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성폭력 피해 '릴레이 폭로' 성공회대 여학생들.."우리가 직접 나선다"

이혜원2 입력 2016. 5. 29. 07:00 수정 2016. 5. 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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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성공회대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 폭로에 나섰다. (사진=독자 제공) 2016.05.28. hey1@newsis.com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성공회대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 폭로에 나섰다. (사진=독자 제공) 2016.05.28. hey1@newsis.com

신고조차 못 했던 피해자들 "나도 당했다"
학교 상담 인력은 태부족…"학교가 안 나서면 우리가 해결"
남·여학생들 스스로 감시 및 예방운동…성폭력 폭로 '현재진행형'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저는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전 남자친구에게 당했어요. 지금까지 피해 사실을 숨기고 지냈지만 이제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사이 독(毒)은 퍼져갔다. 음지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쉬쉬하는 동안 학교는 손을 놓고 있었다.

29일 성공회대학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학교 여학생들은 최근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자발적으로 폭로하고 나섰다. 피해자들은 하나둘 입을 열어 "나도 당했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감춰졌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여기 나도 있습니다"…'커밍아웃'하는 피해자들

폭로는 지난 4월 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한 편의 글로 시작됐다. 자신을 모 학과 재학생으로 소개한 A씨는 "4년 전 같은 동아리에 있던 학우가 술을 먹고 내 신체를 더듬는 등 성추행했다"며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일주일 뒤 A씨의 글은 학교 게시판에 대자보로 공개됐고 이후 다른 피해자들의 폭로도 이어졌다.

같은 학생에게 당했다는 B씨는 "지난해 말 동아리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회장이 날 억지로 집에 데려다줬다. 도착한 후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집으로 들어와 날 성추행하곤 나중에 '내가 집에 들어가도 아무 말 없어 날 믿은 줄 알았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고백했다.

이어 "차라리 용서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피해자의 용기 있는 행동에 마음이 움직였다"며 "단순히 가해자를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성폭력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후 학교 게시판과 페이스북 익명 공간인 '대나무숲'을 통해 하나둘 감춰왔던 얘기들을 꺼냈다. 6년 전 일부터 올해 신입생 환영회에서 발생한 사건까지 속속들이 등장했다. 가해자 중에는 학교 위탁업체 직원도 있었다.

한 피해 학생은 대나무숲을 통해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그동안 피해 사실을 숨기고 지냈다. 보복이 두려워 대자보를 쓰진 못했지만 이제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다른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진심으로 반성하고 같은 폭력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여성을 성적 도구나 욕구 해소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나 돌이켜보라"고 말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비밀…왜 그들은 침묵했나

그동안 교내 성폭력 사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변 사람 극소수만 아는 정도였다. 성공회대 인권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대자보 등을 통해 밝혀진 사건 대부분이 당사자만 알고 있던 비밀이었다.

성공회대 성폭력상담실 관계자는 "폭로 사건 이후 상담실에 접수되는 사건이 급격히 많아졌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신고 자체를 주저해 피해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피해를 신고하려 해도 학내에선 도움받을 곳이 부족했다. 성공회대에서 운영하는 성폭력상담소 전문인력은 단 한 명. 이마저도 학교생활, 진로 등 일반 상담까지 병행하는 상담사다. 최근 폭로사태가 불거지자 학교는 이달 초 시간제 상담사 한 명을 임시로 추가고용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신고를 꺼린다는 분석도 있다. 변상우 성공회대 성폭력상담실 전문상담원은 "피해 학생들이 상담실에 사건 접수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가해자가 교원일 경우 학교와 가해자가 같은 편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학교가 안 나서면 우리가 하자"

학교의 미온적인 대응에 학생들은 "학교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폭로 사건 이후 학생들은 학교 측에 상담소 인력 확충과 성폭력 예방 수업 개설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상담사를 한 명 늘리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상희 성공회대 인권위원장은 "피해자 지원 이상으로 성폭력 예방이 중요하니 관련 프로그램을 개설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는 예산 문제를 들며 아직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변상우 상담원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선 상담실 운영 외에도 지속적인 예방 활동이나 교육 등을 실시해 학교 문화를 바꿔나가야 하지만 학교 재정 여건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학생들이 직접 나섰다. 학교 인권위를 중심으로 학생들은 자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성공회대 인권위는 ▲성폭력 테스크포스 출범 ▲학내 행사에서 성폭력 행위 감시 ▲관련 워크숍 개최 ▲관련 학생회칙 제정 등을 추진 중이다.

안도희 성공회대 인권위원은 "이번 폭로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이 지금까지 도외시 해온 성폭력 문제를 직접 개선시키려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성공회대에서 대자보와 페이스북 등으로 공개된 사건은 10건. 폭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hey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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