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정치적 조합 실험, '합의의 정치력' 필요"

입력 2016. 5. 29. 19:36 수정 2016. 5. 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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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닻올린 20대 국회
20년만의 3당체제

‘과반’없는 상황서 안건 처리 위해
여야 정치적 양보와 타협 필수 

‘타협=투항=기회주의’ 인식하는
정당·지지자들 낡은 사고 지양해야

20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29일 오전 장미꽃이 활짝 핀 국회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본청 건물 외벽에 축하 펼침막이 걸려 있다. 20대 국회의 임기는 30일 시작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여야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배분 등 원구성에 합의한 뒤에 이뤄질 예정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출발선부터 순조롭지 않다.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가 한목소리로 다짐했던 ‘협력정치’가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청문회 활성화법) 거부권 행사로 첫발도 떼기 전에 휘청이는 형국이다. 상황은 바뀌었는데 대통령과 친위세력은 낡은 대결적 양당 구도의 정치관습에 매여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나온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체제는 사실상의 양당 구도였다. 원내 의석을 차지한 3·4당이 있었지만,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한 군소정당 처지에선 의회 안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게 불가능했다. 의사일정과 안건 상정 등 의회의 핵심 의사결정은 항상 양대 교섭단체끼리의 협상 테이블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당 구도 역시 힘의 논리가 지배해왔다는 점이다. 제1당은 가장 큰 자산인 과반의석을 무기로 정권이나 정파의 배타적 이익을 관철하는 데 주력했고, 제2당은 제도가 보장한 교섭권과 물리력에 의지해 1당의 독주를 막는 데 사활을 걸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갈등과 파행의 악순환 속에 ‘입법과 감시’라는 의회 기능이 형해화해가는 상황에서도 양당은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어왔다는 점이다. 각자가 상대 정당의 성공을 저지하는 데서 정치적 명분과 지지를 확보해온 탓이다.

지난 4월 총선은 20년 가까이 지속된 거대 양당의 공생 구도를 일거에 흔들어놓았다. 38석을 가진 제3의 원내교섭단체(국민의당)가 등장하면서 1·2당 어느 곳도 과반의석을 점유하지 못하는 ‘여소야대 3당 구도’가 출현한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참여 정당이 하나 늘어난 것뿐이지만, 3당 구도에선 정당 간 상호작용의 조건과 양상이 양당 구도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양당 구도에선 각 정당이 상대 정당의 반응만 예측하면 됐지만, 3당 구도에선 상대 정당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제3당의 판단과 태도까지 계산하면서 한층 복잡한 전략적 행동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 두 야당의 균열이 커질수록 입지 확보가 유리한 새누리당은 첨예한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국민의당 내 중도보수파를 겨냥해 ‘러브콜’을 보낼 게 자명하다. 반면 새누리당보다 겨우 1석 많은 더불어민주당으로선 ‘강압과 유인’을 섞어가며 국민의당을 어떻게든 ‘야당의 경계’ 안에 묶어둬야 한다. 국민의당 처지에선 대립하는 1·2당 사이에서 실익을 추구하는 캐스팅보트 전략을 취하는 게 현실적이지만, 호남 여론이 이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가 변수다. 20대 국회에서는 결국 새누리당의 ‘디바이드 앤드 룰’(분할 지배)과 국민의당의 ‘캐스팅보트’, 더민주의 ‘야권 헤게모니’ 전략 간의 치열한 경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의미있고 안정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합의’ 말고는 없다. 이를 두고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제도가 강제한 합의”라고 했다. 의회의 안건 처리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려면, 두 정당 또는 세 정당이 양보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 다수 의사를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합의주의 전통’이 정착된 서구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다당제 국가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독일과 네덜란드,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학)는 “권력이 한 정당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양당제보다 (권력이) 분산되고 그로 인해 정당 간 협력이 중요해지는 다당 구도가 더 바람직하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다수 의견”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다당 구도가 ‘합의의 정치’를 자동으로 배태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많을수록 합의(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길고 복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참여자들이 각자의 몫과 주장만 고집할 경우,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그리드록’(Gridlock·교차로에서 차가 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정체상황)에 빠져들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자칫 ‘승자독식의 정치’보다 나을 게 없는 ‘만인결식의 정치’로 귀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에서 의회 내 타협과 절충을 ‘패배’와 ‘투항’으로 받아들이는 ‘원리주의적·승패론적 사고’로부터 정당과 지지자들 모두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희민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원활한 합의가 이뤄지려면 기존 여야의 관행적 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정치적 조합을 실험할 수 있는 유연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언론과 지지자들도 이를 기회주의적 처신이라 매도해선 안 된다”고 했다. ‘합의 자체’가 아니라, ‘합의의 정치적 목표’에 지지자와 국민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치권 원로의 지적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17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떠난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남북관계, 경제, 사회통합 등 위기 아닌 분야가 없다. 20대 국회가 열리면 정치가 풀어야 할 우선 과제가 무엇인지 여야가 큰 틀의 인식부터 공유한 뒤 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사회적 대타협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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