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추모·반성의 자리.."김치녀" "한남충" 편가른 불청객들

윤정민 2016. 5. 24.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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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공론장 됐던 서울 한복판서로 비난 말자는 여중생 때리고추모 메모지 떼내 불태운 사람도"성 대결 구도 고착화되면 안 돼사회안전망 확충, 약자 배려 필요"

지난 17일 발생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 사건’의 피해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 공간이 23일 새벽 철거됐다. 비가 오면 메시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시민들이 메모를 보존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스티로폼 판에 옮겨 붙인 메모지는 1.5t 트럭 한 대 분량에 달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를 시민청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으로 옮겨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8일 트위터 글에서 시작된 추모 움직임은 이후 전국으로 확대됐다. 그 중심이 된 강남역 10번 출구엔 5일간 수천 명의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공간은 철거됐지만 ‘여성 혐오’ 논쟁은 식지 않고 있다. 경찰이 여성 혐오 범죄는 아니라고 밝혔지만 “사건 원인을 떠나 여성 혐오를 뿌리 뽑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경찰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역은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남기고 여성 혐오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공론장이 됐다”며 “이를 통해 차별적 인식을 개선시키는 계기도 마련됐다”고 평했다.

그러나 애초 ‘추모’를 위해 조성됐던 공간이 결국 ‘혐오의 분출구’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추모가 여성 혐오 반대 운동으로 이어지자 일각에선 ‘남성 혐오를 부추긴다’며 반발했다. 또 포스트잇 메시지로 시작된 논쟁이 욕설과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핑크 코끼리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 20일 오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분홍색 코끼리 탈을 쓴 김모(31)씨를 둘러싸고 비방과 욕설이 오갔다. 김씨는 ‘육식동물이 나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것’이라고 적힌 화이트보드를 들고 있었다. 욕설은 신체적 충돌로 번졌고, 김씨는 21일 관련자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23일 오후 김씨로부터 피해진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20일 새벽 한 남성이 포스트잇을 떼내 불태운 사건도 수사 중이다. 또 22일 낮 복면을 쓴 채 ‘남혐·여혐 다 싫다. 서로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는 문구를 들고 서 있던 여중생이 폭행당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성별·계층에 대한 혐오가 일상적으로 퍼져 있는 ‘혐오 사회’의 한 단면이 강남역을 통해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메갈리아 등 인터넷에서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이 이번에 오프라인으로 이동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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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온라인에선 혐오 자체가 원동력이 되는 커뮤니티들이 뿌리 내린 지 오래다. 진보 세력과 여성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일베, 이에 대해 남성 혐오로 맞서는 메갈리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김치녀(김치+여성. 여성 비하 용어)’ ‘한남충(한국 남자+벌레. 남성 비하 용어)’ 등 입에 담기 힘든 말로 극단적 혐오를 쏟아내고 있다. 박 교수는 대책으로 “성 대결 구도가 고착화되면 안 된다”며 “사회안전망 확충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남녀뿐 아니라 여러 집단이 서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혐오 사회’가 돼 가고 있다”며 “계층이동, 일자리 문제 등에 탈출구가 마련돼야 일반 시민이 특정 개인에게 분노와 좌절을 무차별적·폭력적 방식으로 분출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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