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하마' 자율협약] 기업 못살리고 되레 부실만 키워..한계기업 연명 수단으로 전락

조민규 기자 2016. 5. 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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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입 줄이려 도입했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상시적 구조조정 강화 등 기업회생 틀 다시 짜야

STX조선해양을 비롯해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연명했던 조선업체들이 줄줄이 법정관리 수순을 밟으면서 자율협약 제도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영상황이나 업황을 고려할 때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은행이 자금을 지원해 연명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부실 초기 단계부터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과 은행의 상시적 협력체제가 필요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구조조정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책임 없이 연명만=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에 채권은행들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자율협약 제도는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한보와 기아 등이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부도유예협약과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주도의 워크아웃 제도를 마련해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한계기업 정리가 일단락되면서 더 이상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줄어들자 기업구조조정위원회를 없애는 대신 채권단 중심의 협약운영위원회를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채권단의 자율적 구조조정은 되레 부실기업 연명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2009년 자율협약에 돌입한 후 5년 만에 졸업한 아시아나항공 등 일부 성공 사례가 있지만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기업들이 훨씬 더 많다. 대표적 케이스가 최근 법정관리 전환 수순을 밟고 있는 STX조선해양이다. 채권단은 자율협약 이후 3년 동안 STX조선해양에 4조5,000억원을 추가 지원했지만 끝내 경영 정상화는 이뤄내지 못했다. STX중공업이나 STX엔진 등 채권은행과 자율협약을 맺은 STX 계열사들도 법정관리를 밟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밖에 동부제철의 경우 자율협약 개시 1년 만에 워크아웃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자율협약 돌입 시점에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결정하는 게 더 바람직했다는 것이다.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에도 채권단의 구조조정 역량이나 인력이 부족한 것 또한 자율협약의 한계로 지적된다.

◇수주산업 특성과 채권단 노력은 고려해야=현재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14개 기업 중 조선사 또는 조선기자재 기업이 7개로 절반을 차지한다. 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대선조선 그리고 이달에 자율협약을 체결한 한진중공업 등이 대표적이다. 수주산업인 조선업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라는 법적 근거를 둔 워크아웃 대신 자율협약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채권은행들은 조선사에 선수금환급보증(RG)을 서는데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등 법적 근거를 둔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경우 조선사에 선박 건조를 맡긴 선주들이 발주를 취소하고 선수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은행들은 이에 응해야 한다. 기업은 물론 채권단으로서도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한 셈이다.

기업의 회생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이루는 것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들어가는 것보다 모든 주체들에 이득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같은 측면에서 채권단이나 금융당국은 자율협약의 긍정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처음부터 살아날 수 없는 기업을 자율협약에 넣어 연명시킨다는 비판이 있지만 채권단이나 당국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STX조선해양만 놓고 보더라도 2013년 자율협약 개시 당시 상황과 지금은 판이하다”고 말했다.

◇상시 구조조정 강화해야=자율협약을 당장 없애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대신 상시적 구조조정을 강화하는 방식의 보완방법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독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독일의 경우 기업이 보유한 현재의 유동성으로 어음이나 회사채를 막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3주 전에 법원에 의무적으로 통보해야 한다. 실제로 부도가 발생하면 법원 관할하에 청산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법적 구조조정 돌입의 문턱이 크게 낮아 기업들은 평상시 채권은행들과 경영상황을 논의하고 대책을 세운다. 기업의 상황이 극히 어려워진 다음에야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자율협약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실이 발생하기 전에도 채권은행과 기업이 소통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촉법하에 진행되는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을 통합하는 것도 방법이다. 법적 근거 유무가 다를 뿐 채권단 위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실체는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수주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정부 당국이 워크아웃은 법정관리와 다른 채권단 주도의 경영정상화 과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채권은행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선도할 수 있도록 관련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시중은행 전문인력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다”면서 “이들이 은퇴하고 시중은행들이 기업여신을 줄이면서 기업 회생을 주도할 만한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태부족인 상태”라고 지적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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