업에 투입됐다. 전자운영실에 통보도 없었고, 작업표지판도 세우지 않았다. 안전 절차가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근본적 문제는 서울메트로가 안전문 유지와 보수는 물론 안전 책임까지 외주 영역으로 넘긴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서울메트로 121개 역에서 발생한 안전문 오작동은 2,716건(일평균 7.4건)이다. 그런데 사고 당시 구의역을 포함해 강북 지역 49개역을 담당하는 은성PSD의 주간 근무조는 6명에 불과했다. 은성PSD의 한 직원은 “2013년 2인1조 규정을 담은 매뉴얼 제작 전까지도 직원 120여명이 혼자 점검에 나서면 인력이 부족했는데 2인1조를 의무화했으면 직원을 2배로 늘리는 게 맞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은성PSD는 서울메트로 퇴직 직원들이 세운 업체로, 2011년부터 안전문 정비 등의 외주를 맡고 있다. 다른 외주업체 역시 광고 전문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메트로가 전문성이 부족한 업체에 외주 정비를 줬다 문제가 터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상황/2016-05-29(한국일보)

직영으로 안전문을 관리하는 서울도시철도와의 비교에서도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서울시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개 역사당 서울메트로 관리 구간(1~4호선)에선 100.2건의 고장ㆍ장애가 발생해 도시철도공사 구간(5~8호선)에서 발생한 17건에 비해 약 6배 가량 많았다. 유성권 서울지하철노조 비정규직지부장은 “서울메트로가 외주화를 한 전동차 부품 안전 관리 경정비와 스크린도어 업무에서 사고가 계속 발생한다”며 “외주업체는 인건비가 싼 미숙련 기술자를 주로 쓰고, 서울메트로가 직접 작업 지시를 못해 협업이 안 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서울메트로 소속 한 기관사는 “현장에서 보면 하청업체가 일선 직원들에게 안전교육을 하고 보내는 일이 거의 없다”며 “안전매뉴얼이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서울시가 책임지고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메트로의 구태의연한 사후약방문 대책도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서울메트로는 이번 구의역 사고 후 8월부터 자회사 방식으로 안전문 점검을 관리하고, 안전문 장애물검지센서를 기존 적외선에서 고성능 레이저 스캐너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발표 내용은 모두 이미 도입됐거나 추진되고 있던 것들이어서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경찰은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역무원과 외주업체 직원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고 사고 당시의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는 등 사고 경위 파악에 나섰다. 경찰과 함께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도 합동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외주업체와 서울메트로 측의 과실 여부가 밝혀지는 대로 관련자를 소환해 조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mailto:jollylife@hankookilbo.com)

이태무 기자 abdcdefg@hankookilbo.com(mailto:abdcdefg@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mailto:hbkim@hankookilbo.com)

최근 3년간 스크린도어 점검 및 설치 외주업체 희생자/2016-05-29(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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