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가씨' 감당할 수 있겠어..이 희열감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2016. 5. 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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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예측하지 말라. 4인의 캐릭터는 끊임없이 변한다.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는 아가씨, 백작, 하녀, 후견인 등 4명의 캐릭터가 서로 줄을 팽팽하게 당긴다. 너무 세게 당겨 끊어지기도 하고, 적절한 강도로 긴장감을 유지하기도 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안단테로 시작해 점차 알레그로로 연주를 시작한다.

박찬욱 감독은 3부작으로 구성했다. 1부는 하녀의 시각으로 사건을 보여주고, 2부는 아가씨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1부와 2부는 동일한 사건을 보는 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등에서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1부에서 백작(하정우)은 장물거래소 보영당의 에이스 숙희(김태리)를 아가씨(김민희)의 하녀로 보내려는 계획을 꾸민다.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아가씨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계획을 세우고 숙희의 도움을 청한다. 한 몫 챙겨 지긋지긋한 식민지 조선을 떠나고 싶어 하는 숙희는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숙희는 아가씨의 손과 발이 되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백작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하녀로 위장하고 저택에 들어간다. 이 장면은 웰메이드 케이퍼 무비를 연상시키도 한다.

숙희는 전설적인 여도둑의 딸이다. 여도둑의 죽음으로 숙희는 보영당에서 자란다. 엄마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숙희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데 탁월하다. 마음만 먹으면 백작도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숙희는 아가씨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라는 경험은 두 사람을 조금씩 끌어당긴다. 아가씨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살도록 길러졌다. 저택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바깥 세상과는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 저택의 거대함은 아가씨를 짓누른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지만, 방법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숨겨야 한다. 백작은 범죄 설계자다. 제주도 노비 출신임을 속이고 귀족 행세를 하며 아가씨의 재산을 노린다. 백작은 1부부터 3부까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끌어간다. 숙희와 아가씨의 시선에서 본 백작은 사기꾼일 뿐이다. 사랑에도 관심이 없다. 오직 아가씨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다. 숙희와 아가씨, 백작은 모두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일본 귀족인 아가씨는 저택 너머 세상을 꿈꾸고, 숙희는 조선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자유를 찾고 싶어한다. 백작은 신분제를 뛰어넘고자 한다.

<아가씨>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아가씨의 후견인 코우즈키다. 후견인은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고 싶은 조선인이다. 한일 병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광채굴권을 받고, 몰락한 일본 귀족과 결혼해 성까지 바꾼다. 단순히 일본 문화를 동경하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특히 내선일체 정책이 최고조에 달한 1930년대는 후견인 같은 인물들이 많았을 것이다. 후견인 캐릭터를 통해 <아가씨>는 시대적 배경을 완성했다. 자발적 친일 인물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의 일부다.

<아가씨>는 이들 4명의 캐릭터의 향연이 흥미롭고, 박찬욱 감독이 관능미를 보여주는 방식이 새롭다. 숙희와 아가씨의 베드신은 영화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서로 대화를 하듯 표현했다. 베드신 장면은 하나의 장면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아가씨>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단순한 욕망의 분출처럼 베드신을 보았다면 통속소설을 읽고 난 뒤 허무함을, 영화 전체를 보면 한 편의 본격 문학 작품을 읽고 난 뒤 기저에서 올라오는 희열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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