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내 핑크색 좌석 '임산부 배려석', 왜 안지켜지나?
지하철을 타면 언제부터인지 의자와 바닥에 분홍색 자리가 눈에 띈다. 이 좌석은 임산부들을 위해 만든 ‘임산부 배려석’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임산부는 없고 중년남성과 대학생이 더 많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1일 부터 일주일간 서울 지하철 2호선과 3호선,5호선,8호선을 번갈아 타며 임산부 배려석이 얼마나 지켜지는지를 살펴봤다.
열차 바닥엔 사각형 분홍 바탕에 흰 글씨로 “핑크카펫,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내일의 주인공...’이라는 문구 때문에 청소년들이 가끔 자신들을 위한 자리로 알고 앉는 경우가 있지만 의자 뒤로 임산부 그림의 스티커와 ‘서울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게 보였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512명의 시민에게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 묻자 84%가 ‘알고 있다’고 답했다. 홍보는 웬만큼 된 것이다. 그런데도 왜 임산부석은 노약자석과 달리 비어있지 않을까?
지난 6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열차가 서며 문이 열리자 승객들이 달려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기자가 탄 열차 안에서도 어김없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한 남자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또 다른 임산부 배려석엔 50대 후반의 등산복 차림 남성이 모자를 눌러쓴 채 자고 있었다.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서 “여기 혹시 임산부 자리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아, 네!”라고 하며 벌떡 일어났다.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았던 게 아니었다. 대부분 열차를 탄 승객들은 빈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임산부석 승객들도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숙이고 몰입하다 보면 앞에 누가 왔는지 모를 수 있다. 어쩌면 앉아가기 위해 일부러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할 수도 있다. 젊은 임산부가 자리를 차지한 어르신에게 “저 임산부니까 이제 일어나시죠”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어렵다.
사실 임산부 배려석은 노약자석처럼 임산부를 위해 비워두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울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임산부 배려 차원에서 2013년 12월부터 마련한 것이 바로 서울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처음엔 ‘임산부 먼저’라는 작은 스티커만 붙어 있었다. 구석이 아닌 열차 안 가운데 칸마다 두 자리만 만들어서 눈에 잘 띄지 않자 지난해 7월부터 총 4억 6600만원을 들여 의자와 바닥까지 분홍색으로 바꿨다. 현재 3570량 열차에 7 140석이 있으며 서울시는 임산부석을 더욱 늘리려고 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 지하철 노약자석에 아직 배가 나오지 않은 초기 임산부가 앉기는 어렵다.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까지 맡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는 임산부 배려석을 지하철 노약자석처럼 자리가 있어도 빈자리로 남겨 놓도록 시민 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서울메트로 홍보팀 김광흠 차장은 “노약자석도 초기에 빈자리로 남겨 놓지 않았다. 임산부 배려석도 시민 의식이 정착하려면 시간이 좀 지나야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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