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행보는 '잘 짜인 각본'?
여권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구애를 받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행보를 놓고 마치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은 지난 25일 제주에서 좌중이 술렁일 정도로 일반적인 관측을 뛰어넘는 수위의 발언을 통해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29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특히 경북 안동은 스스로를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처할 정도로 영남 선비 정신의 본향으로 불리는 곳이다. 여권 친박(친박근혜) 진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TK·충청 연합론’, ‘충청 대망론’에 불을 붙이기 위한 행보로 이보다 더 절묘한 선택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번 방한은 반 총장을 차기 대권구도의 상수로 만드는 프로젝트로 활용됐다는 게 중론이다. 프로젝트의 조력자는 기존의 외교 참모진이 아닌 정치 경험이 풍부한 정무적 조언 그룹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한 친박(친박근혜) 의원은 29일 통화에서 “반 총장의 기존 참모진은 외교관으로 채워져 정무적 판단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이번 대선 출마 시사 발언은 적절한 수위를 유지하면서도 반 총장 대망론을 지속적인 이슈로 만들겠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어 반 총장 주변에 정무적 조언그룹이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외교 참모들이 이 정도로 정교한 정치적 조언을 하기는 힘들어, 친박이 반 총장을 조직적으로 자문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여권 일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충청포럼 회장인 무소속 윤상현 의원이 자문그룹을 가동해 반 총장 지원에 나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러나 반 총장이 여전히 아마추어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망론에 고무된 반 총장의 조급증이 리더십·도덕성 검증시기를 앞당겨 놓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반 총장이 스스로 자신을 대선의 링으로 올려놓는 꼴이 됐고 일단 링에 오른 이상 약육강식의 서바이벌 게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 총장은 임기 완료 전 6개월 동안에 혹독한 검증작업이 이뤄질 경우 반 총장으로선 그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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