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키스가 멋진 남자?..대중문화가 '여혐' 부채질

2016. 5. 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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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6 한국,‘여혐’과 마주서다
③ ‘평범남’이 어떻게 여혐에 물드나

‘난 한국 드라마 속 팔목잡기가 싫다!’ 구글에서 ‘wrist’(리스트·팔목)와 ‘korea’(코리아·한국)를 치면 이런 글이 나온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팔목을 강제로 잡아끄는 장면을 두고 외국인들은 한류팬을 자처하면서도 폭력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행동은 한국 드라마에선 ‘멋있는 남자’의 상징처럼 단골로 등장한다. 최근 ‘여혐’(여성혐오) 논란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드라마·개그·예능·대중가요·광고 등 대중문화 속에는 이미 다양한 여성 비하와 혐오의 코드들이 스며들어 있다.

■ 여자는 정복 대상?

일부 힙합 가사들은 여과없이 여성 비하와 혐오적 발언을 담아 논란을 빚었다. 몇몇 유명 래퍼들은 여자를 정복당하길 원하는 존재,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인 양 묘사했다. “넌 속사정하지만 또 콘돔없이/ 때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 난자같이”(이현준) “미노 딸래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송민호). 심지어 좋아했던 초등학교 동창을 강간하고 그와 그의 남자친구를 살해한다는 내용도 있다. “거세게 저항하는 그녀의 몸을 붙잡아/ 아까 찍은 그놈의 시체사진을 봐”(‘졸업앨범’) 이 노래를 부른 블랙넛은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유명해졌고, 팬들은 그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아이돌 노래에서 여자는 주로 명품을 밝히는 된장녀다. 방탄소년단의 ‘미스 라이트’는 “명품백을 쥐기보다는 내 손을 잡아주는/ 질투심과 시기보단 됨됨이를 알아주는”이라는 가사가 논란이 됐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중식이밴드는 전 여자친구가 찍힌 야동을 보면서 그를 그리워하는 노래(‘야동을 보다가’)를 불렀다가 여혐 논란에 휩싸여 사과하기도 했다.

‘정복당하길 원하는 존재’로
일부 힙합가사 여성비하 버젓이

예능프로 여성출연자에 애교 강요
광고에도 남성의존적 모습 잦아

필라테스 강사 양정원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

■ 애교? 섹시?

예능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들은 애교, 춤 등으로 분위기를 띄우라는 요구를 받곤 한다. 최근 <라디오 스타>에 남궁민, 윤정수, 이동휘와 함께 나온 설현은 혼자서만 애교를 부리고 춤을 췄다. 김구라가 “특기가 애교”라며 설현한테만 이를 요구했다. <런닝맨>에서는 버저를 먼저 누르는 권한을 주겠다며 여성 출연자인 김지원과 송지효한테 애교를 요구하고 남성 피디가 “통과”를 외쳤다. <1박2일>에서는 남성 진행자의 심장 박동 수를 높여야 한다며 한효주가 진행자 6명을 상대로 번갈아 애교를 부리게끔 했다. 몇년 전 <라디오 스타>에선 전 카라 멤버 강지영이 진행자들의 애교 요구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여성 진행자에 대한 은근한 차별 관행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해피투게더>에는 수많은 남성 진행자들이 나오지만, 초대 손님이 오면 문을 열어주는 건 유일한 여성 진행자인 엄현경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필라테스 강사 양정원의 동작에 “감사합니다”처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적 시각을 담은 자막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한 방송사 피디는 “조심은 하지만, 제작진이 주로 남자이고 독설이나 자연스러운 설정이 많아지면서 수다 떨듯이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현이 나온 에스케이텔레콤(SKT) 포스터.

■ 드라마·광고에도…

올해 초 설현이 등장했던 에스케이텔레콤 포스터는 성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다. “티로밍카드로 해외에서 데이터 꽁꽁 묶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설현을 밧줄로 꽁꽁 묶은 사진이 논란이 됐다. 2012년 음료 ‘하늘보리’ 옥외광고는 “날은 더운데 남친은 차가 없네”라는 문구를 내세웠다가 남성적 시각에서 여성의 의존적 태도를 과장했다는 비난에 하루 만에 광고를 내렸다. 지난해 패스트푸드 케이에프시(KFC)가 신제품 홍보를 위해 만든 옥외광고 속 문구 “자기야 나 기분전환 겸 빽 하나만 사줘”도 논란에 휩싸였다. 틱틱대면서 은근히 잘해주는 ‘츤데레’ 남자 주인공이 사랑받으면서 반말, 강제 키스 등 드라마 속 남성들의 강압에 의한 행위가 로맨스로 미화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번번이 이런 논란이 일어남에도 비슷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계속 만들어지는 건 왜일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 속 여혐은 반복 주입되면서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문화 전반에 걸쳐 결정권자의 위치에 남자가 많은 것도 꾸준히 등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문화지체 현상을 온몸으로 느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여혐을 문제로 인식하는 주체가 생긴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기획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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