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저 푸른 초원은 녹색의 최음제

2016. 5.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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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8일 수요일 맑음. 채식주의자. #209 Corinne Bailey Rae 'Green Aphrodisiac'(2016년)
[동아일보]
영국 싱어송라이터 코린 베일리 래의 신작 ‘The Heart Speaks in Whispers’ 표지.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생각해 본 적 없다.

2012년, 극단적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영국 가수 모리시가 내한했을 때도 흔들림 없었다. 그가 공연 중 끔찍한 소 도살 화면을 배경으로 노래를 부른 순간에도. 커트 코베인은 너바나의 ‘Nevermind’의 사실상 마지막 곡 ‘Something in the Way’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생선은 먹어도 괜찮아/걔넨 아픈 걸 못 느끼거든.’

미국 힙합 듀오 ‘런 더 주얼스’는 채식의 무서움을 보여 줬다. 지난달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 공연 중 그들이 공개한 새 뮤직비디오 ‘Love Again’은 DJ 섀도, 잭 드라로차(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트래비스 바커(블링크-182) 같은 무대 위 깜짝 게스트보다 더 놀라웠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무시무시한 힘을 영상은 보여 준다. 극단적으로 확대된 나비의 주둥이와 꽃의 수술은 탐욕스러운 육식동물의 생식기 같다. 수컷의 충동을 받아 주는 암컷이 실은 포식자였다는 결말까지…. 꽃이 풍기는 싱그러움과 강렬한 색채, 소름 돋는 곤충의 털과 주둥이가 대비된다. 느리게 반복되며 다가서는 비트와 전자음의 충동질, 간헐하는 관악 샘플의 협주는 아몽 토빈의 ‘Four Ton Mantis’처럼 영상 속 곤충의 몸체를 1만 배쯤 확대하는 청각적 현미경이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코린 베일리 래는 초원과 식물의 푸름을 ‘녹색 최음제’로 묘사했다. 최근 6년 만의 새 정규 앨범 ‘The Heart Speaks in Whispers’에서다. 마커스 밀러, 폴 잭슨 주니어, 에스페란자 스팔딩이 참여한 곡 ‘Green Aphrodisiac’. 덜시톤, 로즈 피아노, 하프가 형성한 몽롱한 잎사귀를 들추며 래는 노래한다.

‘…당신 나라에서 길을 잃어/녹색 최음제/키스해 줘, 네 입술에서 꿀맛이 나/새와 벌들이 노래하고…그 정원에서 자라는 것들이/당신과 내게 차 올라/가고파,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

래는 남편을 잃은 뒤 낸 전작 ‘The Sea’(2010년)를 ‘바다가, 장엄한 바다가 내 모든 걸 깨고 부수고 쓸어간다’로 맺었다. 빼어난 사별 앨범이었다. 2013년 음악 프로듀서와 재혼한 뒤 낸 그의 신작은 많은 부분이 새로운 사랑에 대한 매혹으로 칠해져 있다. 그러나 잃어 본 사람의 새로운 기쁨은 너무도 밝다. 이 또한 눈물난다. 뛰어난 환희의 음반이다.

‘…내가 심은 모든 것들이 자라나/시간과 땅, 물과 햇빛뿐이었는데/가운데를 향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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