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新풍속도] (20) "춥다" vs "덥다"..여름이면 불붙는 성(性)전쟁

김종명 입력 2016. 5. 28. 09:03 수정 2016. 6.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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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덥다. 더워…. 아직은 봄철인 5월임에도 3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미 우주항공국, 나사(NASA)의 관측대로라면 올해는 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 같다.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과연 지구는 언제까지 얼마나 더 더워질까? 이제 봄이나 가을은 사라지게 되나?

지구는 얼마나 더워졌나?

영국 레딩대학교 호킨스 교수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지구 기온의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 관련 자료를 압축해 정리한 간단한 그래픽이지만 지난 1850년 이후 지금까지 지구가 얼마나 더워졌는지를 실감 나게 전해준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진행되는 온난화 그래픽을 보다 보면 가슴에 무언가가 생겨나는 듯하다.

호킨스 교수는 위 그림에서 섭씨 1.5도와 2도를 붉은 선으로 표시해 위험지대로 경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대책의 새로운 체제인 파리협정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을 섭씨 2도 혹은 1.5도 이하로 상승을 억제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위 그림에서 지구 기온은 이미 위험지대에 근접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날이 더워지면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논쟁이 하나 있다. 부부간의 돈 문제도, 자녀 교육 문제도 아니다. 직장 상사와 직원 간의 다툼도 아니다.

냉방온도를 어떻게?. 성(性) 전쟁

다름 아닌 냉방문제다. 에어컨의 온도를 어느 수준에 맞출지를 놓고 부부간에, 혹은 사무실 여직원과 남성 직원이 벌이는 신경전이다. 대개 남성들은 너무 덥다며 에어컨 온도를 더 낮추려 하고, 여성들은 너무 춥다며 올리려 한다. 일부 해외언론은 이를 두고 여름철 '성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여름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이 '성 전쟁'이 세계적인 이슈로 확산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의대 보리스 킹마 교수가 지난해 여름 발표한 연구결과가 도화선이었다. 과학적 논거를 통해 여름철 실내 냉방에 성차별 요소가 있음을 입증한 논문이다. 이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여러 나라에서 논쟁이 불붙었다. 여성들은 주로 공감한다는 의견을 쏟아냈고,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의 가벼운 옷차림을 거론하는 등 반박대열에 가세했다.

관련 내용을 전하고 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사.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위 사진은 남녀 간 온도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성의 손을 보면 남성보다 온도가 낮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추운 이유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위 사진을 보면 여성의 몸은 남성보다 덜 따뜻함을 알 수 있다. 키와 몸무게, 근육량 등 여러 신체적 특징을 통해 결정되는 기초대사율(BMR,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이 남성들보다 20~30% 정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손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

그런데 사무실의 냉방기준에는 이런 사정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킹마 교수의 설명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무실이 1960년대에 남성을 기준으로 설정한 냉방기준을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기준으로 삼은 대상은 체중 70㎏의 40세 남성이었다.

무더운 여름에도 많은 여성이 가디건을 껴입거나 담요를 두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킹마 교수는 설명한다.



연구진은 남성과 여성에게 적합한 온도가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티셔츠에 운동복 하의 차림으로 실시한 실험에서 남성들은 22도를 가장 쾌적한 온도라고 답했다. 반면 여성들은 24.5도가 적당하다고 평가했다. 2도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적정온도에 대한 남녀 간의 차이는 이전 다른 실험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네덜란드 폰티스대 반 호프 교수는 동양의 일본인 여성과 서구의 유럽 남성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온도 차가 어떤지 실험했다. 그 결과 일본 여성과 유럽 남성이 느끼는 이른바 중립온도(neutral temperature, 인체가 덥지도 춥지도 않다고 느끼는 온도)가 크게 차이가 남을 확인했다.



두 연구결과는 여성들이 온도에 더욱 민감한 경향이 있으며, 남성들보다 특정 온도에서 더욱 덥거나 춥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연구자는 동시에 사무실 건물의 에너지 소비문제를 제기한다. 남녀 간의 열량 차이와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냉방기준을 조정하면 직원들이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뿐더러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규모 실태 조사도 촉구했다.



남녀 간 복장 차이도 냉방 다툼 원인

와이셔츠에 양복을 차려 입은 남성 직원과 팔이 없는 가벼운 원피스를 입은 여성 직원, 우리 주변의 많은 회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다. 여름철이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남녀 간의 사무실 복장도 냉방온도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이 있다.

미국 내 대부분 사무실의 온도 규정은 미국 냉난방 공조 협회가 1960년대에 시행한 연구를 토대로 고안한 건물 규정을 따르고 있는데, 당시 사무실은 신사 정장을 완벽하게 갖춘 남성들로 차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노동인력의 51%를 여성들이 차지할 정도로 여성 비중이 늘어난 상황인 데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아무리 보수적인 직장 분위기라도 여름철에 여성들에게 정장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회사는 거의 없으며 이 때문에 사무실에서 남성들보다 피부 노출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들 여성에겐 당연히 정장 차림 남성에 온도를 맞춘 사무실은 추울 수밖에 없다.

사무실 냉방온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 전문가들은 미국 코넬대학교 알란 헤지 교수의 연구결과도 자주 인용한다. 너무 춥다고 느끼는 사무실 환경에서는 직원들의 실수가 잦아지고 회사의 비용부담도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날이 더워지자 미국의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이런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며 온도와의 싸움에 나서라고 다른 여성 근로자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혁명'이라는 격한 단어까지 써가면서...

[바로 가기] ☞ 엘리트 데일리 ‘사무실이 너무 추울 때 모든 여성이 대처해야 할 10가지’

한 여성 사업가는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보급하고 나섰다. 개별 사무실, 혹은 건물 전체의 냉난방 시스템과 접속해 인공지능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콤피(Comfy)'로 불리는 이 시스템이 설치되면 직장인들이 접속해 각기 사무실 온도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지시할 수 있다. 시스템은 이를 종합해 개별 공간이나 사무실의 이상적인 온도를 기계 학습을 통해 찾은 다음 냉방용량을 자동 조절해준다고 한다. 성별이나 감정 등에 따라 달라지는 사무실 구성원들의 선호 온도도 그때그때 저장돼 최적 온도를 찾는데 활용된다고 옵서버지는 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무실의 모든 구성원을 항상 만족하게 할 수는 없지만 더 많은 구성원을 보다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옵서버지는 설명한다. 한편으론 양복을 자주 입는 남성들은 다소 덥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남성 우위 시대의 종말'을 늦추고 '지구온난화의 재앙'을 다소나마 지연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바로 가기] ☞ 옵서버 ‘어떻게 사무실 온도조절 성 전쟁을 완화할 수 있나?’

물론 우리 사무실에서도 이런 논쟁이 종종 불거진다. 특히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냉방 여건이 좋은 사무실이나 은행, 백화점 등에 다니는 여성 근로자들이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지나치게 노출돼 냉방병을 호소하는 사례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 처지에서 보면 이런 논란이 부러운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많은 사무실이 정부가 권장하는 적정 실내온도 26도를 여름철 냉방기준으로 지키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들은 사무실 냉방 기준을 28도 이상으로 높여 에너지 절감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까지 '찜통'을 호소하는 사무실이 더 많지 않은가?

가정으로 눈을 돌려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가계 살림이 어렵다 보니 에어컨을 원하는 만큼 트는 가정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열대야가 계속될 때면 "덥다", "춥다"며 부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사람마다, 체형마다, 특히 남녀 간에 느끼는 온도감이 다르니 부부를 완벽하게 만족하게 해줄 온도도 애초부터 없지 않은가? 남녀간의 쾌적온도 차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킹마 교수의 해법은 이렇다.

"나는 전적으로 아내의 의견을 따른다. 그게 한 가지 해법이다."

김종명 에디터의 [사무실 新풍속도] 시리즈
① “점심은 얼간이들이나 먹는 거야”
② 변기보다 400배 지저분한 그곳에서 음식을?
③ 당신의 점심시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④ 유령 회사’의 시대…일자리는 어디로?
⑤ 아인슈타인과 처칠, 구글과 나이키의 공통점?
⑥ 당당히 즐기는 낮잠…. NASA의 '26분' 법칙
⑦ 직장인이 듣고 싶은 ‘하얀 거짓말’
⑧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는 무엇입니까?
⑨ 남자는 키 여자는 체중…? 직장인과 나폴레옹 콤플렉스
⑩ 직장 내 ‘폭탄’들의 승승장구 비결…왜?
⑪ 2016 한국인 행복곡선은 L자형?
⑫ 미래 기업에 ‘사무실은 놀이터다’
⑬ ‘눈물의 비디오’와 4차 산업혁명
⑭ “월요일이 너무 싫어”…극복법은?
⑮ 직장 상사의 '갑질'은 전염병이다.
⑯ 연차 독려?…“갑질문화부터 고쳐라”
⑰ ‘긱경제’ 급부상…약일까 독일까?
⑱ 7시간 이상 자면 회사가 돈을 준다고?
⑲ 성공과 잠…줄여라! VS 더 자라!

김종명기자 ( kimj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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