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에게 정치란 '이겨야 하는 것'

김은지 기자 2016. 5. 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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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1일, 원내 교섭단체를 이룬 3당이 가진 첫 회동에서 ‘의전 정치’가 빛을 발했다. 각 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가 한자리에 모이자 누가 어느 자리에 앉을지를 두고 잠시 술렁였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통상 여당이 가운데 앉는 것 아니냐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슬쩍 그 자리를 권했다. 원 구성 협상이 끝나기 전에는 임시 사회도 연장자가 본다는 이유를 들며 박 원내대표를 중심 자리에 앉혔다(박 원내대표는 74세, 정진석 원내대표는 56세, 우상호 원내대표는 54세다). 캐스팅보터 구실을 하게 된 제3당에 힘을 실어준 행동이었다. 박 원내대표도 싫지 않은 듯 '앞으로도 이 정신을 살려나가도록 해요'라고 농을 치며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선 20대 국회의 앞날을 가늠케 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시사IN 신선영 :

단지 ‘의전’에서만이 아니다. 총선 이후 박지원 원내대표의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고 있다. 국민의당의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라는 존재감, 과반 의석 정당이 없는 여소야대 국회에서의 역학 관계, 여기에 박지원 개인의 정치적 역량이 보태지면서 박지원 원내대표가 짐짓 정국을 주도해가는 양상이다.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이후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서로 다른 당이 맡아야 한다(34쪽 상자 기사 참조)' '국회의장 자리에 친노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실패를 사과하면 협조하겠다'라는 등 예민한 발언을 연일 쏟아내며 뉴스거리를 만들었다. 심지어 대선 출마 의사까지 밝히며 스스로를 화제의 중심에 세웠다.

박 원내대표는 언론이 돌아가는 생리에 밝고 여론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5월3일 국민의당 초선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도 진면모가 드러났다. 그는 '만약에 기자의 전화를 못 받았으면 99.9% 콜백(답신 전화)을 한다. 대개 국회의원은 필요한 전화만 하고 귀찮은 전화는 받지 않는데, 그러면 자격이 없다' '정치하는 사람은 삼시세끼를 기자하고 먹는 게 맞다. 하다못해 신문 배달하는 사람과 밥 먹어도 얻는 게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지금도 아침 5시30분에 신문 13개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언론을 챙긴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활동도 열심이다.

그는 과거 ‘위스키 앤드 캐시(whisky and cash:나쁜 기사를 막고 좋은 기사를 내기 위해 언론 관계자와 술을 마시고 돈을 준다는 의미)’의 상징과도 같은 정치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변화하는 언론의 플랫폼에 맞춰 자신의 대(對)언론 방식 또한 계속해서 바꿔나가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성실함, 놀라운 정치적 순발력(1996년 펴낸 박지원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의 자서전 <넥타이를 잘 매는 남자>에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쓴 추천사 중 한 대목)’이라는 평가는 70대가 된 지금도 맞춤해 보인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요직을 섭렵했던 그는 비슷한 연배의 동교동계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현역’이다. 원내 교섭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원내대표로 추대되면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내가 더 박지원 원내대표를 잘 상대할 수 있다'라는 점이 각 당 원내대표 후보자들의 ‘세일즈 포인트’였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앞으로 제1, 2당 원내대표를 ‘가지고 노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원내대표만 세 번째로 이미 새누리당 김무성·이한구 의원과도 합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2012년 박지원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19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을 한 끝에 국토위와 보건복지위 상임위원장을 따낸 바 있다. 국방위와 외통위를 주겠다고 버티는 이한구 원내대표를 압박해 6월 말까지 국회 개원을 미루는 강수를 두면서 얻은 실리였다.

박지원에게 정치란 '이겨야 하는 것'

노련한 협상가인 그는 자칭 타칭 ‘인사청문회 8관왕’이기도 하다. 네거티브 검증에 특히 강해 이명박 정부에서 김태호 국무총리·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정동기 감사원장·천성관 검찰총장 후보를 낙마시켰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문창극 국무총리·김병화 대법관·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끌어내렸다. 풍부한 공직 경험과 각종 네트워크를 통해 확보한 정보를 무기 삼아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2009년 당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는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품의 리스트까지 입수해 폭로했다. 검찰 스폰서의 실체를 밝히며 만들어낸 ‘스폰서 검사’라는 신조어는 지금도 인사청문회 역사를 되짚을 때마다 오르내린다.

박 원내대표의 ‘네거티브 신공’은 같은 당 안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당시 당 대표 경쟁자였던 문재인 후보에게 가져다 붙인 ‘호남 차별’ 딱지는 지금까지도 문 전 대표를 괴롭히고 있다. 문 전 대표가 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낼 때 호남 인사를 차별했다는 주장이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 다시 생명력을 얻어 여기저기 전파됐다. 국민의당 관계자조차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가 호남 차별 발언으로 호남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지른 게 사실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시사IN 신선영 : 박지원 원내대표가 붙인 ‘호남 차별’ 딱지는 지금까지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괴롭히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4·13 총선 직전에도 광주를 방문하는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문 전 대표의 자서전(<운명>)에 호남 사람 때문에 선친의 사업이 망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이에 대해 해명하라’는 주장이었다. 사실 문재인 자서전의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호남 사람과 사업을 하다가 나중에 빚을 지게 돼 사업에 실패했다는 내용 정도여서다. 이 때문에 당시 진중권 교수(동양대)는 자신의 트위터에 '지역감정을 선동하기 위해 (박 원내대표가) 얼마나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지 똑똑히 보라'며 책 내용을 직접 찍어 올리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가 지역감정을 부추겨 자기 정치를 한다는 지적이었다.

지금은 같은 배를 탔지만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도 한때 그의 네거티브에 시달린 적이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 있었던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당시 박 원내대표가 안철수 후보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DJ가 정권교체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해야 한다며 안철수 불가론을 밝혔다는 주장이었다. 직접 확인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얼마나 곤란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정치하면서 적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이처럼 유능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평판 때문인지 박 원내대표에 대해 비호감을 드러내는 이도 적지 않다. 특히 ‘동지’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 최대 약점으로 지적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오랜 정치 경력을 지닌 박지원 원내대표가 왜 자기 계파를 만들지 못했을까. 가까운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은 정치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다'라고 꼬집었다. 계파가 만들어지려면 동료들 사이에 정책이나 비전 등을 함께 공유하는 정치적 과정이 상당 기간 필요한데, 박 원내대표는 그저 ‘유능한 원 맨 플레이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박 원내대표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직접 물어봤다. ‘삶’이라는 말과 함께 '이겨야 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당은 결국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정당의 목표는 가치관의 공유가 아니라 집권이다'라고 못 박았다.

1980년대 재미 사업가 시절 그는 미국 한인회장을 지내며 전두환 정권을 칭송한 전력이 있다. 이후 1983년부터 DJ와 인연을 맺으며 과거를 사과했다. 그는 DJ와 함께한 지 15년 만에 DJ를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은 2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그 뒤로 대북송금 문제, 뇌물 수수 의혹 등으로 정치적 고비를 맞았음에도 끝내 살아남아 20대 국회의 지휘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인생 역정이 드라마틱하다. 선거 승리와 집권을 정치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그가 여소야대 국면에서 어떤 존재감을 보여줄지, 20대 국회 내내 눈길이 쏠릴 듯하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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