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짧은 실업급여.."18년 전과 큰 차이 없네요"

입력 2016. 5. 24. 19:56 수정 2016. 5. 2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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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구조조정, 구멍뚫린 안전망
② 쥐꼬리 실업급여

하루 상한액 4만3천원·최장 8개월
소득대체율 50%…선진국은 60~90%
90~240일 수급기간 OECD 하위권

허겁지겁 재취업 내몰리다 보니
이직률 높고 고용기금 지출도 증가
‘많이 길게’ 하면 구직욕 떨군다지만
여유있게 일자리 찾는 게 안정성 높여

“18년이 지났는데 실업급여는 큰 차이가 없어요.”

경남 통영의 중형 조선업체를 다니다 회사가 청산절차를 밟으면서 지난 2월 일자리를 잃은 박아무개(52)씨는 실업급여로 4주에 121만원 정도(하루 4만3000여원, 현재 상한액)를 받는다. 박씨에겐 두 번째 실업급여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다니던 소형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실직자가 됐다. 당시에는 4주에 98만원(하루 3만5000원, 당시 상한액)이었다. 박씨는 “나는 아이들 다 키우고 아내도 돈을 벌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긴 하지만, 혼자 버는 가장들은 정말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실직자라는 주변 눈총도 서러운데 고용센터에서 구직활동 증명 등을 요구할 때 너무 까다롭게 일처리를 해 더 마음이 편치 않다”며 “돈도 얼마 안 되는데 아예 안 받고 말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자녀 셋을 키우는 김아무개(43)씨는 “실업급여 120여만원으로 못 산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 않냐”고 되물으며 “액수가 적어 어쩔 수 없이 고용센터 몰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액수 낮고 기간 짧아 실업급여(구직급여)는 실직한 노동자에게 재취업 전까지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주기 위해 지급되는 돈이다. 현행 실업급여는 실직 전 임금(실직 전 석달 동안 받은 세전 임금총액을 실제 노동일수로 나눈 평균임금)의 50%를 준다. 단 상한액이 하루 4만3000원,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90%로 정해져 있다. 소득대체율(예전 소득과 실업급여 비율)은 2013년 기준 평균 49.9%다. 특히 상한액이 있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았던 노동자는 대체율이 더 떨어지게 된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나이와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90~240일 사이에서 정해진다. 나이가 적을수록, 가입기간이 짧을수록 받는 기간이 짧아진다.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선진국에 비해 액수가 적고 기간이 짧은 편이다. 독일은 실직 전 임금의 60%를 180~720일 동안 주고, 스위스는 실직 전 소득의 80%를 260~520일, 덴마크는 평균임금의 90%를 730일 동안 준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실직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실업급여 수급자의 46%가 실업기간 중 주된 소득으로 ‘동거가족의 근로소득’을 꼽았지만, 실업급여를 꼽은 사람도 35.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홑벌이 가구 노동자가 실직할 경우 그만큼 실업급여가 중요한 생계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 급하게 재취업…이직률 높여 실업급여의 낮은 액수와 짧은 수급기간은 재취업 뒤 이직률을 높이고, 실업급여를 다시 받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직 기간 동안 생계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자리에 급하게 재취업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시 이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병희 한국고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실업급여 지급 기간의 일자리 매칭 효과’를 보면, 2009년 실업급여 수급자 가운데 2013년 6월말까지 재취업한 사람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실업급여를 90일 받은 사람은 8.8개월이지만, 240일 받은 사람은 11개월로 나타난다. 또 3년 안에 실업급여를 다시 받은 사람들의 비율을 따져봐도, 90일 받은 사람은 23.5%인 데 반해, 240일의 경우엔 10.8%에 그쳤다. 이직률도 90일 수급자는 83.4%인데, 240일 받은 사람은 72.8%로 차이가 났다.

■ 정부, 고용보험법 개정안 내긴 했지만… 정부여당은 지난해 이른바 ‘노동개혁 4대 법안’ 중 하나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실업급여 수준을 평균임금의 60%로 높이고 지급기간도 30일 늘려 최소 120일에서 최대 270일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상한액은 5만원으로,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로 조정했다. 하한액을 낮춘 것은 올해처럼 실업급여의 상한액이 하한액과 역전되는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현재는 실직 전 1년6개월 동안 180일 이상 일하면 실업급여를 탈 수 있지만, 앞으로는 실직 전 2년 동안 270일 이상 일해야 주는 것으로 강화했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으나, 고용노동부는 20대 국회에서 재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노동계는 지급 기간을 늘린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자격 조건을 강화하고 하한액을 낮춘 부분에는 반대하고 있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노동경제학)는 “실업급여를 많이 길게 받으면, 구직과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좋은 일자리를 찾는 시간을 길게 가지는 것이 노동시장 안정성을 높이는 데에 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도 자체는 이직 전 임금의 50%를 받도록 설계됐지만, 사실상 실업급여가 정액급여화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며 “제도의 취지대로 소득에 비례해 급여를 지급할 것인지, 우리 사회가 지급할 최저 수준의 급여를 지급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와 추가로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우 정은주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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