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지 않은 純正한 습지 두 江 품었네

박경일 기자 2016. 5. 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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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 목사동면의 아미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대황강의 반구정 습지. 초록의 수생식물로 가득한 이런 습지를 가진 강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대황강은 ‘우리 강의 원형’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강 중의 하나. 그러나 지금 이런 강변에 자전거길을 놓는다며 시멘트를 붓고 있다.
전남 곡성의 대황강과 섬진강은 요즘 거의 매일 아침마다 짙은 물안개로 휘감긴다. 이른 아침 섬진강의 침실 습지 둑에서 만난 풍경. 위 사진이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해가 막 올라왔을 때의 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떠오른 해의 아침 빛이 강과 습지를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들일 무렵의 경관이다.
곡성의 절집 태안사는 절집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비포장 숲길의 정취가 으뜸인데, 그 길 끝에서 일주문으로 드는 유연하게 휘어진 계단길도 인상적이다.

江의 원형이 살아 있는 땅 곡성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범죄스릴러 영화 ‘곡성(哭聲)’이 난데없이 전남 곡성(谷城)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지역명과 똑같은 제목을 쓰는 음산한 내용의 영화 개봉으로 지역 이미지 실추의 위기에서 곡성 군수가 지역 신문에 쓴 기고문 덕입니다. “우려를 뒤집어 생각하면 기회의 순간이 온다”며 “영화 개봉으로 지역 인지도를 높여 ‘남는 장사’를 하자”는 주장도 참신했지만, 그 못지않게 곡성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군수의 자랑 섞인 묘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군수는 ‘초록빛의 발랄함과 사철나무의 들뜨지 않는 엄정함에 감탄할 수 있다면’ ‘유리창에 낀 성에를 지워가며 그리웠던 사람들을 그려본 사람이라면’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 곡성을 찾는 데는 애초부터 그런 자격은 필요 없습니다.

‘골 곡(谷)’에 ‘재 성(城)’. 전남 곡성은 이름으로 삼은 글자의 뜻 그대로 산 그림자가 첩첩이 겹쳐져 골과 골로 이어지는 땅입니다. 첩첩하긴 하되 거칠거나 우악스럽지 않은 산자락의 골을 끼고 섬진강과 섬진강에 합수하는 물길인 대황강이 흐릅니다. 곡성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단언컨대 이 두 개의 강변에 있고,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바로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할 무렵인 딱 지금입니다.

초록의 습지가 펼쳐진 대황강이야말로 아직 훼손되지 않은 순정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강입니다. 강둑의 초지에서 소가 풀을 뜯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멱을 감다가 미루나무 그늘에서 혼곤하게 낮잠에 빠지는, 그런 강 말입니다. 이른 아침이면 강변의 습지에는 온통 짙은 안개가 스며들고, 한낮이면 초록 강변의 그림자가 수면 위에 고요하게 드리웁니다.

어디 강뿐이겠습니까. 규모와 위세는 다른 지역의 내로라하는 대찰에 비할 수 없지만, 고요한 숲 속에 들어서 있는 곡성의 소박한 절집이 품은 그윽한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과 휘어진 계단을 딛고 들어서는 산문의 정취가 그렇고, 동악산 계곡의 물길을 끼고 앉은 도림사의 소박한 아름다움도 그렇습니다. 미술관을 옆에 두고 있어 세련된 미술작품을 닮아버린 성륜사나 심청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관음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곡성이라면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차마을’은, 사실 이런 풍경의 맨 뒤쯤에나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하지 싶었습니다.

대황강 휘감은 ‘안개 물길’… 아침마다 금빛으로 흐른다

# 곡성…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곳

곡성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의 팔 할 이상은 강변 풍경에 있다. 섬진강과 대황강의 물길이 곡성 땅을 적시며 흘러간다. 인지도에서는 섬진강이 대황강에 비해 한참 앞서지만, 곡성에서는 섬진강보다 대황강이 품고 있는 정취가 한 수, 아니 서너 수 위다. 그러니 곡성에 갔다면 강변부터 찾아갈 일이다.

대황강이란 이름은 낯설다. 본디 보성강이란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던 강이어서 그렇다. 보성강이란 이름은 보성 땅에서 더 길게 흐르는 강이어서 붙여진 것이었다. 그런데 곡성 위쪽의 보성강 물길이 주암댐에 가둬지면서 댐 아래쪽 강의 이름이 군색해졌다. 곡성군이 이 강에다 강변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대황강이란 이름을 붙인 건 그래서였다. 여기서 궁금했던 건 ‘왜 이 유연하고 아름다운 강에다 거칠 황(荒)자를 썼느냐’는 것이었다. ‘큰 대(大)’자까지 앞에 붙였으니 ‘크게 거친 강’이란 뜻이다. 이름과 달리 ‘작고 부드러운’ 강인데도 말이다. 수소문해봤지만 속 시원한 답이 없다. 다만 골과 골로 이어져 논으로 삼을 만한 땅 한 뙈기 변변히 없는 이쪽 곡성 땅에서 강이 자주 범람했을 것이고, 옹색한 밭이나 일구며 살았던 이들은 그런 강이 두려웠을 것이란 짐작만 할 따름이다. 대황강을 끼고 있는 마을 중에서 유독 물을 다스리는 ‘용(龍)’을 지명으로 삼은 곳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인 듯했다.

대황강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손대지 않은 우리 옛 강의 감격적인 원형이다. 버드나무들이 밀생한 촉촉한 습지와 온통 초록으로 우거진 강변,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 그리고 그 강을 끼고 이어지는 낡은 시골집의 마을은 건너온 시간 저편의 풍경 그대로다. 여름의 신록이 더 짙어지면 이 강변에는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이 꽥꽥거리며 멱을 감기도 하고,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이들이 게으르게 견지낚시를 한다. 풀 뜯는 황소의 긴 울음과 강변의 미루나무에 매미 소리까지 더해진다면, 그 강변에서 단박에 오래전에 떠나왔던 고향 마을을 떠올리게 되리라.

# 안개가 휘감은 대황강 습지 풍경

곡성의 대황강은 그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는 내내 ‘여기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펼쳐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강변 곳곳의 습지다. 곡성에는 대황강과 섬진강이 이룬 빼어난 풍경의 습지가 모두 다섯 곳이 있다.

그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곳이 순천과의 경계를 이루는 목사동면 대황강 상류의 ‘반구정 습지’다. 물에 몸을 담근 버드나무와 갖가지 수중 식물들이 밀생해 거대한 군집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푸른 강물과 초록빛으로 빛나는 물 위의 숲이 어우러진 반구정 습지의 풍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게다가 이즈음에는 아침마다 습지의 강변이 어김없이 짙은 물안개로 뒤덮인다. 수면 위로 피어오른 물안개가 두꺼운 안개가 돼서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짙은 안개가 습지의 숲을 빨아들이기도 하고, 일순 토해놓기도 한다. 이런 이른 아침의 황홀한 풍경 위에 강물 소리와 건너편 산자락의 청아한 뻐꾸기 소리가 겹쳐졌다.

가까이서 보는 강변 습지의 모습도 훌륭하지만, 멀찌감치 물러서서 내려다보는 대황강의 모습도 못지않다. 반구정 습지 인근에는 아미산이 있다. 해발 587m의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인데 그 산의 정상 턱밑에 천태암이 있다. 길이 좁고 가파르긴 하지만 산 아래 신기마을 쪽에서 암자까지 시멘트 도로가 놓여 있어 차로 단숨에 오를 수 있다.

대황강을 굽어보기에는 암자보다 그 아래쪽 능선이 더 좋다. 암자로 오르기 직전쯤에 오른쪽으로 시야가 툭 터지는 능선이 하나 있는데, 마치 긴 벼랑에 선 것 같은 이 능선의 끝이 바로 반구정 습지와 대황강 일대의 경관을 관망하는 특급 조망대다. 오전에 여기에 올라 발아래로 강이 피워올린 안개의 바다와 만나면 마치 구름 위를 떠가는 느낌이다. 강에서 번져나가 분지를 이룬 목사동면과 석곡면 일대 마을을 가득 채운 안개는 해가 뜨고 나서도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출렁거리는 안개가 걷히고 나면 그 아래로 대황강의 반구정 습지가 초록빛 보석처럼 드러난다.

곡성의 섬진강변에도 습지가 있다. 곡성읍 대평리에서 고달면으로 이어지는, 곡성군수가 자랑해 마지않는 ‘침실 습지’다. 낮에도 좋지만, 이곳은 해 뜰 무렵 습지를 휘감은 섬진강의 안개가 붉은 아침볕을 받아 출렁일 때가 압권이다. 순백의 안개가 아침 볕에 붉고 노랗게 물드는 모습이 얼마나 몽환적이던지…. 안개가 걷히고 나면 마치 주술이 풀린 듯 사라지고 마는 꿈속 같은 풍경을 담아두고 싶은 사진가들이 이쪽 습지를 자주 찾는다.

# 토건으로 무너지는 강의 풍경

여기서 잠깐. 아무래도 곡성에서 만난 아쉬운 것들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대황강의 강변은 지금 시멘트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대황강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압록유원지 부근 강둑은 곳곳이 이미 시멘트로 덮였다. 강변을 한강둔치처럼 만들기 위해 깎아내서 붉은 흙이 무더기로 드러난 곳도 있다. 주암댐 아래 상류 쪽에도 자전거 도로를 놓는다며 멀쩡한 도로를 놔두고 강변과 습지 위에다 시멘트를 붓고 있었다.

강 상류 쪽에 주암댐이 있어 수위 조절이 가능하니, 수해 방지의 목적도 아닐 것이고…. 도대체 이 무슨 만행인가 싶어 아쉽다 못해 분노까지 치밀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 아름다운 강변 풍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일까. 그대로 놓아둔다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오래된 장옥이 늘어서 켜켜이 쌓은 시간으로 근사했던 곡성의 오일장을 상설시장을 짓는다며 다 허물어버리고 난 실패를, 폐선된 선로를 뜯어내지 않고 증기기관차를 놓아 이룬 기차마을의 성공을 다 잊은 것일까.

이런 토건이 어떤 속도로, 강의 어디까지 무너뜨릴지는 모르겠지만 곡성에 가겠다면, 거기서 순정한 옛 강의 모습을 만나보고 싶다면 되도록 서둘 일이다. 절집에서 북을 실어내다가 빠뜨려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대황강의 북소 일대도, 목사동면에서 석곡면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빼어난 습지도 다행히 아직 무사하다. 그게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드러낸 것보다 숨겨진 것이 아름답다

곡성에는 내로라하는 이름난 사찰은 없지만, 저마다 매혹적인 이야기와 풍광을 품고 있는 절집들이 곳곳에 있다. 작고 소박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곳들이다. 그래서 곡성에 갔다면 절집 순례를 빼놓을 수 없다.

곡성의 절집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게 바로 태안사다. 대황강의 그윽한 물길을 끼고 이어지는 강변길 끝에 있는 태안사는 한때 화엄사와 송광사까지 다 말사로 거느렸다는 대찰이었다. 지금은 예전의 규모와 위세는 다 잃고 말았지만, 그 대신 태안사는 곳곳에 꼭꼭 숨겨진 보석 같은 아름다움으로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 태안사의 매력을 하나하나 들자면 끝이 없다. 절집으로 드는 비포장 숲길의 청량함,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계단 길의 유연한 곡선, 누구든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도록 처마를 낮춰 지은 적인선사 부도 앞의 배알문, 물을 건너는 다리이자 누각을 겸한 능파각의 운치…. 절집을 둘러보다 보면, 필시 드러낸 것보다 숨겨진 것들이, 큰 것보다 작은 것들이, 형상보다 마음이 더 귀하고 중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었다.

순창과의 경계를 이룬 옥과면 설산 자락의 성륜사도 빼놓을 수 없다. 성륜사는 전남도립 옥과미술관과 이웃하고 있는 절집인데, 2001년에야 창건한 절로 내력이 짧지만 경내의 운치는 옛 절 못지않다. 성륜사와 옥과미술관, 두 곳 모두 ‘한국 남종화의 마지막 대가’로 일컬어지는 아산 조방원 화백의 토지 기증으로 세워진 것이다. 성륜사는 조 화백이 기증한 땅과 대상그룹의 시주로 1990년에 청화 스님이 창건했고, 옥과미술관은 조 화백이 평생 모아온 미술품 6700여 점과 부지를 전라남도가 받아서 세웠다. 그래서일까, 미술관을 옆에 두고 있는 성륜사는 미술관을, 절집을 옆에 두고 있는 옥과미술관은 절집을 닮아가는 모습이다.

성륜사에서 줄곧 마주하게 되는 건 ‘미감(美感)’이다. 절집 건물의 지붕과 지붕이 만드는 선도 예사롭지 않고, 기단을 높여가며 깊이감 있게 지어진 절집 건물의 배치도 근사하다. 손댄 듯 손대지 않은 듯한 자연스럽게 꾸민 조경과 근대한옥식 요사채 건물도 독특하다.

절집을 둘러보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미술관에서 ‘남도의 정신과 한의 가락이 운필에 맺히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개관 20주년 특별전 ‘조방원-일생묵노(一生墨奴)’ 전시회를 둘러보는 맛이 각별하다.

# 관음사의 누각을 빛으로 단청하다

곡성의 서쪽, 그러니까 화순과 경계지점쯤에는 절집 관음사가 있다. 관음사에는 ‘심청전’과 빼닮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데 관음사에서 정작 심청은 뒷전이었으니 그 얘기는 잠시 미뤄두자. 관음사에서 가장 강렬하게 눈길을 붙잡았던 건 작은 개울을 건너 절집으로 들어가는 다리이자 누각인 ‘금랑각’이었다.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는데, 금랑각 단청 위로 개울의 수면이 반사돼 아지랑이 같은 빛으로 일렁거렸다. 햇볕이 수면의 일렁거림으로 반사돼 물 빠진 단청 위를 마치 조명처럼 비췄다. 건물 벽에 영상을 쏘는 ‘미디어 퍼사드’가 연상될 정도였다. 이건 말 그대로 ‘빛으로 하는 장엄’이었다. 과연 금랑각을 지은 이의 의도였을까. ‘비단 금(錦)’에 ‘물결 랑(浪)’이란 이름은 그래서 붙여진 것일까. 빛으로 일렁이는 금랑각 앞에서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다시 심청전 이야기. 관음사와 심청의 연결고리는 이렇다. 순천 송광사가 보관하고 있는 관음사의 창건 내력을 담은 사적기 속 연기설화에서 심청은 ‘홍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바칠 것이 없던 가난한 아비가 열여섯 살 난 딸 홍장을 ‘팔아 쓰라’며 스님에게 시주했고, 스님을 따라나선 홍장이 진나라 황후가 돼 훗날 아비를 위해 큰 불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조선 영조 때 한 선비가 스님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는 이 이야기가 곡성군의 주장대로 ‘심청전의 원형’인지는 모를 일이다. 인천의 백령도, 경기 화성, 충남 예산은 물론이고 심청 굿이 내려오는 속초 일대 동해안도 다들 저마다 ‘심청전의 주인’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자 미상의 소설이라 이야기 뼈대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아무려나 어떨까. 다만 심청전의 배경으로는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시골 마을 정취로 그득한 곡성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건 분명하다. 영화 ‘곡성(哭聲)’과 같은 범죄스릴러물이 아니라 누군가 ‘심청전’을 영화로 찍는다면, 촬영지는 이곳 곡성이 돼야 마땅하리라.

곡성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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