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환의 인사이트] 김동진, 이영표라는 산을 이야기하다

임기환 2016. 5. 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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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환의 인사이트] 김동진, 이영표라는 산을 이야기하다

(베스트 일레븐)


서울 이랜드에서 센터백으로 활약 중인 김동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레프트백이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62경기를 뛰었다.

이 시기에 그의 국가대표팀 경쟁자가 바로 ‘초롱이’ 이영표였다. 두 사람은 다섯 살 터울로 거의 동시대에 경쟁했다. 다섯 살 터울인 이영표의 국가대표 데뷔가 햇수로 4년가량 빨랐고 은퇴 또한 1년 정도 늦었다. 김동진이 등장해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기간엔 두 선수가 출전을 양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프트백과 시대를 양분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김동진을 한국 축구의 레프트백 레전드라고 표현하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김동진은 그러한 평가에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그냥 국가대표팀에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김동진은 최근 <베스트 일레븐>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영표라는 거대한 선수와 같은 포지션에서 함께 뛰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자 영광이었다. 영표 형은 산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 국가대표팀에서 같은 포지션을 뛰었다. (내가) 부족했음에도 그런 기회를 누렸다는데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지난 국가대표팀에서 이영표와 함께 뛰던 시절을 회상했다.

이영표와의 인연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2000년에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했다. 이영표가 건국대, 김동진이 안양공고를 졸업하면서 둘은 안양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안양에 입단하기 이전에 올림픽 대표팀에서 왼쪽 수비를 봤던 김동진은 프로 첫해인 2000년에 조광래 당시 안양 감독의 눈에 들어 처음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조련을 받았다. 그 당시 안양엔 이미 국가대표였던 이영표가 속해 있었다. 김동진은 첫 다섯 경기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고 이후에도 여러 포지션을 오갔다.


김동진은 K리그 데뷔 시즌에 7경기, 이듬해 6경기, 그리고 2002년에 8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이영표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 2003년부터 주전 레프트 윙백 자리를 꿰찼다. 이 시즌에 김동진은 아직까지도 프로 커리어 사상 가장 많은 35경기를 소화했다. 공격 포인트도 일곱 개(5골 2도움)나 올렸다. 이 시기의 활약을 발판으로 김동진은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김동진은 왼쪽 측면 수비수가 풍년이던 시대에 이영표의 후계자로 각광받았다. 그 당시 국내엔 장학영·김치우·양상민 등 우수한 레프트백 자원이 많았다. 누가 언제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주전을 꿰차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동진만이 ‘큰 산’ 이영표에게 제대로 맞섰다. 왼발잡이 레프트백 김동진의 가파른 성장세에 오른발잡이인 이영표가 오른쪽 측면 수비를 보는 상황도 생겼다. 김동진은 “영표 형과 함께 (국가대표팀에) 있으면서 실험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국내 언론은 이영표와 김동진의 경쟁 구도를 만들며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두 선수의 라이벌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러나 김동진은 “바깥에선 우릴 비교하는데, 정작 둘은 잘 지냈다”라며 웃었다. 김동진은 이영표를 경쟁이 아닌 존경의 대상으로 봤다. 그는 “영표 형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영표 형은) 그런 걸 가져야 할 존재가 아니다. 그걸 뛰어 넘는 사람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라고 했다.

그간 그가 국내 팬들에게 남긴 임팩트와 국가대표팀 활약상에 비해 지나친 겸손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산악인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산 능선을 오르듯, 이영표에 대한 김동진의 마음도 그와 비슷해 보였다. “처음부터 (영표 형을) 존경했고,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 나랑 달리 잉글랜드와 독일에서 활약했고 토트넘 홋스퍼에서도 정말 잘했다. A매치도 굉장히 많이 뛰었다. 나랑 비교되기엔 너무나 훌륭한 형이다. 그런 비교 자체가 내겐 너무 영광이고 감사하다”라고 이영표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최고의 선배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이 행복했다고 말하는 김동진에게도 아쉬운 감정이 남아 있다. 어느 순간에 종적을 감춰버린 태극마크에 대한 어그러진 존재감이다. 그는 “대표팀 끝무렵에 사람들에게 잊힌 건 아쉽다. 한순간에 그렇게 되어버리더라”라며 미소 지었다. 한때 한국 축구 최고의 레프트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김동진은 국가대표 은퇴식을 치르지 못했다. 지금은 단지 가끔 생각하면 아쉬운 정도로 남은 그의 새로운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최근에 태어난 딸아이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입장하는 것이다. “아빠가 선수였다는 걸 아이에게 기억시켜주고 싶다. 그때까지 뛸 수 있을까?(웃음).”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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