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 시점보다 부지 확보에 집중..논란 여지 남긴 기본계획

임소형 2016. 5.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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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내 저장시설 추가 건설 불가피

정부가 25일 내놓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지 선정 과정의 잡음을 최소화하는데 지나치게 방점이 찍혔다고 지적했다. 영구처분시설과 중간저장시설 등 필수 시설의 가동 시기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부지 확보 시점에 따라 실제 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점도 기약 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비용이나 관리주체 등 책임있는 관리에 꼭 필요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핀란드 올킬루오토섬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온칼로(Onkalo)’ 내부. 핀란드말로 ‘은폐장소’라는 뜻의 온칼로는 지하의 암반이 최종 처분장으로 적합한지를 연구하는 시설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정부가 기본계획에 부지 선정 절차와 소요 기간을 상세히 명시한 것은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 선정 과정의 혼란상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중ㆍ저준위 방폐장은 정부가 특정 지역을 부지로 예단하고 밀어붙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며 무려 20년 가까이 갈등을 겪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시설 부지는 민간 전문가가 주도하는 ‘부지선정실행기구’(가칭)를 신설, 이 조직이 총 12년 동안 과학적 조사와 민주적 절차를 거쳐 독립적으로 부지 확보를 추진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부지선정실행기구는 먼저 전 국토 중 시설 입지로 부적합한 지역을 제외한 뒤 나머지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에 들어간다. 공모에 응한 지역 중 기본조사를 통과한 곳에서 주민투표 등으로 지역 의사를 확인, 최종 후보지를 2곳 정도 선별한다. 여기까지 정부는 8년을 잡았다. 이후 다시 4년간 심층조사를 거쳐 둘 중 한 곳을 최종 부지로 확정한다는 게 기본계획상의 일정이다.

이 절차는 기본계획의 법적 근거인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절차에 관한 법률’(가칭)이 시행돼야 진행된다. 그러나 워낙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정부의 기대대로 올해 안에 법 통과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 대학 교수는 “법 통과가 차일피일 미뤄지면 그만큼 부지 확보 시점도 늦춰지고 영구처분시설 가동도 연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그 사이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 내 대형 수조나 콘크리트 구조물 같은 임시저장시설에 꽉 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단기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용인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 가동 전까지는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 내년부터 기본계획이 시행되더라도 중간저장시설 가동은 일러야 2035년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리와 한빛 원전은 2024년, 한울은 2037년, 신월성은 2038년이면 사용후핵연료를 넣어둔 수조가 꽉 찰 것으로 계산했다. 중수로 사용후핵연료를 넣어둔 월성 원전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2019년 포화된다. 이 경우 새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넣어둘 추가 단기저장시설이 필요하다.

정동희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월성과 한빛 원전에 단기저장시설 추가 건설이 시급하다”며 “월성은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고, 한빛은 월성과 다른 경수로용 단기저장시설을 개발해 내년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리 원전은 2017년 6월 1호기가 정지되는 만큼 이후 상황에 따라 단기저장시설 추가 건설이 필요할 지를 판단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원전 관련 시설을 더 짓는데 대해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우려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이러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 임시저장 용량이 초과되기 전 중간저장시설을 마련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이송할 것을 지난해 6월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부지 확보 시점을 공론화위가 권고한 2020년보다 8년 뒤로 늦추며 원전 내 단기저장시설을 추가하는 방안을 택했다. 정 정책관은 “지역사회와 충분한 협의를 거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수조. 긴 막대 형태의 연료봉에 담긴 사용후핵연료가 방사능이 일정량 이상 나오지 않도록 물 속에 잠겨 있다. 이런 수조는 원전마다 설치돼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중수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로 저장해놓은 원통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캐니스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중수로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로 저장해놓은 육면체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맥스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핵심인 비용과 책임 주체는 이번 기본계획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산업부는 영구처분시설과 중간저장시설 등 주요 시설의 건설비와 기술개발비, 100년 간 운영비로 총 약 53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보된 예산은 7조원에 불과하다. 정 정책관은 “총 소요 재원은 공청회 결과를 반영하고 예산당국과도 협의한 뒤 결정하겠다”며 “모자라는 부분은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에 따라 연차적으로 납부해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관리 주체는 해외 사례나 기존 조직과의 차별성, 타당성 등을 고려해 향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공론화위는 사용후핵연료를 책임지고 관리할 전담 공사를 설립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결국 40여억원을 들여가며 의견을 수렴해 만든 공론화위의 권고안에서 산업부가 원안대로 받아들인 부분은 중간저장시설과 지하연구시설, 영구처분시설을 모두 한 부지 안에 건설하는 게 경제성이나 안전성 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것뿐이다. 이에 대해 공론화위 관계자는 “권고안 제출 후 이미 해체된 조직이라 논평이 적절치 않다”면서도 “원전 내에 사용후핵연료를 더 저장하려면 안전규제 측면에서 면밀한 검토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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