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무시'에서 '적대'로..SNS와 결합해 공격성 증폭

2016. 5. 2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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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6 한국,‘여혐’과 마주서다
① 왜 지금 ‘여혐’인가

남성들, 과거 여성을 인식할 때
순종적·성적 존재 등으로 인식
여권신장과 함께 노동시장 등서
경쟁자 되자 박탈감·열등감 느껴
김치녀등 낙인찍고 범죄 대상으로
인터넷 익숙한 청년층 유독 심해

20대 여성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을 정신질환 범죄 유형로 규정한 데 항의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여성혐오 범죄’ 수사를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해 연세대 총여학생회 선거에선 후보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 후보자가 나오지 못한 배경엔 학내 남학생들이 주도한 ‘여성혐오’ 공격에 대한 공포가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에게 “뚱뚱하다” “못생겼다”는 식의 외모 비하에서부터 “×× 달고 태어나 학교 돈으로 스테이크나 처먹고 다니냐”는 등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그 배경엔 ‘여성에게 더 혜택을 줄 이유가 없으니 총여학생회를 없애라’는 남학생들의 인식이 있었다. 가까스로 지난 3월 재선거를 통해 총여학생회장이 선출됐지만, 그 과정에서도 ‘(선거시행세칙 위반에 따른) 부정선거’ ‘당선무효’ 논란이 불거지면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김남희 연대 총여학생회장은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 간의 결속과 유대가 갈수록 단단해진다. 자기들끼리 단체 카카오톡방을 만들어 놓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을 품평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례는 ‘여성혐오’(여혐) 현상의 특징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으로 새삼 조명받고 있는 ‘여혐’은 단순히 여성을 싫어한다는 의미를 넘어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 적대감, 조롱, 공격 등을 통칭한다. 과거 여성차별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이는 여혐 현상은 최근 몇년 새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터넷 공간을 통해 노골적인 적대감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무시보다는 적대 여혐의 확산 배경에는 경쟁사회가 심화되면서 남성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 인식과는 대조적으로 현실에선 더 이상 ‘가족생계 부양자’로 확고하게 자리잡기 힘든 사정이 깔려 있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과거 여성혐오는 여성을 온전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힘과 능력을 바탕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최근 여성혐오는 된장녀, 김여사, 보슬아치 등과 같은 적대적인 딱지 붙이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경쟁자로서 여성을 만나 패배한 경험도 있을 거고, 가부장적 권한을 유지할 경제적 능력도 흔들리고 있다”며 “사치와 허영을 부리면서 남자에게 명품을 사달라고 하는 여성의 상을 그려놓고, 자신들(남성들)이 피해자이고 억울하다는 담론을 양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청년층에 집중 여혐 논쟁은 주로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갤러리’에서 보인 여혐과 그에 대한 반발로 나온 ‘반여성혐오’를 내세운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대학생 고수아(가명·22)씨는 “메갈리아가 만들어지자마자 가입했다. 화장실 몰카 근절 운동이나 소라넷 폐지 서명 등의 진행 상황을 꼼꼼히 읽어보곤 했다”고 말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여초 커뮤니티 중에서도 가입자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82쿡’보다는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공간에서 더 뜨거운 관심이 표출됐다.

■ 루저들만의 문화? 여성혐오를 표출하는 이들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거나 경쟁에서 소외된 이른바 ‘루저급’ 남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야구 커뮤니티 엠엘비파크에 자주 방문하는 김창석(가명·29)씨는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나쁘지만 이 공간에서 주로 나오는 ‘남자라서 살기 힘든’ 이야기들에 공감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5~34살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 Ⅱ)를 보면, 여성혐오 표현을 접촉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전체 응답자의 83.7%에 달했다. 된장녀(98.4%), 김치녀(93.7%), 김여사(92.1%), 성괴(성형괴물·88.7%), 삼일한(여자를 삼일에 한번 때려야 한다·35.3%) 등의 표현을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의 절반 이상인 54.2%는 혐오 표현에 “공감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여성혐오 댓글을 올리는 이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비교적 삶의 만족도가 높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남성 집단에서 더 많았다”고 밝혔다.

■ 인터넷 통해 공격성 증폭 여성혐오는 인터넷 공간의 편의성과 익명성 등으로 인해 좀더 공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에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추모집회를 총괄한 김아영씨는 “뉴스 인터뷰가 나간 직후 남성들이 주로 들어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도를 넘는 극심한 성적 모독과 ‘살해 협박’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여성에 대한 신상털기와 인격적 모독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오프라인에서 여성과 대면해서 김치녀라고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정상적인 대화 방식이 아니라 인터넷에 숨어서 공격하는 방식으로 혐오를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 최태섭 평론가는 “진보·보수 등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대부분의 남초(남자들이 더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황보연 김미향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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