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들 "나는 군대가고 취업도 힘든데.." 비뚤어진 표적

2016. 5. 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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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한국, 여성혐오와 마주서다
② 헬조선의 또다른 얼굴
"여성들이 남성의 일자리 위협한다"
청년실업·불평등 심화 속 '여혐' 확산
20대 남성들 "2030여성, 혜택받는다"
취업·결혼·출산·집마련 '포기세대'
"'김치녀라 안만나' 말하면 덜 비참해"
"남성 내부집단 내에서 경쟁 커지면
기득권 대신 여성에게 적대감 가져"

[한겨레]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에 있던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이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 시민청으로 옮겨진 뒤, 24일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의 글이 담긴 포스트잇을 둘러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동갑내기 여성이 ‘남자가 결혼할 때 집도 안 해오려고 했느냐’고 말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취업 준비하랴, 집 장만하랴 갈수록 힘든데 쟤네들은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김창석·가명·29)

“솔직히 여학생들이 대학에서 학점도 좋고 일자리를 구하는 데 있어서도 남자들의 경쟁자로 나와 있잖아요. ‘어라? 얘네들이 어디까지 치고 올라오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오민철·가명·28)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으로 조명받고 있는 여성혐오를 주도하는 집단은 20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청년실업과 불평등 심화 등으로 촉발된 불만과 분노가 ‘혜택 받는 집단’ ‘의존적이고 사치스러운 집단’ 등의 왜곡된 인식을 근거로 2030 여성에게 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보수 성향 웹진 <자유주의> 대표를 맡고 있는 프레카(필명·27)는 “당장 취업이 잘 안되는 20대 남성들의 박탈감이 그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서 여성혐오로 드러나는 것 같다. 30대 이상만 돼도 직장을 잡고 돈을 좀 벌다 보면 여유를 갖게 되는데, 20대의 경우 아르바이트 시장 등에서 남성이 반드시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지역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을 지낸 오민철씨는 “과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였던 여성들의 지위가 올라가서 오히려 남성들의 자리를 위협하는데도 여전히 배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남성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그런 반발심을 ‘김치녀’ 같은 여성혐오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 같다”고 학내 여론을 전했다.

실제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남성을 유일하게 앞지르는 연령대가 20대다. 2000년만 해도 20대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72.4%인 데 견줘 같은 연령대 여성은 58.4%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엔 20대 여성이 64.4%로 남성(63.0%)을 역전했다. 취업 여성의 증가와 함께 전반적인 고용 사정의 부진으로 남성들의 취업 시기가 늦어진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30대만 되어도 사정은 달라진다. 30대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2015년 기준)은 93.8%인 데 비해, 30대 여성은 58.8%로 꺾인다. 대학생 권진영(22·연세대)씨는 “생애 전반에 걸쳐서 보면 여성이 사회적 약자인데도 또래 남성들은 단기적인 경험만을 근거로 이런 부분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난과 양극화 심화로 ‘취업→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으로 이어지는 미래 설계가 불투명해진 ‘3포 세대’ 등장과 20대 남성들이 주도하는 여성혐오 담론의 확산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15~34살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 Ⅱ’)를 보면, 남성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혜택을 받는 집단으로 ‘20~30대 여성’을 꼽았다. 이런 인식은 여성혐오 글을 올린 경험이 있거나 공감한 이들에게 더 팽배했다.

상당수 남성들이 “여자는 남자들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취업 스펙을 쌓는다, 데이트 비용을 반반 내지 않는다, 결혼 때 집 장만을 남성에게 미룬다, 가족 생계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 등을 내세우며 이를 여성이 누리는 ‘혜택’으로 여긴다.

대학생 최효훈(23·건국대)씨는 “대부분 남성들이 열악한 환경의 군대를 경험하고 오면 트라우마를 갖는다. 병역의무 제도나 군대 환경을 바꾸도록 사회에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런 끔찍한 곳을 견디다 온 것을 왜 여성들은 인정해주지 않느냐는 식으로 표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보수 성향 사이트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도 “학교폭력에서 우연히 살아남고 군대에서 우연히 살아남아 하루하루 버텨가는 불쌍한 남성들에게도 관심 좀 가져달라”는 식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박연철(가명·26)씨는 “연애를 못하면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내가 못나고 찌질하고 돈도 없어서 데이트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비참하니까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쟤가 김치녀라서 안 만난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남성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일부 여성들의 행태를 여성 전반의 특징으로 확대해석하고 딱지붙이기를 함으로써 여성혐오가 확산되는 측면도 있다.

직장인 김우석(33)씨는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집값은 뛰면서 점점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는데 우리 사회는 이를 모두 개인의 문제로 내몬다”며 “취업을 못해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원인을 찾고 싶은데, 그걸 여성에서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여성학)는 “청년층 남성들은 여성의 고용이 더 불안정하다는 점, 결혼 뒤 가사·양육 부담을 떠맡게 되는 점 등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본인들이 당장 느끼는 불만을 반복적으로 토로하면서 그릇된 ‘양성평등’ 담론을 퍼뜨려왔다”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경제위기 때마다, 생계부양자로 간주되는 남성에 대해서만 동정적 여론이 확산돼왔는데, 현재 20대 남성들의 불만도 청년실업 등의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목소리가 더 커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는 “남성 집단 내부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격차가 커지게 되면, 맨 꼭대기에 있는 보이지 않는 최상위 기득권 계층 대신 여성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황보연 김미향 박수진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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