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의 도시' 강정호와 사랑에 빠지다

김철오 기자 2016. 5. 2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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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이방인' MLB 연착륙 도운 감독과 시민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오른쪽)가 지난해 4월 3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 7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4타수 3안타 2타점 1볼넷 1도루로 맹활약하고 8대 1 승리를 이끈 뒤 클린트 허들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지난해 8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말린스파크의 원정팀 클럽하우스.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훈련하거나 휴식하는 이곳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4번 타자 강정호(29)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클린트 허들(59) 감독은 그를 발견하고 기척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을 걸었다. 스마트폰 게임에 대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고, 심적·육체적 고충이 있는지 물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5분 동안 구김살 없는 얼굴로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닷컴(MLB.com)의 칼럼니스트는 이 순간을 목격했다. 그의 눈에 강정호와 클린트 허들 감독은 피츠버그에서 고작 6개월을 보낸 아시아의 ‘루키’와 매일 선수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감독 사이라기보다 평범한 미국 가정의 아버지·아들처럼 보였다. 그는 두 사람의 짧은 대화 과정에서 보였던 배려와 믿음을 주제로 그 다음달 15일 MLB닷컴 헤드라인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황금률(The Golden Rule)’. 배려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 기독교적 윤리관은 허들 감독 리더십의 원천이다. 허들 감독은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대 입학 허가를 받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데뷔 시즌을 마친 1978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올해의 천재’로 뽑힐 정도로 지능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선수 시절의 말년은 불운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알코올중독으로 좌절을 경험했다. 그랬던 허들 감독이 알코올중독에서 탈출하고 2002년 콜로라도 로키스 지휘봉을 잡으면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누군가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들 감독은 지난해 2월 스프링캠프에서 강정호를 처음 만났을 때 “과연 안타를 칠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에 적응할 수 있을까”를 놓고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황금률에 따라 먼저 다가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언제나 먼저 말을 걸었고, 과하지 않게 칭찬하면서 강정호에게 힘을 실었다.

강정호는 한 번도 코리안 메이저리거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던 피츠버그에서 지난해 121안타 15홈런 타율 0.287의 맹타를 몰아치고 중심타자로 자리를 잡았다. 허들 감독의 배려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데뷔 시즌의 연착륙이었다.

허들 감독은 오랜 부상을 극복하고 올 시즌 개막 한 달 만인 지난 7일부터 타선으로 돌아온 강정호를 정밀하게 관리하면서 무리하지 않은 복귀를 돕고 있다. ‘2경기 선발, 1경기 휴식, 3루수 붙박이’의 원칙을 세우고 100%의 몸 상태를 만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강정호는 허들 감독에게 몸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면서 완급을 조율한다.

강정호를 배려와 믿음으로 감싸안은 것은 허들 감독만이 아니다. 미국 중부 철강도시 피츠버그의 35만 시민들은 강정호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피츠버그 시민들은 팀의 상징인 ‘해적’이나 ‘강정호’를 한글로 새긴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강정호의 전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을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 ‘직구족(해외 상품을 직접 구입하는 소비자)’까지 등장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홈구장 PNC파크에서는 졸리 로저(Jolly Roger·해적의 해골 문양)와 함께 휘날리는 태극기, 한글로 응원문구를 적은 팻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정호가 부상 244일 만에 홈구장으로 복귀한 지난 18일 PNC파크 관중석에선 ‘피츠버그는 당신을 사랑해요(Pittsburgh Loves You)’라고 적은 팻말을 높이 들고 눈물을 흘린 백인 여성도 있었다. 이런 애정공세는 아시아의 ‘이방인’ 강정호를 피츠버그에 정착하도록 만들었다.

강정호는 화끈한 타격으로 보답하고 있다. 27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홈경기에서 4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해 5타수 3안타 2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피츠버그가 8대 3으로 완승한 이 경기에서 3안타를 몰아친 선수는 강정호뿐이었다. 복귀하고 20일 동안 47타수 14안타 5홈런 14타점으로 3할대 타율의 목전(0.298)까지 다가갔다. 허들 감독의 리더십과 피츠버그 팬들의 사랑에 대한 강정호의 대답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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