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여성 문제 일대 전환점

최성욱 2016. 5. 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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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일 정도로 한 개인에 대한 추모 열풍 불러
조현병 환자 초기 진술 계기로 논쟁이 마찰과 충돌로 확대
여성들의 일상적 위기의식, 남성들 공감 필요성…사회적 의식 전환 평가
여혐·남혐, 성별 갈등보다 사회적 약자 위해 머리 맞대야

【서울=뉴시스】최성욱 기자 = 경찰이 '묻지마 사건'으로 결론 내린 강남역 살인 사건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촉발된 성별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범행 동기가 '여성 혐오'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별 갈등으로까지 확대됐다.

피의자 김모(34)씨는 지난 17일 오전 1시25분께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A(23·여)씨를 수차례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 사건의 논란은 피의자 초기 진술의 한 대목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 진술을 도화선으로 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발전해 급기야 살인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실제 김씨는 사건이 발생한 화장실에서 1시간 넘게 여성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서둘러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심리면담을 벌인 결과 '피해 망상으로 인한 범행'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지만, '여성 혐오 범죄'라는 인식은 이미 사회 전반, 특히 여성들 사이에 거의 확고부동하게 뿌리를 내린 상태였다. 그 때문에 경찰 발표는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불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이례적일 정도로 한 개인에 대한 추모 열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추모 현장이 성별 갈등의 분출구로 변질된 듯한 마찰과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많이 나온 게 사실이다.

지난 21일의 경우 사건 현장 인근인 강남역에서 열린 추모집회에서는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를 둘러싼 논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일부 추모객들은 "우리도 잠재적인 피해자"라며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여성 혐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면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남성 추모객은 "정신병력을 가진 한 개인의 살인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보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살인자 취급하는 시선이 불편하다"며 "모든 남성을 일반화하지 말아달라"고 맞섰다.

전날인 20일에는 추모현장에 분홍색 코끼리 탈을 쓰고 나타난 남성이 군중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수사를 전담하고 결과를 발표했던 경찰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는 못 했다. 페미니스트라는 20대 여성 10여명은 지난 23일 서초경찰서 앞에서 이번 사건을 '묻지마 범행'으로 규정한 경찰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만만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유독 많다는 것은 여성 혐오적인 사회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혐이냐 남혐이냐 단선적으로 따지는 감정적 대립보다는 이번 사건이 갖는 함의를 숙고하며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 위기의식을 특히 남성들이 공감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런 맥락에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한국 사회에 이미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고 여성 문제에 대한 의식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여성 혐오가 기저에 깔린 상태에서 정신병으로 표출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망상이라는 것은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는데, 결국은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인 기저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공포가 잠재적이고 상시적이라는 것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본질을 벗어난 소모적인 논쟁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사회적 약자들를 대상으로 한 범죄예방책을 마련할 계기로 활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한상암 원광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지엽적인 문제에 매몰돼 '소모적 의견 분열'의 상태에 놓여 있다"면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질환자도 잠재적인 범죄자로 분류해 관리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ecre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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