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징글징글한 영화, 매번 그만두고픈데" [인터뷰]

권남영 기자 2016. 5. 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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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곡성’에 현혹된 이라면 나홍진(42) 감독이 지닌 ‘악마의 재능’을 결코 의심하지 않을 테다. 인간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이토록 기발한 전개로 풀어낸 전례가 있나 싶다. 내용면에서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그 빈틈없는 연출력에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없다.

곡성은 한 마을에 벌어진 의문의 연쇄사건을 두고 경찰(곽도원)과 무속인(황정민), 목격자(천우희)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나홍진 감독이 무려 6년이란 시간을 들여 빚어낸 결과물이다. 시나리오 작업에 3년, 촬영 준비에만 9개월을 쏟아 부었다.

실화 바탕의 전작 ‘추격자’(2008) ‘황해’(2010)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단순 스릴러에 그치지 않고 오컬트 장르를 버무려 초현실적인 세계까지 폭넓게 다뤘다. “모르는 분야니까 무작정 책부터 파기 시작했다”는 나홍진 감독은 장기간의 취재를 걸쳐 방대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촬영장에서 그는 늘 100%를 추구한다. 현장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요소가 뭐냐는 질문에 “다 중요하다”고 단언하는 그다. 전체적인 눈으로 현장을 이끌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고 또 살핀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로 한 카페에서 만난 나홍진 감독은 “감독이 원래 그런 거 하라고 만들어진 직업”이라며 웃었다.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는 병원 신세도 졌다. 촬영 중반부쯤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촬영장을 오갔단다. 안타까워하는 기자에게 한사코 “안 힘들었다”고 말하는 고집이 나홍진스러웠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홍진 감독의 어마무시한 재능은 사실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곡성’이라는 작품을 구상한 계기는 뭐였나.
“전작들은 (가해자 시선으로) 계속 어떤 사건이 일어나잖아요. 이번에는 피해자 입장에 좀 더 시선을 두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가본 적 없던 방향이죠.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였던 것 같다.
“뭘 그렇게까지…. 짜깁기 뭐 이런 거죠(웃음). 이 작품은 지엽적으로는 레퍼런스가 있지만 전체를 놓고서는 참고할 만한 게 없었어요. 그런 게 일단 재미있었죠. 스태프들과 얘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고, 준비할 것도 많았어요.”

-전작과 다르게 곳곳에 웃음 요소가 많았는데.
“전 계속 넣는다고 넣었어요. ‘황해’에서 하정우씨가 막 먹고, 내복 뒤집어쓰고 그런 거 재미없었어요? 총 맞고 산에서 막 울고 그런 거 안 웃겼나요? (관객들이) 그런 장면에서 안 웃으시더라고요. 웃프길 바랐는데.”

-나름의 웃음 코드가 있으신 듯.
“지금 얘기한 건 웃겼죠?”

-이번에는 많이 통한 것 같다.
“아직 일반 상영관에서 못 봤어요. 언론시사 때 아무도 안 웃어가지고. 왜 안 웃는 거예요 기자들은?”

-저는 일반관에서도 봤다. 관객들 반응 엄청 좋다. 빵빵 터진다.
“진짜? 많이 웃어요? 아, (내가 가서) 봐야 되는데.”

-좀비 등장신에서 특히 많이들 웃음을 터뜨리더라. 의도한 장면인가.
“웃어요? 어…. 그렇게 많이 웃을 줄은 몰랐어요. 한 30~40% 웃겠다 생각했는데.”

-요즘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대사가 엄청 유행이다.
“그래요? 환희 떴네요(웃음).”

-사투리 대사도 직접 쓰신 건가.
“아니요. ‘곱게 자란 자식’이라는 웹툰을 봤는데 사투리가 진짜 맛깔 나는 거예요. 작가가 이무기라는 양반인데, 그 양반이랑 며칠 동안 사투리로 바꾸는 작업을 했어요. 근데 하고 나니 너무 걸쭉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황해’ 조연출이었다 지금 작가 생활하는 친구와 또 한 번 수정작업을 거쳤어요. 그 작가 아버지가 곡성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죠. 그리고 사투리는 억양이 중요하잖아요. 시나리오를 그냥 읽으면 되는 게 아니니까 전라도 사투리가 가능한 배우를 몇 분 캐스팅했어요. 중간 중간 진짜 사투리가 들어가면 더 밸런스가 좋아질 것 같아 그 부분을 고려했죠.”

-아역배우 김환희(효진 역)가 참 잘 소화해냈다. 곁에서 지켜본 환희는 어땠나.
“어우, 대단했죠. 굉장히 영리했어요. 찍을 때마다 인상적이었고. 그렇게 말이 잘 통하고 연기를 잘할 수가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놀라게 하는 게, 어마어마했죠. 연기에 대한 욕심도 강했고요.”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외지인 역)은 엄청 고생을 했다던데.
“고생은 다 했죠. 애기(환희)도 그걸 찍었는데 고생 안한 사람이 어딨어요(웃음).”

-쿠니무라 준을 보며 느낌 점이 있다면.
“영화 연기를 오래하셔서 그런지 정확하시더라고요. 반복해서 계속 같은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동일해야 편집이 쉽거든요. 그런 것들이 정확하세요. 본인의 동작·손짓 하나를 정확하게 반복해주시고, 카메라 몇 대가 있든 각 사이즈를 체크하고, 감독이 뭘 원하는지 이미 아세요. 어떻게 이 신을 구성하려고 하는지를.”

-첫 주연을 맡은 곽도원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일단 몸이 고되니까. 배우는 뭐든 최고의 컨디션에서 해야만 유리하잖아요. 근데 곽도원씨는 매일 나와야 하니까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동료배우들과 소주라도 마시면서 얘기도 나누고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혼자 스태프처럼 계속 현장에 있어야 되니 외로웠겠죠.”

-감독님도 외로운 순간이 있었는지.
“전 그런 걸 못 느끼죠. 저 같은 경우는 촬영이 끝나도 해야 될 게 너무 많으니까. 촬영이 없을 때도 뭐 외롭네 마네 생각할 겨를이 없죠.”

-작품 시작하면 정신없으니 들어가기 전 큰 결심을 해야겠다.
“그럼요.”

-어떤 결심이 필요한지.
“네가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얘기냐. 어떤 상황이 생겨도 중간에 포기하거나 접거나 굽히거나 하지 않을 만큼의 가치 있는 얘기를 시작하는 거냐. 이런 걸 스스로 계속 확인하죠.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엄청난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데 부담은 없나.
“아직은 기분이 좋아요. 다음 작품 할 때 칼이 되어 돌아오겠죠(웃음).”

-감독님 평소에 무슨 생각하고 사시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뭐 무슨 생각을 해요. 시나리오 쓸 때 시나리오 생각하지(웃음). 어떻게 쓸까.”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특별한 건 없어요. 저라고 뭐 이상한 데 막 가거나 (그러지 않아요). 일단 영화가 끝나면 너무 힘들어서 몸이 아파요. 희한하게 영화할 때는 안 아프거든요. 폐렴에 걸려 입원했는데도 별 게 없어요. 기침만 나올 뿐이지. 근데 작품을 끝내고 나면 ‘진짜 다시는 영화 안 한다’ ‘이 짓 죽어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죠. 아예 손을 놔버려요. 근데 그렇게 헐렁하게 살다보면 또 이런 저런 것들이 보여요.”

-곡성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음,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이번 영화는 좀 자유롭자. 어떤 실화라든지 사건에 얽매이지 말고 최대한 자유롭게 해보자. 그래서 저에게는 전작들과 구분이 탁 지어지는 영화였어요. 모든 면에서 다른 성향을 띠어요. 그렇게 했던 선택들과 제가 지니고 있던 것들을 지금 이 순간에 돌아보니, 어떤 긍정적인 시그널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이렇다면, 솔직히 더 나아가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뭘 거기까지 가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럼 이제부터 시작이죠. ‘이래도 되는 겁니까’ ‘되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이런 느낌이죠.”

-늘 변화를 꾀하는 편인 것 같다.
“이미 건드려 본 건 또 할 마음이 없어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싶으면 뭐 할 수도 있겠죠. 근데 전 항상 제가 가진 최고의 것을 다 끌어내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더 짜낼 게 있을까 싶은 거죠. 비슷한 스타일을 답습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이미 한 것 이상을 만들 자신은 없으니까.”

-매사에 완벽주의인지.
“영화에서만. 완벽하다는 건 뭐냐면, 절 납득시켜야 해요. 제가 만족을 해야 하는 거죠.”

-본인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아으, 짜증나죠. 징글징글 맞죠. 힘들어 죽겠어요. 즐겨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는 못 즐기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촬영장에서는 즐기시지 않나.
“누가 제가 즐기면서 한 대요(웃음)?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전부 ‘으으으으아아아아(신음소리)’ 하면서 나올 걸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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